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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Jan 08. 2023

애매한 재능의 예술가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연극 <광부화가들>의 서글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내가 두고두고 좋아하는 영화로 손꼽는 것들 중 하나다. 영화가 원작이고, 동명의 뮤지컬 또한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인데, 심지어 뮤지컬 쪽이 내게는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뮤지컬 원작을 성공적으로 영화화한 경우는 많지만 좋은 영화를 더 훌륭한 뮤지컬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경우는 드문데, <빌리 엘리어트>가 그 드문 사례의 대표주자 아닐까 싶다. 


원작 영화의 감독인 스티븐 달드리가 뮤지컬 연출도 공히 맡아서 가능했던 걸까. 둘의 연출은 엄연히 문법이 다른데 각각의 방식을 고스란히 아름답게 구사하다니 너무 멋지다. 마침내 자신의 재능을 손에 쥐고 런던 발레학교로 떠나는 빌리의 등 뒤로, 그의 아버지와 동료 광부들이 합창을 부르며 쇠퇴해가는 탄광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아있다. 오직 뮤지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의 페이소스.

영화와 뮤지컬은 연출뿐 아니라 작가도 한 사람, '리 홀'이다. 뮤지컬에서 작가가 같다는 말은 작사도 그가 했다는 뜻인데, 이 역시 놀랍다. 그러니까 저 아름다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원작 영화의 감독과 작가가 그대로 옮겨와 새롭게 만든 작품이며, 곡을 쓰는데만 엘튼 존(!)이 합류했다는 뜻이다.


사실 <빌리 엘리어트>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바로 이 작가 '리 홀'의 또 다른 작품인 연극 <광부화가들>이 지금 두산아트센터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2023년 1월 22일까지).  영국의 탄광촌 광부들이 신자유주의 정부의 탄광산업 민영화에 맞서 싸우는 중에, 그 광부의 아들이 발레에 재능을 찾는 이야기가 <빌리 엘리어트>인데,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제목은 또 <광부화가들>이라니. 

<광부화가들>은 공간적으로는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이 된 '더럼'에서 북쪽으로 60km 정도 떨어진 '애싱턴'이 배경이고, 시대적으로는 마거릿 대처가 활약하던 <빌리 엘리어트>의 1980년대를 기준으로 빌리의 할아버지 이야기쯤 될 1930년 대가 배경이다. 작가 리 홀은 시대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이 두 이야기의 중간쯤의 사람이다. '더럼'과 '애싱턴'의 중간쯤인 '뉴캐슬'에서, 60년대에 태어났으니.

이 근방의 영국 북부 사람들은 대부분 탄광산업과 어떻게든 관련이 있는 노동계급이 대부분이었고, 자신의 대표적인 두 작품에서도 느껴지듯 작가 본인 또한 이러한 자신의 출생지역과 계급에 대해 작가로서 깊숙이 연결되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 같다. 


리 홀 자신이 탄광촌의 노동계급 출생으로 케임브리지에 입학해 성공한 작가인 만큼 가상의 이야기인 <빌리 엘리어트>는 일견 자신의 투영으로 보이기도 한다. 반면 1930년대 탄광노조 교양수업에서 미술을 배운 광부들이 영국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애싱턴 그룹'이 되어가는 이야기는 영국 미술사에 남아있는 실화다. 

1934년 노동조합 교육반에서 '미술 감상' 수업으로부터 시작한 일군의 광부들은 미술학 석사 졸업생 로버트 라이언의 지도를 따라 매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점차 당대 영국 미술계와 사회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하나의 현상이 된다. 이들을 8년 간 지도했던 로버트 라이언은 관련한 논문을 집필해 에든버러 미술대학 학장으로 취임하기까지 한다. 

앞의 두 작품은 연극의 주인공인 Oliver Kilbourn의 광부들. 마지막 작품은 극중 Jimmy의 작품으로 등장했으나 실제로는 애싱턴 그룹 William Scott의 그림

연극이 이어지는 동안 무대 위에는 실제 '애싱턴 그룹'의 작품들이 투사된다. 처음 작품이 투사되는 순간 객석에서는 작은 탄성이 터져 나오는데, 연극의 시작부터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광부'로 연출되던 인물들이 그렸다고 생각하기에는 대단히 인상적인 그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극 중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도 한 번 들어본 적 없이 탄광에서만 평생을 보냈다던 광부가 생전 처음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니까. 물론 이는 연극적 구성이고, 실제로는 여러 기초 수업 과정을 거쳐 얻어낸 결과물이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초기작이 주는 인상은 실로 강렬하다. 나름 정규 교육과정 12년 동안 미술 수업을 들어온 우리들 중 과연 얼마나 저 정도의 작품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특히 맨 처음 등장하는, 그리고 연극의 포스터로 쓰이기도 한 판화의 박력은 무대를 떼어놓고 봐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 


