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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 Jan 29. 2022

자기사랑은 답이 아니다

Love myself를 비판하며

"Love myself".

'자기사랑'은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이 세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단 하나의 철학처럼 되어가고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k-pop 그룹에 의해, 또 SNS의 등장으로 인해 더욱 중요한 가치처럼 확증되고 있다. 자기사랑이 부족한 것이 마치 모든 세상 고통의 근원인 것처럼 인식되며, 마찬가지로 현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도 자기사랑이 치유의 핵심으로 제시된다.


물론, 이 세대는 자기를 혐오하여 정신질환과 자살 등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자기혐오는 자기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기사랑과 자기혐오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오히려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대나 이상에 맞지 않는 결과를 견딜 수 없어 혐오에 빠진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자기사랑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첫째로, 성경에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는 명령과, 동시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두 가지 명령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네 몸과 같이"는 자기를 사랑하라는 것인가?
"네 몸과 같이"는 "너는 이미 네 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할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직접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않겠는가? 자기사랑은 이미 우리의 본능에 내재되어 있다. 현대의 석학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을 증명한다. 우리는 실제로, 자기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자신에게 닥치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한다.


둘째로, 성경에 자기사랑이라는 구절이 단 한군데 등장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 1-5)  

즉, 성경은 이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말세에 보이는 죄악의 한 가지 종류임을 말하고 있다. 심지어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까지 명령한다. 제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교만의 죄에 보다 가깝다.


그렇다면 자기를 사랑하지 말라는 말인가?  성경은 정확히, 자기에 대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마 16:24)"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자아는 내가 스스로 사랑하고 돌본다고 해서 더욱 보호받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 없는 자기사랑은 더욱 고립되고 왜곡될 뿐이다.


우리의 자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와 함께 살아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령이 자아에게 내린 명령이자 가르침이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자아는 끊임없이 주를 거역하고, 죄를 짓기를 기뻐하는 원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2:20)"

또, 남이 나를 사랑해야만 내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내 가치를 완성시키는 것처럼, 나 자신 역시 나를 사랑해주어야만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사랑은 잘못된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 자기사랑은 단독명령이 될 때 반드시 왜곡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면 자연히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대가 아프고 우울한 이유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확히는 “날 위해 대신 목숨을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는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가지의 사랑을 배우면 된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는 말씀처럼, 자기를 잊을 정도로 남을 사랑하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빌 2:3)"는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 이는 예수가 보이신 사랑의 모습과도 일치하는데, 그는 궁극적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는 자기희생의 사랑을 완성하셨으며, 이를 본받은 믿음의 선배들 역시 죽음과 고난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다. 이들은 자기보다 하나님을, 이웃을, 생명 살리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에, 고난도 죽음도 세상도 이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히11:38).


따라서 우리 또한 자기를 돌보고 사랑하라는 좁디 좁은 세상 사조에서 벗어나, 넓고 크신 그 사랑을 본받아 살아야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의 신조는 자기사랑에 갇힐 수 없으며, 자기사랑이 강조되어서는 안되고, 그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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