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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ye Oct 07. 2020

요식업은 장난이 아니야

나의 첫 비건 팝업 식당 운영기(2)

나는 원래 팝업 식당이라는 것을 가볍게 생각했다. 누군가 평소에 해 먹는 것, 자신 있는 요리를 며칠간만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일, 그 정도. 식당 일이 힘들단 건 알았지만, 요리만 잘하면 어느 정도 되는 것인 줄 알았다. 팝업을 준비하며 나는 그것이 큰 오산이었음을 알았다. 


팝업 식당을 운영하는 이틀, 공지를 내고 연습을 해보던 일주일 동안 아주 멘붕에 시달렸다. 주방 일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뜬금없이 팝업 식당을 한다면,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이건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고 모두에게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팝업 식당을 열 때 염두에 둘 것


우리의 입간판/메뉴판


1. 팝업은 대부분 남의 공간을 빌려서 하므로, 어느 정도 재료를 밑 작업 해와야 한다.

우리는 연남동에 있는 와인바에서 이틀간 점심 장사를 했다. 와인바의 특성상 주방이 아주 작았고, 거기서 이것저것 조리하기엔 번잡스러울 것이기에 메뉴를 거의 미리 만들어와서 주방에서 옮기는 식으로 진행했다. 팝업 며칠 전부터 퇴근 후 복숭아 병조림을 만들고, 옥수수를 갈아 스프를 만들고, 장아찌를 저장하고, 전을 부쳤다. 이제 만든 걸 이동도 시켜야 한다. 팝업 당일엔 아침에 차를 타고 이고 지고 와인바에 내려 세팅하고, 영업이 끝나고는 공간의 본래 목적인 와인 장사를 해야 하므로 다시 또 남은 재료와 집기를 이고 지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원래 식당인 공간에서 전일을 빌려하는 게 아니라면, 준비/운반의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가 크다. 나는 이 작업에서 영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에너지 70%를 써버렸다. 


옥수수스프를 끓이는 나


2. 새로운 공간의 집기를 잘 파악하고, 동선과 일의 프로세스를 잘 짜야한다.

대학교 때 1년간 일했던 수제 맥주펍 사장님은 내게 늘 말했다. 작은 가게여도 그 안에서 체계를 잡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그는 테이블 동선, 여러 명이 왔을 때 테이블을 붙이는 배치, 오픈/마감/청소 역할, 맥주 세팅 순서, 메뉴 설명 방식, 뉘앙스 하나하나를 모두 프로세스화 하는 사람이었다. 4장 정도 되는 메뉴판에 대해 1분 만에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대본을 짜고, 그걸 녹음해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음성메세지로 보냈다. 덕분에 가게는 아주 효율적으로 돌아갔고, 매일 대단한 매출을 찍었다. 막연하게 '언젠가 가게나 해볼까' 생각했던 내게 꽤나 현실감각을 일깨워 주던 사람이었다.


사장님으로부터 얻었던 교훈을 다 까먹었던 나는 팝업 당일 무작정 음식만 들고 공간에 갔다. 점심 장사인데 아침에 가격을 정하고 메뉴판을 그렸다. ‘대부분 준비해왔으니 그냥 접시에 세팅해서 나가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넋을 놓고 있다가 첫 손님이 왔고, 우왕좌왕 설명했다. 그들은 세트 A, B를 나란히 주문했다. 세트 하나당 4~6개의 작은 메뉴가 있었으므로 세팅해야 하는 메뉴가 10개였던 셈인데, 하나하나 데우고 옮기고 새로운 손님이 오면 메뉴판을 주고 설명하고 한 테이블이 빠지면 테이블을 정리하고 그릇을 몇 개씩 설거지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마 손님에게도 산만하고 정신 없는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아마추어가 맞지만, 아마추어보다 더 아마추어스러웠기에 부끄러웠다. 좀 더 일찍 메뉴에 대해 상의하고, 주방과 홀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어떤 그릇에 나갈지 프로세스를 짰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3. 메뉴에 따른 일의 크기를 잘 가늠해야 한다.

