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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 Nov 12. 2018

그래픽 노블과 웹툰의 경계를 넘다

정지훈과 <수평선>

무려 10년도 더 된 일이다. 다음, 네이버, 야후 3대 포털이 웹을 장악하던 시절이 있었다. 포털은 소위 '인터넷 만화'의 창구를 제공하여 실험적인, 그러나 이제까지 소개되지 않았던 만화가들의 연재처가 되어 주었다. 다음 만화속세상에서는 강풀과 강도하, 네이버 웹툰에는 조석과 김규삼, 야후에는 이말년과 기안84가 있었다. 이들은 종이 만화책의 '넘기는' 방식이 아닌, 스크린에서의 '스크롤'을 통해 새로운 화면 구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신선한 소재 및 구성, 그리고 재미있는 컨텐츠를 통해 점차 대중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컨텐츠의 새 시대를 열었던 강풀의 <순정만화>


당시의 나는 아직 메이저와 마이너의 경계에 서 있던 웹툰을 매우, 많이 사랑했다. 스마트폰의 보급화에 발맞추어 등장한 웹툰은, 읽기 간편하고 공짜(!)에다가 스토리의 구성은 만만치 않았다. 또한 이제까지 한국만화에서 간간히 드러나던, 일본 망가로부터의 영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웹툰 특유의 실험정신을 허용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나는 웹툰을 접할 때마다 한국 만화계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이제 웹툰은 컨텐츠가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거대 자본이 툭하면 기웃거리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웹툰 작가는 성공한 직업,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각광받는다.


자료: 한국콘텐츠진흥원, 출처: 한국일보 2018.09.12 기사




10년전 볼만한 웹툰을 검색하던 나는, 야후에서 정지훈 작가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접하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바 있다. 만화 속에서는 전신화상을 입고 가족을 잃은 주인공의 절망이,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희망으로 바뀌어간다. 피해-가해 구도의 서사에 흔히 등장하는 보복과 복수를 넘어, 사랑과 용서, 회복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것이다. 나는 작가가 아직 군입대를 앞둔 매우 젊은 작가라는 것을 알고는 다시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토록 젊은 작가가 이렇게 깊은 스토리를 그려낼 수 있을까. 

정지훈, <너에게 하고 싶은 말>


더 이상 웹툰이 하위 문화/마이너 문화가 아니게 된 지금, 정지훈 작가는 웹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장인 정신을 갈고 닦았다. 그는 선이 굵고 무거운 주제를 압도적인 스토리와 긴장감 넘치는 연출력으로 풀어가는 재주가 있다. 이번 <수평선>에서는 자신의 장점을 백분 살려내어, 더욱 진해진 사유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 만화는 디스토피아/아포칼립스물이자 보이밋츠걸(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이야기류)을 큰 줄기로 하고 있다. 전작과 유사한 점이 있다면, 절대비극 앞에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선악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며 자신을 깎아내며 고뇌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결코 나오지 못했을 작품이다. 그는 지극히 대중적인 웹툰으로 가장 작가주의적이며 유럽 그래픽 노블에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대작을 그려냈다. 


정지훈 <수평선> 중에서


대가의 싹이 보이는 작가가 실제로 대가로 성장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팬으로써 너무나 기쁜 일이다. 그게 자신이 애정하는 가수든, 가르치는 제자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가에게 감사하고, 또 너무나 기쁘다. 앞으로도 그가 한국 만화계에 전례없던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 보는 곳  https://page.kakao.com/home/50332367

<수평선> 보는 곳 https://m.comica.com/webtoon/episode/103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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