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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onica Aug 09. 2020

친구가 떠나고, 반년이 흘렀다

절망에서 벗어나는 몇 가지 방법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글을 못 열던 참이었다. 친구가 일주일 내내 꿈에 나왔고, 눈을 맞추며 웃었고, 수다를 떨며 식사를 했다. 마음이 너무 공허해서 극복할 만한 책을 읽었고,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꼭 글로 남겨두겠노라 마음을 먹고 나서 한 달을 미뤘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사건이었고, 글로 적기 두려웠다.


  몰디브로 여행을 갔던 친구가 세상을 뜬 지 6개월이 지났다. 불과 1주일 전 우리는 축하를 했고, 같이 사진을 찍었고, 소회를 나눴다. 친구를 보내던 발인 날, 식장에서 마주 앉아 식사를 했던 친구의 직장 동료들이 고스란히 내 앞에 섰다. 너무 기가 막히고 참담했다.


  내가 알던 사람 중 제일 똑똑한 친구였다. 늘 신중했고, 고민이 많았다. 같은 현안을 보고도 늘 나보다 몇 배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풀어놔서 놀라곤 했다. 나는 중도에 포기했지만, 결국 기자가 되었고, 친구답게 법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에 관심을 뒀다. 친구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나면, 처음엔 믿기지 않아서 증명이 필요하고, 증명이 돼 죽음을 인정하고 나면 별의별 원망이 다 드는데, 그 와중에 세상이 저렇게 똑똑한 사람을 놓쳐서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늘 빠르고 급한 내가 갖지 못한 장점을 가진 친구였고, 만남이 끝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엔, 불안한 대학 시절을 함께 나고, 서로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밥벌이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 벅차오를 때가 많았다. 너무 자랑스러웠고, 그야말로 미래가 궁금한 친구였다.


  가족도, 연인도 아닌 사람이 죽음을 애도하기란 참 조심스러운 일이다. 분명 나와 비교할 수 없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나는 사람들이 있으니, 나는 그저 조용하고 묵묵히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제대로 된 사인(死因)을 들어본 적 없다. 어디에도 물어보기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저 조각난 소문들을 이어서 그래서 그렇게 되었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친구를 떠나보내고 몇 주간은 얼기설기 엮은 장면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친구가 죽음의 문턱을 넘기까지의 과정을, 그 끝을 홀로 감내했을 친구의 연인을, 멀리서 소식을 들은 그의 가족들을. 직접 본 적 없지만, 그랬음직한 장면들이 엮여 계속 리와인드됐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목 놓아 우는 시간도 결국 잠잠해지고, 그 뒤론 상실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우리가 같이 쌓은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무런 형체 없이 사라진 ‘우리’의 말들이 믿기지 않았다. 내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기억의 대상이 하루아침에 형체 없이 증발해 버렸을 때, 우리가 함께 쌓은 말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 친구가 혼자서 쌓았을 많은 시간들, 친구가 ‘친구답게’ 사느라 연소시켰을 많은 에너지들. 다 결국 어디로 가는 걸까? 형체를 알 수 없는 의문들이 떠나질 않았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그런 마음을 두고 ‘상실감’이라 하는 것 같았다. 슬픔은 잠잠해져도 상실감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친구의 죽음이 남긴 게 있다면, 어느 예기치 않은 순간에 죽음을 떠올리게 됐다는 거다. 남편과 마트에 갔다가, 혼자서 자동차에서 물건을 가져오겠다며 떠나는 남편을 보다 문득 무서워져서 황급히 같이 따라나서기도 했고, 동생들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행선지와 근황을 몇 번이고 물어보게 됐다.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결국 더 ‘잃고 싶지 않아서’ 하는 행동의 발로라는 게 섬뜩할 때가 있지만, 어쨌든 어떤 예기치 않은 충격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게 남은 것 같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6월에는 친구가 계속 꿈에 나왔다. 꿈의 내용은 다 똑같았는데, 친구가 죽은 게 아니고 사실은 살아 있었고, 오보였다는 걸 알고 둘이 부둥켜안으며 기뻐하고, 그간 못한 이야기를 쉼 없이 쏟아내면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그런 꿈을 꾸고 난 아침엔 착잡하면서도 따뜻한 기분이 들곤 했다. 앞으로 못 볼 사람을 꿈에서라도 볼 수 있다는 게 기쁜 일이 될 줄이야. 감정의 폭이 한층 더 넓어진 것 같았다. 같은 꿈을 일주일 내내 꾸고 난 어느 날, 내가 꾹꾹 눌러 담아 놓은 죽음의 충격들을 끄집어내서 정리를 해야겠단 결심이 섰다. 그러고 들었던 책이 셰릴 샌드버그의 <Option B>다.



  <Option B>는 셰릴 샌드버그가 여행지에서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죽음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글로벌 리더답게 죽음을 ‘건강하게’ 극복한 개인적 경험을 사회로 확장해서 상실의 고통을 겪는 많은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책은 말 그대로 샌드버그가 남편을 떠나보내는 과정을 일기를 써내려 가듯이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 과정 자체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한편으로는 상실감이라는 감정의 늪에서 이성을 찾고, 나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됐다. 앞에서 몇 주간 친구가 떠난 장면을 끊임없이 리와인드했었다고 했는데, 샌드버그도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와서 남편이 쓰러지고, 쓰러진 남편을 발견하고, 자신이 울부짖었던 과정을 끊임없이 생각했다고 한다.


  충격의 시간에서 6개월이 흐르고, 요새는 나의 ‘인간다움’에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슬픔도 옅어지고, 이 아픔의 시간도 결국 희미해질 테니 말이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나, 우리가 결국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친구는 내게 어떤 말을 할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나의 미래에 네가 없단 사실이 신경질 나게 속상하지만, 샌드버그가 남긴 지혜의 구절로 나를, 내 친구를, 우리의 시간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Death ends a life, but it does not end a relat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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