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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현 Jan 30. 2020

내 인생의 10곡

나의 희비(喜悲)를 함께한 10곡


이즘(IZM)에서 필자들의 '내 인생의 10곡'을 소개한다는 흥미로운 특집을 기획했다. 인생에서 손꼽을 무언가를 고른다는 건 쉬우면서도 어렵다. 나의 희비(喜悲)를 함께했던 '내 인생의 10곡'을 뽑아 보았다. 뽑고 나서 보니 내 취향도 참 한결같다. 내 플레이 리스트에서 쉬지 않고 건재할 10곡을 소개한다.




토토(Toto) 'Georgy porgy'
이 글의 필자 이름을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실용음악과 출신인 나의 대학 시절 별명은 '조지 포지(Georgy porgy)'였다. 토토는 실용음악과 학생들의 우상이었고, 앙상블 수업 때면 토토의 음악은 연주곡의 필수 항목이었다. 별명 때문에 알게 된 이 곡은 건조한 피아노 리프 위에 'Georgy porgy pudding pie!'를 외치는 후렴구가 묘미더라. 이건 '좋아서' 고른 인생곡이자 '진짜' 내 인생과 직결돼있다.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 'Elephant'
고3 입시생이었을 때, 연습을 끝마치고 집으로 가던 새벽길을 가득 메운 곡이다. 연습실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거리 10분, 이 노래를 두 번 들으면 집에 도착했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가, 나의 도착점은 어디인가..'를 되뇌며 그때만큼은 누구보다 괴로운 내가 되어 귀가하던 새벽 1시, 잔잔한 기타 소리를 머금는 데미안 라이스의 목소리는 19살 소녀의 마음을 쿵, 쿵 내리쳤다. 세상 슬픈 일은 다 내 것인 것만 같게 느껴졌던 노래.



알 자로(Al Jarreau) 'We're in this love together'
기억한다. 혼자 떠난 여행, 생전 처음 밟는 땅에서 나는 이 노래를 주저 없이 틀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몇 번을 반복해 들었는지 모른다. 이 곡이 수록된 < Breakin' away > 앨범은 전곡이 다 내 취향이다. 나를 퓨전 재즈에 흠뻑 젖게 한 내 인생의 명반. 이 노래만 있으면 뭐가 됐든 사랑에 빠질 수 있다. 'We're in this love together(우린 사랑에 빠졌어요) / We got the kind that' ll last forever(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기대해요)' 이 노래를 사랑하는 내 마음도 영원히 지속되리!



윤종신 ‘동네 한 바퀴’
이별 , 윤종신의 '동네  바퀴' 들으며 동네  바퀴는 걸었다. 이별 노래인데도 템포는 미디엄, 멜로디는 한없이 희망적이다.  덕분에  슬프고,  울었다. '   너와 나의 이별 이야기'.  노래에는 되찾을  없는 누군가의 시절이 담겨있다.  또한 그랬다. 인생곡이  있나, 나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면 충분하다.



캣 스티븐스(Cat Stevens) 'Morning has broken'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Morning has broken'을 오랜만에 들었다. 사실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한 게, 어릴 적 어디선가 들었던 흐릿한 기억 때문에 익숙하다고 여겨지는 탓이다. 투박하고 꾸밈없는 피아노 인트로가 처음에는 좀 방정맞다 싶더니, 웬걸. 듣다 보니 이렇게 서정적일 수가 없다. 그의 다정한 목소리와 촌스러운 창법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이 노래만 들었다. 원곡은 찬송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독교는 기독교를 알아보는 법'인가, 우스운 생각도 해봤다.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Step'
그럴 때가 있다. 여행을 갔는데 괜히 창밖 풍경에 심취하고 싶을 때, 잠들기 전에 센치한 밤을 보내고 싶을 때! 한 마디로 그냥 분위기 잡고 싶을 때 듣는 음악이다. 둔탁한 드럼 사운드와 몽롱한 기타 소리, 특히 중간에 나오는 '뚬~ 뚜둠, 뚜둠'하는 허밍 소리는 너무 짧아서 아쉬울 지경이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냥 좋다.



황신혜 밴드 '짬뽕'
이 노래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됐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중학교 때 죽어라 다니던 노래방에서 이 곡은 나의 18번이었다. (사실 함께 간 친구들이 내가 이 노래만 부르면 배꼽을 잡고 웃는 모습에 더 흥이 났다.) 황신혜가 '배우' 황신혜인 줄 알았더니 익살스러운 남자의 목소리로 '짬뽕!'을 외치지를 않나, 게다가 알고 보니 황신혜 밴드의 '황신혜'는 '황당하고 신기하며 혜성 같은'의 줄임말이더라. 말 그대로 황당하고 신기했다. 세상에 이런 노래도 있구나 싶었다. 나는 아직도 짬뽕을 먹을 때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



브로콜리 너마저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중고 서점, 시디 코너에 갔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시디를 샀다. 집에 와서 플레이어에 시디를 넣어 놓고는 책을 펼쳤다. 앨범의 두 번째 수록곡, 평범하기 그지없는 피아노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관심 없다. 갑자기 쟁쟁한 일렉트로닉 기타가 등장한다. 조금 놀랐다. “그런- 날이- 있어“ 덕원이 노래를 부른다. 자꾸 한 템포씩 쉬면서 노래를 하는데, 이게 나를 멈칫하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던 손이 멈추고, 가사를 곱씹는다. 그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지! 그럼에도 위로받던 순간들을 불쑥불쑥 들춰낸다.



토이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돌이켜보니 이별을 참 많이도 했다. 어릴 적의 이별은 무방비한 슬픔으로 가득 차서 애써 좋았던 순간들을 꺼내 보고, 애써 눈물을 흘려댔다. 난생처음 겪는 슬픔에 심취한 모양이다. 고조 없는 이 음악은 불 꺼진 방에서 가만히 듣기 딱 좋은 이별 송이었다. 담담한 윤상의 노래와 잔향이 짙게 깔린 일렉트로닉 피아노로 메워진 이 곡은, 슬픔을 부추기는 웬만한 발라드보다 더 슬펐다. 앞으로도 내 이별 송은 이 노래다. 아니, 이별은 이제 그만~~~



아론 네빌(Aaron Neville) 'Don't go please stay'
나의 아빠는 음악을 유독 사랑했다. 중학교 시절, 오래된 LP로 아빠가 들려준 이 곡은 우습게도 한국 발음으로 '똥-꼬(Don't go)'로 시작되었다. 동생과 배꼽을 잡으며 웃어더랬다. 아론 네빌 특유의 느끼한 창법으로 보나, 촌스러운 멜로디로 보나 영 내 취향은 아니다만 이 곡을 듣자면 엘피판을 만질 거리던 아빠의 투박한 손길과 왁자지껄 웃던 동생의 모습, 그리고 주방에서 들리던 엄마의 칼질 소리까지 배경음악처럼 떠올라 마음 따뜻해지는 곡.

매거진의 이전글 2019년의 음악계를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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