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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onica Jun 21. 2020

영국문화원에서 보낸 1년

Lesson Learned

 퇴근 후 영국 문화원 my class에 다닌지도 벌써 1년. 처음 80 크레디트(수업 하나=1 크레디트) 받고 시작했는데, 보너스로 15 크레디트까지 더 받았고, 이제 딱 예약해 둔 세 개 수업만 남았다. 등록 비용이 적은 것도 아니고, 꽤 오랜 시간 투자해야 하는 일이라 등록 전에 인터넷 후기를 많이 찾아봤는데, 이렇게 수업을 다 끝내고 나서 쓴 후기는 별로 못 찾았었다. 그래도 1년간 나름대로 성실한 학생이었던지라, 시작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서 쓰는 글이다.



 내게 영어를 배우는 일은 어떤 목적의 행위가 아니다. 배움 그 자체가 곧 즐거움이자, 목표다. 전문성을 높이거나, 해외 취업을 위해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덜한 것 같다. 단지 영어로 된 콘텐츠를 장벽 없이 접하는 게 좋고, 영어로 이야기할 때만 느껴지는 긴장감이 좋다. 물론 좋아하는 마음에 비해 실력은 정체하는 것 같아 아쉬울 때도 있지만, 어쨌든 영어를 배우는 일은 오랜 시간 내 인생의 중요한 축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영어는 곧잘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는데, 오히려 이 사실이 발목을 잡아서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공교육을 통해 영어를 배워온 세대였고, 어려서 만난 영어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영어 문법부터 착실하게 다지고, 리스닝을 ‘공부’하고, 단어를 외우며 영어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 왔다고 자부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진짜 영어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은 왠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완벽주의 성향이 너무 강해서 한때 가장 좋아했고,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영어는 알고 보니 ‘시험용’이었고, 실제 도구로서의 영어는 어쩌면 하나도 모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아서 영어로 된 모든 콘텐츠는 애써 피해 왔다. 토익이나 영어 스피킹처럼 정답을 맞혀서 점수를 올리는 일은 시간만 조금 들여도 성취가 가능했으니 별 문제가 없었지만, 어쨌든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건 어쩐지 평생 동경하다 끝날 것만 같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영어를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2017년 4월. 일도 웬만큼 해봐서 어렵지 않고, 이 정도면 일 말고도 다른 취미를 들여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가볍게 시작하자는 마음에서 친구가 추천한 주말 영어 회화 클래스에 등록했다.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시까지 3시간 정도 부담 없이 떠드는 시간이었다. 생각 없이 등록한 이 클래스에서 나름대로 영어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얻게 된다. 당시에 클래스 선생님은 매일 영어로 사진 일기를 쓰는 숙제를 내줬다. 또 숙제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모범생 기질이 발현돼서 매일 짧은 영어 일기를 쓰게 되었는데, 이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바꿔 말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영어가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의미가 내가 상대가 한 말을 ‘리스닝’ 해서 정답 맞히듯 완벽하게 파악해야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우선 내 생각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 내 생각을 전달하려다 보면 모르던 표현도 쓰게 되고, 그러면서 상대의 말도 더 여유롭게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우선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부터 늘려야겠다는 생각에 전화 영어를 신청하게 된다. 말을 쓸 수 있는 시간 자체를 늘리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수업의 수준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필리핀 테솔 출신 선생님과 주 5일간 20분씩 대화하는 전화 영어 클래스를 1년간 들었다. 영어로 이야기를 하면 여유가 없어서 오히려 한국어로 말할 때보다 몇 배로 더 직설적이고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데, 미주알고주알 별 이야기를 다 했던 것 같다. 당시에 이직 준비 시즌이 겹치면서 답답한 회사, 답답한 상사, 답답한 내 처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이직이 확정되고 나서 클래스를 그만두게 됐는데, 당시 담당하던 선생님이 “지금까지 나랑 수업했던 학생 중에 네가 가장 오래 했어”라고 말씀해주신 걸 보면, 전화영어 수업의 평균 지속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은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주 5일 20분씩 선생님과 수다 떨듯 대화했던 저 기간에 영어 실력이 엄청 늘었다는 거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속도였고, 문법으로만 알던 영어 구조들은 웬만하면 다 익히게 돼서 일단 두려움이 사라졌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기를 다졌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이제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대화의 수준을 높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게 된 게 영국문화원이다. 우선 회사 근처에 있어서 접근성이 높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고, 교육 석사 이상의 수준이 높은 교사들만 있다는 것도 메리트가 컸다. 게다가 가격이 비싸니, 영어 공부를 진지하게 임하는 학생들만 모일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사실 2015년에 영국문화원에 등록하기 전 테스트를 보러 가긴 했었는데, 그때는 ‘Pre-intermediate’ 등급을 받았고, 테스트를 봐주던 선생님이 “지금은 일을 좋아하고,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 같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때 클래스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을 해줬었다. 2019년 6월에 다시 찾아간 영국문화원에서는 ‘Intermediate’ 등급을 받았고, 등급이 높아진 데에는 전화 영어의 덕이 컸다고 본다.