동시대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미술'은 자주 낯선 것으로 취급받는다. 고흐나 르누아르처럼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몇몇 인상파의 작품들쯤은 되어야 사랑을 받거나, <모나리자>, <게르니카> 정도의 유명세는 있어야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이 잦다. 그 밖에, 한눈에 '예쁘지 않거나' 더 나아가 다소 난해한 작품들은 자주 박한 평가를 받는다. '있어 보이는 척' 하려는 사람들끼리의 말장난이거나, 세금을 피한 재테크나 '돈지랄' 취급을 받는 일도 잦다. 세월을 아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70~80년 대만 해도 '아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거 몰라요'하는 소리를 듣는 일도 적지 않았다.


대중 예술/교양 교육이라는 것은 대부분 '너네가 얘기하는 그게 도대체 뭔데'하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모나리자>가 그렇게 대단하다는데 솔직히 그냥 보면 '미인도 아닌 여자 상반신'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을. 왜 그렇게 난리고 찬사인지, 내가 모르는, 내 눈에는 안 보이고 너희 눈에는 보이는 그거 나도 좀 알자, 하는 일종의 호기심과 질시, 혹은 그 안으로 나도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 극중 광부들이 열었던 미술감상 수업도 여기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럴진대, 영국은 지금도 사회적 계급이 도처에서 일상적으로 불쑥불쑥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라다. 1930년 대 영국의 노동계급, 광부들에 대해 예술계 일반이 가지는 인상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광부의 그림'을 본 당대의 충격을 관객에게 재현하려면, '생전 처음 붓을 잡았는데 이 정도를 그려버린' 연출 정도는 되어야 조금이라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

The Ashington Group at work, photographed by Humphrey Spender

연극은 많은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주 6일 동안 탄광 속에서 햇빛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살아가는 극한의 노동자들에게 티치아노의 화풍을 이해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떻게 감상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차라리 발견하지 못했으면 있는지도 몰랐을 애매한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인간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사실 빌리는 너무 찬란했다. 그 모든 치열하고 서글픈 시대와 투쟁이 한순간 그늘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일 만큼, 빌리의 재능과 열정은 탁월하게 빛났다. 그래서 <빌리 엘리어트>의 아름다움은 서글픈 한편 한없이 환상 같기도 하다.

현실은 아마 <광부화가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연극에서 자세하게 묘사하진 않았지만 실제 기록을 찾아보면, 1930년대 이 '광부화가들 pitmen painters'에게 쏟아진 업계의 관심은 어느 정도는 온정에 기반한 연대감의 표현, 더 나쁘게는 서커스나 프릭쇼를 향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계급 출신의 화가들'이라는 데서 오는 충격과 놀라움이 당연히 가장 먼저였고, 당대 미술에서는 다뤄진 적이 없었던 북부 탄광촌 노동계급의 생활상이라는 소재의 희소성도 주목의 이유였다.


소재에서 오는 이러한 무게감은 고흐의 보리나주 시절 그림들과도 닮아 보인다. 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일대기 중 그가 보리나주 탄광촌 교회에 재직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데, 예술가로서의 열망과 인간으로서의 연대감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의 고통이 너무나도 값지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광부화가들'의 그림이나 보리나주 시절 고흐의 그림에서도 느낄 수 있듯, 화가 자신은 물리적으로 안락하게 지내며 그려낸 풍경이 아니라 그 공동체 한복판에서 바라보고 그려낸 질감은 분명 다르다.

보리나주 시기의 고흐의 그림들. 앞쪽 감자 먹는 사람들이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고흐의 보리나주 시기 그림들은 그 힘과는 별개로, 그림 자체의 예술적 성취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흐의 대표작들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애싱턴 그룹의 작품들 또한 그 맥락과 소재 안에서 소비되었고, 독립적인 예술적 성취를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 광부들이 화가가 되는 시발점을 제공했던 '로버트 라이언'은 8년의 애싱턴 그룹 활동 후 에든버러 대학에 취임하면서, 이들의 동력도 점차 사그라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생활 예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셈이고, 여러 맥락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들이 '진지한 화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예상을 뒤엎고 애싱턴 그룹의 활동은 50년 동안 이어졌다.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이 잦아든 후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작품을 그려 나갔던 것이다. 이들의 창작열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작품의 순수한 본질만을 소비하는 일이 애초에 어디 있단 말인가. '애싱턴 그룹'의 시대와 비교하면 무한에 가까운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은 말할 것도 없다. 콘텐츠 자체의 질이나 우수성과 별개로 눈에 띄지 않으면 감상될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종류의 문제다. 문해학교에서 나이 칠십에 처음 배운 한글로 쓴 할머니들의 시가 작법의 공교함 때문에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 시들은 농도 짙은 삶이 꽉 들어찬 아름다운 문학이고, 기존의 문학이 보여줄 수 없는 관점을 드러내는 높은 예술성을 지녔으며, 그 모든 가치는 '문해학교'에서 쓰인 작품이라는 맥락으로부터 독립될 수 없다.


