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패치를 했다면.. 그럼에도 다른점은?
언젠가 한 번쯤 이 소재로 글을 써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혹시나 피해가 가는 글이 될까 썼다 지웠다는 몇 번을 반복했다. 하지만 외국계는 국내 대기업과는 다르게 정기적인 공채를 진행하는 곳도 적고, 기업이나 직무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다. 나도 처음 입사 준비할 때 어디서 정보를 찾을 수 있을지 검색만 몇 시간씩 했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도움을 주고싶다. 진입 장벽이 높은 이곳을 들어오려는 자, 그럼에도 나가려는 자. 외국계 기업에 대한 몇가지 내용을 담아본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외국계 회사다. (더 정확히는 외국계 브랜드 컨설팅 회사, 한국에 이러한 종류가 몇 없다) 설명하기에 앞서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우리 회사는 외국계+에이전시이기 때문에 보통의 외국계, 보통의 에이전시와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그럼에도 교집합이 있는 편이니 참고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반복될 '외국계'의 정의는 업무의 호흡이 짧은, 국내 법인에 자율성이 어느정도 보장되는 외국계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마케팅 사관학교와 비슷한 형태다.
외국계 기업의 사전적 정의(초록창 참고):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계열의 기업
외국계 기업의 형태적 의미: 시어머니가 두명인 시댁살이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상상하는 만큼의 성장이 가능한 곳
외국계 기업이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 몇 개가 있다 ‘The Devil Wears PRADA’나 ‘Sex in the City’과 같은 캐시미어 코트의 커리어 우먼, 당당한 모습, 커피 한잔의 여유 그리고 하이힐. 회의할 때는 팔짱 끼고 맥주 한잔 들면서 발표하기 등 그런 모습을 자연스레 상상했다. 3년 정도 경험하고 난 후 내가 느끼는 느낌은 ‘음.. 몇 개는 맞고 몇 개는 틀리다’
공통적으로 외국에 본사를 둔 법인이라면, 두 집단의 눈치를 보게 된다. (시어머니가 두 명!) (1)본사와 (2)내부 경영지원. 본사에서 실적으로 압박을 할 때에는 우리 오피스의 모든 사람들이 똘똘 뭉치는 대동단결 대통합을 이루지만 또 놀라울 정도로 배타적일 때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반적인 문화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아리송한 양면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한 가지 정확한건 상상을 깨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어떤 형태든 어느 나라에서 왔든 한글 패치를 했으면 한국 기업이랑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기업 친구들과 비교 해 보면 막무가내로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불필요한 규칙을 따르는 경우는 확실히 적다. 다시 말해, 기본적인 상식이 좀 더 통하는 편이다.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을 해보다, 내가 후배들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받았던 질문들을 정리해 본다.
1. 외국계에서는 정말 모두가 영어(외국어)를 잘하나요?
가장 많은 질문이었다. 대게 보통 이상은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보통 이상이라고 하면, 영어로 이메일 혹은 대화의 커뮤니케이션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정도. 심지어 디자이너 더라도 우리 회사는 영어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이 어떤 업무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이 많은 직무라 영어를 많이 쓰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원어민처럼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잘하면 주어지는 기회도 훨씬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프로젝트라든지 인터뷰라든지. 마치 글을 잘 쓴다면 한 단락 소개 글을 쓸 때에 기회가 주어지 듯이. 소위 말하는 ‘영어 울렁증’이 있다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적합하다. 그리고 영어는 자주 쓸수록 확실히 늘고 일할 때 쓰는 영어도 정해 져 있어서 어느 정도 준비를 한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번외로 외국에서 살다와야 하냐는 질문도 종종 있었는데, 거주 경험이 있다 한들 언어와는 거리가 멀 수 있고 거주 경험이 없다 한들 언어적인 능력이 우수 할 수 있으니 '상황마다 다르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문화&사고적인 측면을 보자면 외국의 경험에 있는 친구들이 자율성이 보장되는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되려 외국계를 선호하기도 하는 것 같다.
