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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Aug 03. 2020

미워하지 않을 용기

벤 바레스, 어느 트랜스젠더 과학자의 자서전


몇 년 전, L선배가 “네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요건은 뭐냐”고 물었다.

“문장이요.”

글쟁이는 문장세공사요, 나도 그런 ‘글쟁이’가 되고 싶다고 꿈꿨다. 그 꿈이 쌓이면 멋진 칼럼을 쓸 수 있다고도 믿었다.

글밥으로 먹고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은 조금씩 변해갔다. 쭉 읽고 난 뒤 돌아섰을 때 머리속을 관통하는 문장을 쓸 수 있다면 뛰어난 글쟁이다. 하지만 뛰어난 글쟁이는 문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니 ‘뛰어난 글’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다양하다.

완벽한 논리구조, 마음을 뒤흔드는 문장, 감탄을 자아내는 단어 선택 등의 총합인 글은 많은 이들 입에 오르내릴 수 있지만, 갓 배운 한글로 삐뚤빼뚤하게 써내려간 시골 할머니의 일기만큼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이 경우 우리는 무엇을 뛰어난 글이라고 할까. ‘꽃이/꽃은’ 사이에서 지독하게 고민한 소설, 낙엽처럼 스러져가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토해내듯 쓴 글, 둘 중에선 어떤 글이 더 뛰어날까. 사실 모두 뛰어난 글이지만, 아무래도 내 마음은 점점 후자에 기울어간다.

벤 바레스의 책, <벤 바레스 : 어느 트랜스젠더 과학자의 자서전>도 그랬다. 이 책의 문장은 수려하지 않다. 하지만 마음이 간다.

1954년 태어난 바바라 바레스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학업에서 두각을 보였고, MIT를 거쳐 다트머스 의학대학원에 들어가 의사가 된다.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여정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쌍둥이 여동생과 ‘다름’을 깨달았고, 심지어 생리도 하지 않았다(난소를 제외한 내부 생식기관 없이 태어난 뮐러관 무발생 증후군 때문). “성별 혼란으로 인해 느낀 지속적인 괴로움, 낮은 자존감, 강한 자살 충동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할 정도였다.

또 그는 여성의 학구열을 온전히 존중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 같던 시대를 살아내야 했다.


“MIT에서 들은 인공지능 수업에서 나는 아주 어려운 기말 숙제를 풀어온 유일한 학생이었다. ...(중략)... 교수는 나를 비웃으며 남자친구가 대신 풀어준 거 아니냐고 말했다. 내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간주한 것은 공정하지 못한 데다 사실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몹시 불쾌하고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뿌리 깊은 성차별적 발언이었다는 사실을 몇 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교수는 그렇게나 많은 남자들이 풀지 못한 문제의 답을 한 여학생이 알아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트머스 의학대학원) 첫해에 들은 해부학 수업에서는 남자 교수가 여성의 나체 사진을 슬라이드쇼로 즐겨 보여주었는데, 고맙게도 한 남학생이 수업 후 교수에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종종 남자 교수들은 강의 후 여학생이 질문하면 그 여학생이 아닌 가까이에 있는 남학생에게 대답을 해주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했다. 나는 신경병리학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에 관심이 있었고 다행히 나를 받아주겠다는 교수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자기 아내의 대화 상대로 나를 연구실에 들인 것이었다. ...(중략)... 여학생은 사람들이 원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 존재라는 느낌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무려 17년 동안 학업에 학업을 마치고 스탠퍼드 교수가 됐어도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바바라 바레스는 신경아교세포라는 생소한 연구주제로 뛰어드는 토대를 만드는 데에 애먹었다. 국립연구소 사무관 두 명의 예산 지원이 없었다면, 학교를 떠나야 했을지 모를 정도다. 그런 어려움을 딛고 자신의 분야에서 정말 ‘일가견’을 이뤘는데도 세상은 그의 성별부터 따졌다. 이후 한 세미나에서 ‘벤 바레스’의 발표를 들은 한 참석자가 “이 사람 연구가 여동생보다 훨씬 낫네”라고 말했다는 부분은 실소마저 자아낸다.

ⓒSharon McCutcheon

그러나 벤은 ‘바바라’의 원망을 복기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그 시절의 고민을 털어놓고, 자신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갔는지를 얘기할 뿐이다. 만 43세에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에도 그는 변함없었다. “익명성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제가 원하는 바도 아니다, 저는 제가 누구인지 감추는 것에 지쳤다”고, 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한 채 견디고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라도 사람들의 눈에 드러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런 삶을 살았다.


“나는 트랜스젠더 과학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젊은 성소수자 과학자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 나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자기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중략)... 옷장 안에 갇혀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편견을 가진 소수 때문에 그렇게 살아간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래서 벤은 말이 필요할 때 말했고, 글이 필요할 때 썼다. 2005년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이 성차별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벤은 그를 비판하는 글을 <네이처>에 실었고, 꾸준한 문제 제기를 멈추지 않았다. 후배 연구자들의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도 힘썼다. ‘안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험을 택하지 않기 마련이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조차 피한다. 벤은 달랐다.


“정년보장이란 것이 있는데도 많은 교수들이 목소리를 내고 진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중략)... 흔히 말하듯, 지도자란 타인을 돕기 위해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사람이다.”


“변화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맡은 부분에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다양한 관점이 혁신을 일으킨다는 많은 연구 결과처럼 과학의 번영이 여기에 달려 있다. 다양한 젊은 과학자들이 성공하는 것은 그들이 똑같은 옛 데이터를 완벽하게 다른 방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산 같은 편견에 맞서지 않고 첨단과학을 발전시키기는 어렵다. 우리 모두는 우수하고 영리한 젊은 과학자의 열정이 소멸하여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일이 없도록 이 장벽을 인식하고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비극은 오늘날에도 여성, 성소수자, 라틴계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그밖에 남과 다른 면이 있는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편견과 차별에 관한 한 우리 모두 ‘괴물’이다. 학계가 다양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환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선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작단계라는 점은 알고 있다.”


결국 그는 안전지대를 벗어났다. 이 모든 험난한 과정을 겪고 난 뒤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았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까지도. 나는 미워하지 않을 용기를 가진 어느 과학자의 책을 덮으며 ‘정말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공개하고 내 능력이 닿는 만큼 훌륭한 과학자이자 선생, 그리고 인간이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최선을 다했다. 학자로서 이처럼 즐거운 경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특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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