식당 일은 요리만 하는 게 아니다. 식재료를 운반하고, 정리하고, 음식을 만들고, SNS에 설명하고, 오프라인으로 진짜 찾아온 사람에게 또 설명하고, 주문을 받고, 알맞은 그릇에 내고, 먹는 동안 발생하는 새로운 요청사항에 응하고, 테이블에 널브러진 음식을 치우고, 어마어마한 설거지를 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이 안에서의 프로세스를 잘 짜야 꼬이지 않고, 메뉴를 여러 개 하면 할수록 꼬이고 번잡해질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팝업이라면 더더욱. 베테랑이 아닌 이상 팝업이라면 메뉴는 간단히 하는 것이 좋다. 욕심을 주체 못 하고 여러 개의 메뉴를 하면 (특히 세트일 경우) 나중에 재료 소진 때 세트 메뉴 중 1개가 다 떨어져서 팔지 못하거나 준비 과정에서 힘이 다 빠져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느꼈다. 내가 그랬기에..


4.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가격을 책정해야 다음에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팝업은 잘됐다. 준비했던 메뉴를 모두 다 팔았고, 나중엔 모자라서 스탭밀로 먹으려고 가져온 토마토 소바까지 모두 내어주었다. 너무 이른 시간 마감을 해버려 나중에 온 손님들은 죄송하다고 돌려보내야 했다. 


자, 이틀을 위해 일주일을 고생한 우리. 노동에 준하는 짭짤한 부수입을 얻었을까. 

...

결론적으로 우리는 준비시간을 합하면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돈을 벌었다. 


나의 대환장 파티를 차분히 잠재워주고, 식당을 운영했던 짬바로 능숙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내었던 친구는 정산 뒤 "소꿉장난 했네! 호호"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친구의 지인이 흔쾌히 가게를 빌려주었기에 망정이지, 대관비를 많이 내야 했다면 적자였을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먹을 걸 만들어 파는 게 처음이라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친구가 처음 책정했던 가격에서 내 고집으로 내렸기 때문이다. 만 원 넘는 음식을 잘 안 사 먹는 내 짠순이 기질도 한몫했다. 음식 가격이 엄~청 싼 건 아니었지만, 메뉴를 개발하고 준비해 이틀이라는 한정된 시간에만 판매하는 팝업의 특성상, 규모의 경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메뉴를 만들어 그 기간만 써먹는다는 점에서 팝업은 시간 대비 효율이 안난다. 아예 한 달정도 하면 모를까..). 


그 날을 계기로 나는 음식 값에 대해 잘 투덜거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재료값이 총수익의 30% 이하가 되게끔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자영업의 원칙에 대해 뼈저리게 새기게 되었다.


우리가 준비한 음식들



서툴러도 일단 해본 경험이 남긴 것


첫 번째 팝업 식당의 경험은 '나는 절대 식당은 본업으로 못할 사람이다'는 것을 아주 잘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분야에서 계속 일을 벌여보고 싶다는 야망도(?) 조금 더 생겼다. 어떻게 알았는지 비건 팝업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온 비건 손님들은 "매번 비슷한 식당에 가다가 오랜만에 새로운 메뉴를 접할 수 있어서 바로 달려왔다"는 이야기를 해줬고, 의리로 와준 친구들이나 간판만 보고 들어온 손님들은 "처음으로 비건 음식을 먹어보는 계기가 됐고, 맛있어서 놀랐다"는 후기를 남겨줬다. 그런 리뷰를 확인하는 시간들이 너무나 즐거웠다. 내가 비건 세상에 0.000000001g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내가 설명해준 대로 손님이 이해하고, 주문하고, 그대로 요리를 내어주고, 어땠는지 표정을 보는 재미도 오랜만에 느꼈다. 카페나 펍,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10년 이상을 아르바이트하다가, 대학 졸업 후엔 모니터 앞에서만 일하게 된 내가 자주 그리워하던 감각이었다. 오랜만에 그 감각을 느끼니, 역시 나는 바로바로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는 접점의 일이 좋았다. 그리고 통장에 숫자로 꽂히는 월급이 아니라, 돈통에서 보는 현금의 맛이란... 


평소 해보지 않은 일을 함께 실행해본 우리.


이런 맛을 잊지 못해, 이후 우리는 비건 페스티벌에도 푸드 셀러로 나가고, 그 계기로 다른 마켓에도 비건 관련 셀러로 나갔다. 할 때마다 여전히 부족함을 처절하게 느끼고, 수입의 ‘소꿉장난스러움’에 현타가 올 때가 많지만, 요리 학교도 안 다녔고, 취미로 하는 것 치고도 아주 잘하는 축에 속하지도 않아서 매번 자기 검열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이 분야의 만만찮음을 알고 그 안에서 조금씩 배우는 맛, 사람들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선택지를 늘려주는 맛은 앞으로도 좀 오래 달짝지근하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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