2. 학벌 좋은 사람들만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어딜 가나 눈에 띄긴 하겠지만,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는 그 부분이 조금 더 어필이 되는 건 사실이다. 논리적 사고를 필요하는 부서라면 아무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것이 발현된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부서마다 성향이 다르다. 추진력이 좀 더 필요한 직무라면 그 사람이 가진 것보다 ‘해온 것’을 더욱 중점적으로 보는 것 같다. 우리 부서에서는 인턴사원의 자기소개서를 볼 때에는 최대한 ‘성취의 경험’ 중심으로 본다. 다시 말해, 반드시 다 그런 것은 아니니, 괜히 의기소침하면서 도전을 포기하진 않았으면 한다.
3. 정말 돈을 많이 주나요?
이것도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다. ‘많이’라고 묻는다면 보통의 기준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답을 하면 ‘(생각보다)아니오’가 맞을 듯하다. 보통의 기준보다는 보상을 많이 해주는 곳은 있긴 하지만 다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이곳은 ‘돈 대신 경험’이다. 입사와 동시에 퇴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하나, 경험 하나가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계단형으로 연봉이 뛴다고도 들었는데, 아직 계단 아래에 있어서인지 못 느껴봤다. 정말 돈을 안정적으로 ‘많이’ 벌고 싶다면 성과급이나 인센티브가 빵! 빵! 하고 터질 수 있는 대기업에 운을 기대 보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내 연차보다는 최소 1.5배는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수 있고 나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 때 와는 다르게 요즘엔 오히려 인턴사원의 월급이 정말 높아지긴 했다.
4. 수평적인 문화라고 들었는데..
‘수평’이라는 것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는지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본사가 어디에 있든 한글 패치를 했다면 그냥 한국 회사라고 이해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나도 회사 처음 입사했을 때, 외국계라고 해서 같이 노래 틀고 쿰치따치 리듬을 타면서 타자를 두드릴 줄 알았다. 한 바퀴 돌면서 인사를 했는데 모든 외국계가 구글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회사는 아주 조용했고 차분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건 사내 행사나 함께 모이는 미팅 시간에서는 정말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이것 또한 어떤 업종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지식을 판매하는 곳이라면 인사이트가 반짝이면 직급 관계없이 깜찍하게 받아들여진다. 한 예로, 인턴 친구의 한마디로 회사 블로그를 대폭 수정한 경우도 있다. 완전히 수평적이진 않지만 개인주의 성향도 있어서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치고 빠지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
자기 일만 알아서 잘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잘 지킨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나 같은 경우엔 누가 부르면 자동 반사 용수철처럼 반응을 하니 양쪽 귀에 콩나물 꽂고 일해도 지적받은 적은 없다. 일찍 퇴근한다고 해서 전혀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 (대신 이 부분은 눈치껏) 다시 말해, 보수적일 땐 한없이 보수적이고 개방적일 땐 한없이 개방적이다. 서로 존중만 해주자.
5. 회식은 많이 하나요?
회식은 거의 안 하는 것 같다. 한다면 점심시간을 활용한 런치 회식 정도? 술을 마시는 자리가 많은 것도 아니고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근데 영국에 본사를 둔 부동산 컨설팅회사를 다니는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술 어지간히 먹는(인)다. 회사의 형태라기보단 리더의 분위기에 달려있다.
6. TO가 없어서 전환되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대기업과의 차이점이 바로 ‘인사(HR)’ 부분인 것 같다. 대기업에서는 채용이란, 한 사람의 인생을 들이는 것이기 때문에TO하나 내는 것도 신중에 신중을 거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일단 우리 회사는 당장 리소스가 필요하다면 우선 어떻게든 뽑는다. 고용 형태가 프리랜서건 계약직이건 당장 급한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고용형태가 개인마다 다르다. 그래서 운도 따라야한다.
