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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 Nov 12. 2018

세계와 ‘세계’의 충돌

세계문학이 나의 세계에 주는 영향과 그 의미

문학은 곧 세계의 반영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면서, 그는 세계와 대화한다. 그의 사고 안에 세계와 상호작용하여 생겨난 자신 안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이 세계는 정적으로 갇혀 있지 않고, 그 안에서 재구성하고 조립되어 문자라는 기호를 통해 표현된다. 이 기호는 사람들에게 읽혀진다. 이렇게 해석된 기호는 그들 내부의 세계에 영향을 주고, 그렇게 세계는 역동성 있게 변화해 나간다.  


소위 세계문학이라 불리는 것들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보다 더 활발하고 폭넓게 이루어져 입지를 구축한 것들이다. 아무래도 번역 상의 문제나 유통구조 등의 현실적 요소가 이 과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문제는 차치해 두고라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 되려면 작가가 구축한 그 ‘세계’가 작가 안에서만 고립되거나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만 통용되지 않고, 국경을 넘어서도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보편적 정서를 담아 내야 한다. 또, 단순히 보편적 정서 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작가가 그 ‘세계’를 조리해 내는 언어적 능력과 더불어, 다른 문학들과는 대비되는 그 ‘세계’ 만의 독창성이 널리 인정받아야 한다. 또,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빛을 발하고, 후대의 작품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며, 시대를 초월해 읽는 이들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 이것이 바로 세계 문학이다.


세계 문학은 과연 나의 세계에도 와서 끊임없이 부딪혔다. 때로는 자국을 내고 흠집을 내기도 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의 세계를 움켜잡고 뒤흔든 것들도 있었다.


나는 단테의 지옥을 통과하며 천태만상의 인간군상을 만나고, 죄에도 단계가 있는가를 고민하며 나 역시 정치적 지옥에 내 주변의, 또 현 사회의 어떤 인물을 잡아 넣을지 흥미롭게 고민해 보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의 눈으로, 그리고 루쉰의 눈으로 일본과 중국의 근대의 양상을 보며 단테의 정치적 지옥이 또 다른 방식으로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보았다.


어디 이 뿐인가. 세계문학은 나를 철학적 실존의 고민 한 가운데에 던져놓기도 하였다. 돈키호테의 혈기 충만하고 정신이상적인 행동은 내게도 허상과 실체 간의 철학적 고민을 유도하며 ‘진실이 과연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탐구하게 했던 것이다. 이의 연장선 상에서, 내 세계의 외로운 자아는 디포의 무인도에서 허상이 줄 수 있는 극단의 공포에 젖기도 하고, 혼자인 존재의 외로움, 그리고 신앙의 성장을 로빈슨 크루소와 함께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의 세계를 본질적으로 뿌리부터 뒤흔들고 재구성하게 만든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었다. 알료샤의 선함이 나의 모습일거라 여기고 싶었지만 나머지 두 형제의 인간 군상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발견됨에 혼란스러워했고, 악하다고만 여겼던 장남 드미트리의 남아있는 양심을 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대심문관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화려한 논리의 전개나 정당화도 말없는 사랑의 표현 하나에 힘을 잃게 됨에 전율했다. 결국 까라마조프 가의 세계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고민했던 것처럼 내 자신의 본성적 모습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고, 나의 세계 안에 ‘어떤 인간도 희망이 될 수 없고 단지 사랑 만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가치를 정립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세계문학의 공격 아닌 공격을 받으며 나의 세계는 자라났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세계문학은 나를 단단히 다져가기도 하고, 때로 이 모든 공든 탑을 뒤엎는 혼란을 초래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경험이 내 사고 능력에 자양분이 되어, 삶을 영유해 나가는 즐거운 힘의 원천으로 기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발버둥치며 말로, 글로, 행동으로 묻어나오며 다른 이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존재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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