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가 궁금해 (38) 미시간주 스토버즈 팜 마켓...사과가 더 맛있다
시카고에서 피킹 하기
포도 피킹을 다녀왔다. 피킹은 미국 와 처음이다. 매년 ‘가자, 가자’ 해놓고 못 갔다. 올해도 그냥 넘어가나 했는데, 막바지 ‘함께 가자’는 초청에 선뜻 응했다. 날은 너무 좋았다. 하늘은 높았고, 햇살은 웃음처럼 번졌으며, 바람은 콧등을 맵게 건드렸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목적지는 도착해서야 알았다. 미시간 주에 있는 스토버즈 팜 마켓(Stovers Farm Market & U Pic. https://stoversfarms.com). 인디애나를 경유해 도착하기까지 두 어시간 소요.
‘단풍도 볼 겸 피킹 가자’했는데, 단풍은 오가는 길에서 봤다. 가을이 익으니 제법 많은 나무들이 제 색감을 못 견디고 잔뜩 부끄러워했다. 소멸 직전 불꽃같은 산화를 우리는 좋아하는 거고, ‘마지막 잎새’ 이런 풍류도 이 즈음의 쓸쓸한 예찬이다. 나무 붉게 물들면, 마음도 세월도 아랑곳하며 멍든다.
여기, 물론 처음 와보는 곳이다. 미시간 이 동네 포도나무며 사과나무며 과수원을 주업으로 하는 지역이다. 목적지 닿는 여정, 제법 넓은 지역에 과수가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이곳 ‘스토버즈’는 단연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듯. 도착한 오후 3시께, 제법 많은 차들이 이미 주차장을 채웠고, 우리도 그들 중 하나.
과수원 초입에 커다란 건물이 창고처럼 서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관광객과 피킹 위해 온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 질서 정연하게 펼쳐졌다. 이런 곳 들러보는 것도 솔찮은 재미. 일단 피킹을 왔으므로, 계산대에서 딴 과일 담을 비닐봉지 하나씩 챙겨 들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일단 따고 싶은 만큼 따되 계산은 무게로 한다. 포도 경우 파운드 당 1.99불. 이게 셈법이 쉽지 않은데, 여하튼 ‘따는 재미’를 위해 온 만큼, 포도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란히 늘어선 포도나무들 다소 끝무렵인지,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탓인지 ‘그림처럼’ 풍성한 포도송이는 입구 쪽 없었다. “없네” 다소 실망한 목소리들.
그러다 안쪽으로 들어간 일행 하나, 마치 “심봤다”하듯 “여기 많다”하면 글로 몰렸다. 안쪽에는 제법 많은 포도송이가 작은 알이지만 주렁주렁 잎사귀 안쪽 수줍은 듯 숨어 있었다. 후회는 금방 했다. ‘장갑하고 가위 가져올 것’. 이런 경험이 많지 않은 세 가족, 누구도 뭣도 준비해오지 않았다. 덕분에 손톱 밑 포도 물 가득 물들었다.
비닐봉지 하나 채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국 포도맛에 감탄하며, 알 좀 더 굵었으면, 아쉬움도 토로했다. 뭔가를 자연 그대로 딴다는 것의 재미, 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다. 풍성한 계절을 수확하는 맛. 성취를 공유하는 즐거움.
드론은 하늘을 날고, 우린 손짓하며 피킹을 기념했다. 다시 계산대. 두 봉지 가득, 30불 채 안 되는 값을 매겼다. “내년에 또 보자”했더니, 사람 좋게 생기신 현지 할머니 함박 웃는다. 둘러본 매장 안 곳곳에 시골이, 과수원이, 관광이 배어 있었다. 출입구 쪽 안으로 드는 햇살이 고즈넉한 게 무슨 그림 같았다.
출발 전 종류별로 심어진 사과나무들도 잠깐 봤다. 나무에 달려있는 것보다 떨어진 것들이 더 많았다. 어떤 거 하나 따서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사각한 게 즙 잔뜩 내며 제 맛을 자랑했다.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 가서 사과도 포도도 토마토도 심어 수확하는 재미도 크겠다, 문득 그런 생각. 그냥 생각만.
차 안 가득 포도 냄새가 진동했다. ‘매년 오자’ 들뜬 만큼 사람들 이날 피킹이 좋았나 보다. ‘꼭 그래야겠다’ 나도 다짐했다.
<7:37.1026.물.2021.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