최종적으로는 본사에서의 최종 승인이 필요하기도 하다(그쪽까지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진다) 어찌 됐든 사람마다 계약형태가 다르고 그에 따라 연봉도 다르기 때문에 연봉과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리 친하더라도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낫다.
7. 가장 좋은 점은?
음 몇 가지가 있지만, 나에게 가장 좋은 점은 ‘주니어/피어 그룹’이다. 우리 회사는 전환형 인턴이 아니기 때문에 사원으로 입사하려면, TO가 없는 상태에서 그 TO를 만들어서라도 자리하게끔 하고 싶은 친구들이 들어온다. 보통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센스도 있다.(나도 전환돼서 그런 건 아니고 머쓱) 돈 대신 경험을 선택했기 때문에 업에 대한 고민은 물론 그에 깊이도 있다. 다시 말해 정말 능력자고 배울점이 많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건강한 경쟁심을 이끌어 낼 수 있고,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10년쯤 뒤에는 모두가 어디에서 기쁜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 물론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지만 말이다.
8. 가장 힘든 점은?
앞 서 이야기한 것과 동일한데, 자기 직급의 한 단계 혹은 반 단계 위의 일을 하기 때문에, ‘이거 진짜 내가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었다. 그만큼 개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도 상당히 높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덤덤한 편이지만, 예전에는 클릭 하나에 심장이 콩닥 거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팀원분들이 안보는 체 하고 있지만 든든히 지키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다른 회사를 가서 내 직급의 일만 한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긴 한다. 그래서 이직을 마음먹는 것이 조금 어려운 경우도 있고.
9. 어떤 사람에게 적합할까?
외국계 리더급에서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인턴/사원/선임 급이라면 주어진 일 보다 자기가 찾아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잘 맞는 것 같다. 사실 생각보다 외국계에 매뉴얼이 확고하게 잡힌 곳은 드물기 때문에, '잘 정돈이 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첫번째로, 각자가 이니셔티브를 갖고 일을 하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내가 갖고 있는 업무에서 반 발자국만 좀 더 들어가서 고민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역량이 있는 혹은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딱 딱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편한 사람들이라면 ‘아까 이 얘기 안 했잖아..(정색 혹은 당황)’을 읊조리며 벅차 할 수 있다.
두번째는, 불확실한 것을 좀 더 견딜 수 있는 사람도 좋겠다. 인턴 채용 때에도 '내 메일을 읽은 건지.. 내 자소서를 읽어보긴 했을는지..' 도통 연락이 없었다. '안됐구나..' 생각하고 취미로 배우고 있던 중국어를 살려 어학연수를 가겠노라 강남역에서 HSK 수업을 듣던 중(심지어 수업 첫 번째 날)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는데 두 번 정도 오니 느낌이 싸했다. 뛰쳐나가 공손하게 받았는데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합격 전화였다. 떨어진 게 아니고 조금 늦은 통보였다.
업무를 하면서도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다. 아예 엎어진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진행되는 경우도 있고, 다 하는 줄 알고 있었던 사업계획이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짜여있기는 하지만, 본사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사실 한 달 뒤의 일조차 정확하게 예측할 순 없다. 약간의 안갯속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좋겠다.
10. 추천하나요?
‘나 정말 한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기여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다면, 꼭 전환형이 아니더라도 도전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이 두고 있는 가치가 ‘안정’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형태든 자신이 무얼 원하고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그 기준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고 만약 그 기준이 아직 완전하게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 유연한 사고와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전력 질주해보길! :-)
화이팅!
앞 서 이야기한 것들은 정답도 아니고 매뉴얼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인 점. 그리고 한국 기업도 어떤 업종이고 어떤 직무인지에 따라 달라지듯이 같은 외국계라고 한들 칼퇴와 안정적인 업무량이 보장되는 곳도 분명히 존재한다.(우리와는 달리) 그러니 어느 정도 참고만 해 주었으면한다.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는 안개처럼 잘 보이지 않는 외국계기업 취업 혹은 외국계기업 문화에 대해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대한민국 취준생/이직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