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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 Nov 28. 2018

소명이 아닌, 자유로운 책임

본회퍼의 <옥중서신>

삶의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고, 절망과 낙심이 마음을 뒤덮을 때. 나는 어둠과 파멸의 시기에 등장했던 선지자와 사상가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책을 읽는다. 이들의 외침은 곧 나를 깨우는 광야의 소리와도 같다. 그러면 내 마음은 곧 겸허해지며 생각을 고치게 된다. 이들만큼 시대의 아픔에 공명하지 못함을 슬퍼하며, 또 그런 나를 자각하게 해 준 이들에 감사하며.


요새 나를 일깨우는 스승은 본 회퍼다. 나치 치하에, 정의와 부정의의 보편적 선이 모호해지던 이 시기에, 그 누구보다 선명했던 그의 사상을 보라. 그의 글은 나태하고 안일했던 독일의 심장과 폐부를 찔러 쪼갠다.


독일인은 소명과 자유를 동전의 앞뒷면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을 잘 모르고 한 생각이었다. 독일인은 사명을 위해 복종하고,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하는 각오가 악한 일에 이용될 수도 있음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빚어져 소명의 수행 자체가 미심쩍게 되었을 때, 독일인의 모든 도덕적 근본 개념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독일인에게는 결정적인 근본 인식이 없었다. 이를테면 소명과 사명보다는 자유롭고 책임 있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중략) 시민의 용기는 자유인의 자유로운 책임의식으로부터만 성장할 수 있다. 독일인들은 오늘에야 비로소 자유로운 책임이 무슨 뜻인지 알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책임은 하나님께 기초를 둔다. 하나님은 책임감 있는 행위, 곧 자유로운 신앙의 모험을 요구하시고, 그렇게 모험하다가 죄인이 된 사람을 용서하시고 위로하신다.


혹자는 공적인 대결을 회피하고 개인의 도덕성이라는 도피처를 찾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자기를 둘러싼 불의에 대해 자기 눈을 감거나 자기 입을 봉하게 마련이다. (중략)
누가 버티는가? 자신의 이성, 자신의 원칙, 자신의 양심, 자신의 자유, 자신의 덕행을 최후의 척도로 삼지 않는 사람만이 버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분과의 전적인 결속 속에서 이루어지는 복종 행위와 책임 있는 행위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온 생애를 하나님의 물으심과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되게 하려고 애쓰는 책임감 있는 사람만이 버틸 수 있다. 이런 책임감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 본 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중



나는 사명의식에 투신하다가 낙오된 자들을 많이 봐왔다. 그러다 지쳐 나가떨어진 자는 쉽게 개인의 내면 안으로 침잠하기 쉽다.


나 역시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이 아닐까, 이 긴장감을 내가 죽기까지 잘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때가 종종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본회퍼는 그런 내게 주입된 사명이 아닌 '자유로운 책임'을 가지라며, 나의 도덕성을 기준 삼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책임감 있는 삶을 살라고 격려한다.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려다 그 사이의 틈 속에 빠지지 말고, 책임지려는 노력 끝에 나의 일방적 희생이 요구되고, 심지어 나의 밑바닥이 드러나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응답이 되려하는 사람.


오늘도 그런 사람이 되게 해달라 간구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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