문제는 스스로의 열의에 눈을 뜬 예술가 본인이, 맥락과 재능을 파악할 수 있는 감각이 생기면서부터다. 나의 작품에 쏟아진 관심과 시선이, 그 자체의 우수함 때문이 아니라 '못 배운 광부가 그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알고, 그 맥락을 뛰어넘을 정도의 동력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과연 뛰어넘어야 하는가? 뛰어넘는다면 어떻게? 탄광촌 사람들의 생생한 생활상을 담아내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추상과 구상을 고민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러면 좀 더 '예술다운 예술'을 할 수 있다는 뜻인가?

연극 <광부화가들>

연극 <광부화가들>은 애싱턴 그룹 안에서도 눈에 띄는 재능을 드러냈던 '올리버'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미술 수집가이자 애호가인 '헬렌'은 애싱턴 그룹에 호기심을 보이며 후원을 이어 가다가, 특별히 '올리버'에게 자신의 후원으로 전업화가가 될 것을 제안한다. 


작품 초반부터 '올리버'는 끊임없이 '라이언'에게 묻는다. 자신의 작품이 정말 괜찮은지. '광부가 그려서'가 아니라, 정말 그 자체로 좋은 작품인지. 그때마다 '라이언'은 정답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올리버'의 저의는 회피하는 대답을 반복한다. 


"이런 건 다 테크닉일 뿐이에요. 테크닉과 퀄리티를 혼동하지 마세요." 

"좋냐 나쁘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화가의 감각이 있어요."


하지만 '올리버'에겐 좋냐 나쁘냐가 진정 중요했고, 끝내 '헬렌'의 제안 앞에서 "제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물음 끝에, "저는 진짜 화가도 아닌데요."라는 말을 이어 나간다. 그리고 결국 광부로 남기로 한다.

연극은 마지막에 '우리는 단 한 번도 상업적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실제 '올리버'의 발언을 인용하며 광부로 남기로 했던 결정과 이들의 활동을 민주적 예술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제안하며 마무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이라기엔 연극도 '올리버'의 여러 갈등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올리버'는 화가로서 인정받고 싶었고, '헬렌'의 제안을 거절한 뒤 광부로서 계속 그려나간 작품들은 갈수록 평이해졌다. 실제 무대 위로 투사되는 작품들도 후반부로 갈수록 눈길을 끌지 못하고, 극 중 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서도 이들이 특별한 '광부화가들'에서 점점 '평범한 화가들'이 되어가는 과정을 드러낸다. 시간이 흘러 다시 찾은 '헬렌'도 '올리버'에게 분명히 말한다. '실망했다'고.


삶의 현장에서 쉬지 않고 이어지는 예술은 분명 가치 있다. 제도권의 예술이 포착하지 못하는 장면들 또한 발화되고 기록되어야 하고, 그것이 당사자들의 창발하는 예술성을 통해 담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그 창작하는 예술가 당사자가 맥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저는 광부입니다. 그냥 광부가 아니라 아주 훌륭한 광부라구요."라는 대사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동시에 '광부화가'로서가 아니라, '화가'로서도 인정받고 싶다면. 스스로 있는지도 몰랐던 그 예술혼에 누군가 불을 지폈는데, 아무리 장작을 집어넣어도 좀처럼 활활 타오르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냥 '광부'로 남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겁 나느냐"던 '헬렌'의 질문에 '올리버'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이미 스스로 질문했었다. 

"내가 뭐가 될 수 있을까. 그림만 그린다고 화가가 될 수 있을까."


애매한 재능을 가진 창작자는 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림을 그릴 뿐 본업은 광부'라는 도망칠 구석도 없는, 그저 '그림을 그릴 뿐'에서 그 뒤에 이어질 말이 없는 이들은 더더군다나.

그래서 나는 이 연극이 한없이 처연하고 아름답고 서글펐다.

올리버 킬번Oliver Kilbourn(좌)과 잭 해리슨Jack Harrison(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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