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형, 노래의 의미
추위가 한풀 꺾였다. 지난주에는 한파가 겉돌아 베란다 문을 몇 분 이상 열어놓지 못했는데 오늘은 베란다에 무려 빨래를 널었다. 그러고는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이했다.
우리 집 건너편 저 멀리에는 롯데타워가 보인다. 하지만 가끔은 미세먼지 때문에 아예 정체를 감출 때도 있다. 집에만 있는 요즘이라 굳이 미세먼지의 위험도를 체크하진 않지만 우연히 밖을 바라봤을 때 롯데타워의 흔적으로 미세먼지의 높낮이를 파악하고는 한다. 오늘 정도면 ‘보통’ 정도 되겠다 싶었는데 확인해보니 역시나 보통이 맞았다.
생각해보니 이사를 오고 난 뒤는 겨울이어서 이 작은 베란다라지만 크게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 내심 아쉬웠다. 사실은 베란다를 바라볼 때마다 그랬다. 예를 들면 친구들을 불러 고기를 구워 먹는다든지, 폭신한 의자를 가져다 놓고 하늘을 보며 책을 읽는다든지. 하다못해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개그맨 부부의 ‘베란다에서 라면 먹기’도 조금은 도전해 볼 용기가 커졌을 테다. 내내 봄만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19로 재택근무를 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사실 재택근무라 하면 종종 침대에서 업무를 보기도 하고 중간중간 빨래를 돌리기도 하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아무리 그런 재택근무라도 휴가는 필요하다. 여러 가지 연유로 반차를 냈다. 올해의 목표 중 하나를 ‘2주에 책 한 권 읽는 것’으로 정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렇게 오늘 하루 만에 선물 받은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한동안 책을 멀리해서 책 읽기가 꼭 초등학생 때 독후감 과제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어렵지도 않은 일을(일이라고 하니 수동적인 느낌이 들지만) 단 한 시간 반 만에 해내고 나니 어쩐지 새해가 퍽 순조롭게 느껴졌다. 새삼 내가 ‘속독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샤워를 한 바탕 끝내고는 빨래를 널었던 것이다. 화창하고 춥지 않은 날씨에 감사해했던 게 언제였던가- 문득 돌이켜봤다. 세탁기에 있는 빨래를 꺼내 탁탁 털어서 빨랫대에 널던 중, 라디오에서 김제형의 ‘노래의 의미’가 흘러나왔다. 내가 필자로 활동하고 있는 대중음악 웹진 ‘이즘’에서는 한동안 김제형이 큰 이슈였다면 이슈였다. 선배의 선배가 좋아하고, 선배가 좋아하고, 나도 좋아했다. 이후로 종종 그의 앨범인 < 사치 >를 BGM 삼았다. 특히 이사 온 자취방에서 김제형의 음악을 들을 때면 어쩐지 내가 꽤 고독한 서울 상경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유는 달리 없었다. 쓸쓸한 목소리와 (가상 악기가 아닌)진짜 악기로 꾸려진 노래들이 더 사실적이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한 달 전쯤이었을까. 이사 온 자취방에서 ‘노래의 의미’를 듣던 도중, 문득 나는 이 집을 구하던 때를 떠올렸다. 멀지 않은 곳에 내 가족이 살지만 이 집을 구하기까지의 과정은 고단하고 녹록지 않았다. 정해진 예산과 한 치의 양보 앞에서 치열하게 타협해야 했고, 회사를 거점 삼아 좌우로 뻗친 노선도를 체크하며 동서남북으로 이 집 저 집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 그렇게 구한 자취방이다. 노래의 의미를 따지는 이 노래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때의 고독함을 느꼈다.
이후 또 한 달이 흘렀다. 햇빛 아래 빨래를 너는 이 순간이, 스스로를 ‘고독한 상경자’라 칭하며 잠시 자기연민에 빠지던 때를 비웃기라도 하듯 짜릿하게 눈부셨다. 같은 음악이라도 언제 듣느냐에 따라 이렇게나 다르다. 지금은 자유로운 혼자의 삶이 단지 낭만적일 뿐이다.
그나저나 춥다. 베란다 문을 닫을 때가 됐다. (…) 닫았다. 외부와의 소음이 차단됐다. 다시 고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