 영국문화원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년 과정을 수강하게 되면, 80 크레디트를 받게 되는데, 1 크레디트를 사용해서 90분짜리 수업 1개를 들을 수 있다. 1년이라는 기간 내에 이 크레디트를 모두 쓰면 종강하는 시스템이다. 학원 나름대로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한 달간 10번의 수업을 들으면 크레디트를 2개 더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저런 목표가 있으면 무조건 달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라 결혼/신혼여행 주간과 코로나로 인한 자체 휴강 기간을 빼고 이벤트 크레디트를 15번 받을 수 있었다.


 수업을 4개 정도 남겨 두고, 학원 선생님 추천으로 “Upper-intermediate’로 월반을 하게 됐다는 통보를 듣게 됐는데, 이렇게 수업을 듣다가 선생님의 추천을 받거나, 아니면 개인의 의지로 신청해 두 번의 테스트를 통과하면 월반도 가능한 제도도 있다. 10명 정도의 선생님으로 운영이 되고, 원하는 시간에 신청해서 들으면 된다. 한두 달 정도 듣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생님이 몇 명 걸러지고, 나중엔 그 선생님 수업을 위주로 듣게 된다. 수업 10번에 1번씩 수업 중 평가가 진행되고, 평가 결과는 애플리케이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Intermediate’ 이상의 실력이 유리하다.

물론 경험의 한계는 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영국문화원’은 중급 이상의 영어 실력을 갖춘 학생들에게 최적화한 곳인 것 같다. 보통의 한국 내 영어 회화 수업이 그렇듯 한국 학생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는데, 이때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영어로 표현을 못하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렵다. 보통 같이 대화를 나누다가도 영어 실력에 자신이 없는 학생들은 짧은 단어만 이야기하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망설이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비싼 가격에 단순히 영어 연습을 하기 위해서 학원을 등록을 하는 건 아무래도 돈이 아깝다. 일정 부분 영어가 익숙해진 상황에서 말하는 문장의 수준을 높이고 싶은 사람들이 듣는 게 가장 좋다고 본다.


2. 교재와 강사진의 수준은 보증한다.

영국문화원에서는 교육 석사 학위 이상을 받은 강사들만 활동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사 스스로 자부심도 있고, 수업의 수준도 높은 편이다. 더불어 수업 콘텐츠 자체도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워갈 수 있도록 고심하고 만든 티가 역력하다. Music을 주제로 한 수업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때에 따라 능동형/수동형으로 맞춰 쓰는 연습을 하는 식이다. 수업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과 주제가 너무도 딱 들어맞아서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서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스타일에 따라 수업 운영 방식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나랑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서 90분이 후딱 지나갈 때도 있었고, 조금 안 맞는 선생님을 만나서 “이걸 왜 해야 되는 거지?” 의문을 품으며 20분을 보낸 적도 있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라, 논쟁이 가능한 질문거리를 많이 주는 선생님이 잘 맞았다.


3.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이 회의가 오는 순간이 있다.

1년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이후의 영어 공부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당분간 재등록을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바로 이거다. 1년간 실력이 늘고 보니,  그만큼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왔다. 1년간 과정을 통해 지금보다 훨씬  유창하고 전문적인 영어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지금처럼 단순히 캐주얼한 대화를 쉽고 재밌게 나누는 걸로는  높은 실력을 갖기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분간은 조금  진지하고 어려운 방식으로 영어를 대하고, 이를 통해서 실력을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같다. 실력이  나아진 상태에서 “Advanced” 등급 반에 다시 등록해 캐주얼하게 이어 나간다면 도움이 될까. 아무튼 이제는 새로 도약하는 시기인  같고, 1년간  배운  곳을 떠날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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