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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Dec 31. 2022

이름을 밝힌다는 것

격조 있는 서방언론들은 '실명 보도 원칙'을 견지한다고, 격조 있는 지식인들은 늘상 말하지만 NYT니, WP니, FT를 추앙하는 이들은 부인한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익명'을 선호하는지를. '이름 없는 꽃'으로 남는 삶이 얼마나 편리한가. 사람들은 알고 있기에 좀처럼 이름 석 자를 밝히려 하지 않는다. 디지털 기록으로 영구박제되는 세상이라 좋은 취지로 남겨진 이름이어도 지워달라는 요청이 빈번다.


이름이 기억된다는 게 부담스러운 일인 것도 맞다. 직업상 욕먹는 일이 비일비재한 나조차도 그냥 악플과 이름이 언급된 악플이 주는 느낌은 다르다. 조금 더 무겁게 말하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뒤 어느 날에도 ○○○을 검색했을 때 바로 뜬다? 미래의 누군가가 2020년대의 세상을 내 글로 파악하고 이해한다?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그만큼 이름 석 자로 남는 일은 무거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 한 해 내게 이름 석 자로 또렷이 남은 사람이 있다. 유최안. 스스로 용접한 0.3평 남짓한 철제감옥에 자신을 가둔 채 31일을 버틴 사람.

(c) 금속노조

기자로서 볼 때도, 그의 이름 석 자는 이제 기사 제목으로도 뽑을 수 있는 명백한 고유명사다. 그렇지만 슬픈 고유명사다. 나를 비롯한 기자들이 올 한 해 그의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써내렸던 글들은 전부 투쟁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투쟁들은 웃으면서 끝나기보다는 비통한 마음을 안고 끝맺어버린 슬픈 싸움들이었다.


"원래 당대표는 안 만나요."


유최안과 동지들이 노조법 2, 3조 개정을 촉구하며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를 기습 점거한 날, "어떻게 되냐"는 나의 질문에 어느 당직자는 이렇게 답했다. 그의 말마따나 이재명 대표는 스무날이 넘게 굶고 노숙한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 침묵과 무관심의 시간이 켜켜이 쌓이는 사이에 유최안이 먼저 병원에 실려갔고, 남은 자들은 '단식 30일'을 채운 뒤 쓸쓸하게 물러났다. 애달픈 후퇴였다.

(c)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어떤 사람들에게는 '못 배우고 무도한 사람들의 생떼'일 거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백 보, 천 보 앞서간 덕분에 한 보, 또 한 보 나아갔다. 알고 있다. 그들의 모든 투쟁이, 논리가 합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마냥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논리들이 세상을 수백 번, 수천 번 흔든 뒤에야 세상이 달라졌다. 이름 한 글자 기억되지 못하고 스러져간 이들 덕분에 말이다.


앞으로도 이런 사람들은 계속 나올 테고, 그들의 슬픈 싸움은 끝나지 않으리라. 지구가 돌고, 계절이 바뀐다지만 그들의 겨울은 제법 오래도록 얼어붙으리라.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으리라. 유최안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유최안이라는 사람이 싸웠던 모든 것에 우리는 많은 빚을 졌다.




☏ 진행자 > 그런데 지금 예를 들어서 노조 특히 대기업 노조, 특히 민주노총 산하 노조를 묘사를 할 때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강성노조 부패집단 기득권집단 이런 식으로 묘사를 합니다.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이런 걸 볼 때마다.


☏ 유최안 > 거기에 빠진 게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말씀이 빠지신 것 같아요.


☏ 진행자 > 이기주의 집단, 추가하겠습니다.


☏ 유최안 > 왜냐하면 노동조합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조차도 노동조합법 2조·3조의 한계인 거거든요. 노동조합법 2조·3조에서 허락한 노동조합의 권리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어요. 조선하청지회가 올해 여름 파업을 하면서 150명의 노동자들이 모든 조선하청노동자들의 권리를 올려라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불법이 되는 거죠. 노동조합의 조합원들만 챙겨라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다, 이게 지금 노동조합법 2조 ·3조의 한계인 거거든요.


☏ 진행자 > 다른 노동자 다른 사업장에 대해서 언급하는 순간에 그게 또 불법이 된다, 이런 말씀이신 거죠?


☏ 유최안 > 맞죠. 노동조합법 2조·3조로 노동조합을 이기적으로 만들어 놓고 노동조합이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인 거죠. 그래서 지금 노란봉투법에서 주장하는 건 파업의 범위를 확장시켜라라는 거잖아요. 법과 제도는 누구에게나 적용돼야 하는 거지 비정규직이라든지 특수고용이라든지 아니면 5인 미만이라든지 이렇게 누군가의 권리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놓고 이걸 법과 제도 탓을 하지 않고 그 피해자들한테 책임을 지우는 건 문제가 아주 심각한 거 아니겠어요.


- 2022년 12월 3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c)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저희와 무슨 상관있습니까'라고 묻는 세상"이라던 성탄 미사 강론이 자주 생각나는 세밑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며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오신 주님"이라던 신부님 말씀처럼, 다들 '각자도생'을 당연시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내줌으로써 다른 이들의 곁을 지키려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선언하는 유최안과 또 다른 유최안들이 부디 더 따뜻한 새해이기를.




☏ 진행자 > 나아지는 게 정말로 전혀 없다고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 유최안 > 네, 나아지는 게 없어요. 왜냐하면 저희 아버지께서는 혼자 벌어 가지고 부모님 모시고 살 수 있었고요. 저는 혼자 벌어서 아들 딸 낳고 가정도 꾸리고 살 수 있었는데 우리 아들이 살고 있는 우리 아들이 살아가야 될 세상을 보면 지금 아버지가 누렸던 제가 누렸던 그런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보장할 수가 없거든요.


☏ 진행자 > 오히려 그러면 우리 부지회장님의 자식 세대는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이걸 염려하시는 겁니까?


☏ 유최안 > 그게 가장 큰 걱정이고 그게 많은 분들이 노동조합을 하고 있는 이유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 같은 인터뷰에서




그리고 부디 새해에는 정치가 이들에게 제대로 응답하기를. 다들 익명으로 남길 원하는 시대에 이름 석 자 걸고 일하는 직업이라면, 그 이름 석 자가 제대로 남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계산기 두드려 이해타산 맞을 때만 남길 이름이라면, 애초에 공적 자격을 얻을 이유 따윈 없지 않은가. 부디 이름 석 자 거는 당당한 정치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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