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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Jan 04. 2023

영등포역을 지나치는 당신이 몰랐던 것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절망해본 적 있는가.


여느 갑남을녀에게는 희소할 경험이다. 나도 2016년 1월 초까지는 그랬다. 불과 몇 달 뒤엔 아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이용했던 서울지하철 고속터미널역 3호선과 7호선 환승구간, 거기에 어떤 절망감과 당혹감이 숨어있는 줄 몰랐다. 그해 어느 날, 유모차를 끌고 이르렀을 때까지는.


아무리 찾아봐도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역사 밖으로 나가는 길 말고 다른 방편을 찾을 수 없었다.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나는 왜 미련하게 아이를 데리고, 아니 유모차를 끌고 외출했나 자책하는 순간조차 아까웠다(당연히 아이는 봐줄 사람이 없어서 함께 나왔음에도). 다행히 아기띠는 챙겨왔다. 나는 허겁지겁 버클을 채우고 아이를 폭 안은 다음 유모차를 접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는 내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익숙한 공간일수록 딱 익숙한 만큼만 보인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아무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유모차를 끌고, 아기띠를 멘 뒤에야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잊혔다. 베란다에서 먼지가 쌓여가던 유모차가 사라지고, 어깨끈이 해진 아기띠를 버린 뒤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걷게 됐다. 이제는 다시 그날처럼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절망할 일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해당되지 않을 뿐이다. 어느 겨울날, 나는 영등포역 지하상가 계단참 앞에서 몇 년 전의 나를 봤다. 고작 서너 칸 정도여도 혼자 유모차를 끌고 있는 엄마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던 날, 평소 전혀 의식 못했던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 앞에서 나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냐, 계단이냐, 지하철이냐 종류가 다를 뿐 한국의 도시는 오늘도 변함없이 약자들에게 불친절하다. 휠체어가 가지 못하는 곳은 유모차도 갈 수 없고, 장애인이 가지 못하는 곳은 아이가 갈 수 없다. 이 거대한 불친절은 분노하는 약자와 맞닥뜨리지 않는 한 추호도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가장 최전선에서 돌멩이 하나 던졌기에 불의한 도시에 조금씩 균열이 생겨왔다.


돌을 던졌던 그 사람들을 가리켜 누군가는 '시위꾼'이라고 욕한다. '장애인은 집에나 있으라'고 손가락질한다. 급기야 공권력이 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킨다. 이 지독한 갈라치기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가. 언젠가 당신이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계단 앞에서, 지하철 승강장에서 절망하는 순간에서야 깨달을 것인가.


"오늘 우리 투쟁을 조롱하고 짓밟은 경찰, 서울교통공사, 삼각지역 직원들. 여러분 모두 나중에 나이 들고 약해져서, 혹은 장애를 갖게 되면 꼭 지하철 엘리베이터 이용하십시오. 꼭 활동지원 서비스 이용하십시오. 절대 시설가지 말고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사십시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해온 우리를 짓밟고 모욕한 오늘을 꼭 기억하십시오."


- 1월 2일 삼각지역에서, 이형숙 전국장애인차별찰폐연대 공동상임대표(출처 : 페이스북)

1월 2일 삼각지역에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에 가로막혔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 (c) 전장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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