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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븐윤 May 16. 2022

아홉수 대신 일곱수

스물 일곱 살의 코로나 실업

     코로나 상황으로 세상이 많이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내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20년 3월, 카타르의 국경이 닫히면서 나는 무직자와 유직자 신분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진 ‘반백수’라는 달콤쌉쌀(bittersweet) 한 타이틀을 잠시 누릴 수 있었다. 코로나19 창궐 초반에는 모국의 맛이 마냥 좋아 즐겁기만 했다. 모두가 힘들었던 2020년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간 중동 지역에서 외노자(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해온 막내 딸래미인 나는 대한민국에서 엄마의 꼬순 밥을 먹으며 하하호호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더랬다.


     첫 두 달은 지인들로부터 은근한 부러움을 받던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방학'이라는 익스큐즈 아닌 익스큐즈를 무한 방패로 내세울 수 있었고 덕분에 가족과 온전한 쉼을 가질 수 있던 감사한 텀이 생겨났다. 단,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부러움의 시선은 걱정 어린 조언과 충고로 변했고 이를 귀 따갑게 들어야 했다. '모 회사 공개 채용하던데 너와 잘 맞을 것 같다'며 자소설 취업 공고 사이트 링크를 보내줄 때면 고마우면서도 내심 마음이 쓰라렸다. 나는 또다시 자기소개서와 인적성, 면접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거다. 허나 실질적으로는 아직 난 무직은 아니었기에, 재취준은 죽을 만큼 하기 싫었기에 등 각종 여러 가지의 이유로 <적극적인 취준 생활>을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뤘다.

     그렇게 8월 말 9월 초, 올해도 다 갔구나 싶은 초가을 계절이 지나고서는 10월이 찾아왔다. '설마 잘리기야 하겠어? 안 짤릴걸?' 하면서도 찔끔씩 자기소개서를 써 서합률을 높여온 나를 칭찬해야 할지, 모쪼록 인적성 시기와 맞물리던 그즈음에 국가번호 +974로 시작하는 한 해외 전화를 받았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가 전화를 받게 되었다.) 회사였다. 해고 전화였다. 소식을 전하는 수화기 너머의 인사부 팀원이 야속했지만 그도 그의 일을 할 뿐이었다. 울어야 하는 건 난데 그가 울면서 해고 소식을 전했다. 참 난감했다. (즙을 왜 네가 짜니..?)


     20대 중반에 '정리 해고'라는 과정은 다소 현실적이었다. 한평생 몸 받쳐 일하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퇴사하고 싶을 만큼 싫은 곳도 아니었다. 나름의 애정이 있었다. 회사는 직접 짐을 싸러 와도 좋고 포장해 보내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물론 후자를 택했다. 애정은 있었지만 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곳엔 일 초의 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재취업 준비도 해야 하니 말이다. 그게 현실이었다.


     해고된 다음날 아침, 가족 모두가 출근하고 텅 빈 집 그리고 내 방 침대 위의 나는 홀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시월의 찬 공기 때문인지 몸과 마음이 더욱더 허했다. 더 이상 울타리가 없다는 그 공허한 감정이 나를 생각보다 세게 내리 쳤다. ‘망할 코로나. 나쁜 회사.’ 나는 정확히 누구를 탓해야 할 지도 모른 채 그렇게 실직자가 돼버렸고 카타르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난 줄로만 알았다.



카타르 일상 업데이트는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 채널이 확연히 더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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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 선셋>

"제가 살아온 삶은 평범했지만 제 관점에서는 저의 삶도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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