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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Apr 16. 2023

핀란드에서의 고요한 현타

핀란드로 온 지 벌써 달이 조금 넘었다. 이번에 내가 안착한 곳은 핀란드 북쪽에 위치한 오울루(Oulu)라는 도시이다. 오울루는 인구가 21만 명 정도로 핀란드 북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핀란드에서 4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몇 년 전 핀란드에서 아직 공부하고 있었을 때 오울루를 한 번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눈이 엄청 많은 쨍하게 추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에 여행을 했어서인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작년에 오울루를 다시 방문했을 때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남편이 이곳에서 공부를 시작했던 작년 가을 2주 동안 휴가를 내서 다시 오울루를 방문했었다. 그때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여서 눈도 없고 날씨도 우중충했고, 남편도 적응하느라 힘들었어서 이곳에 있던 내내 둘 다 마음이 복잡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우리는 결국 오울루로 왔다.


이주한 후 정착에 필요한 행적인 업무를 처리하느라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이민청에 가서 거주 허가증을 신청하고, 잡센터에 가서 구직자 등록을 하고, Kela 카드 신청을 하고, 독일에서 보낸 짐들을 받아 집을 채우고 정리하며 보냈다.


독일에 있을 땐 특히 관공서가 너무나 케바케고 불친절해서 전화나 방문을 해야 할 때면 큰 결심을 해야 했다. 관공서를 한 번 방문하려면 빠꾸 당하지 않기 위해 여권, 거주 허가증을 포함한 모든 서류를 파일에 넣어서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갔었다. 독일어를 잘하는 남편도 무언가 물어보려고 하거나 전화를 해야 할 때면 긴장하곤 했었다. 나는 계약 만료로 회사를 나가는 것이었기에 실업 급여를 신청할 수 있었고 EU 내의 다른 국가로 이주하는 경우에도 독일에서의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을 신청하는데 두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전화도 여러 번 했었는데 받을 때마다 사람들의 대답이 케바케여서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방문해서 신청하라는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에 전화를 받은 어느 친절한 사람 덕분에 자세한 설명과 함께 관련 서류를 우편으로 받을 수 있었다. 서류를 제출하고도 또 한동안 기다려야 했고 핀란드로 출국하기 이틀 전에야 핀란드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받을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는 모든 일들이 수월했고 효율적이었고 빨랐다. 거주 허가증은 신청한 지 이틀 만에 승인을 받아 5년짜리 EU 가족 비자를 바로 받았고, 구직자 등록과 독일에서 받을 실업 급여 신청도 바로 완료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 친절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디를 가도 필요한 설명을 친절하고 자세히 들을 수 있었으며 모든 의사소통이 영어로 가능했다. 마트에서 쌀을 사서 계산을 하는데 점원이 이 쌀은 죽 끓일 때 넣는 쌀이라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고, 남편과 길에서 셀카를 찍으려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가던 길을 멈추더니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수줍게 말씀하시며 사진을 찍어주시기도 했다. 모든 게 무지갯빛으로 괜찮아 보였다. 그때까지는.




"위생 카드 받아서 청소 일이나 레스토랑 서빙 일을 찾아보는 게 좋을 거야."

구직 상담을 하러 가서 들은 말이었다. 나의 담당자는 매우 간결하고 솔직했다. 내가 무슨 일을 했건, 석사 학위가 있건 없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그냥 새로운 이민자이자 구직자 583번쯤 되는 또 다른 아시아인일 뿐이었다.


"핀란드에서 공부를 마쳤는데 코로나 때문에 핀란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

"운이 좋았네."


그는 자기네 구직 사이트를 띄워놓고 보여주더니 "네가 구직을 원하는 분야를 내가 미리 좀 찾아봤는데, 흠...(일자리가) 없네."라고 말했다. 다른 구직 사이트는 없냐고 물어봤더니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이트를 하나 더 보여주었다. 헬싱키나 좀 더 큰 다른 도시의 일자리도 괜찮다고 하니 구글에 'english jobs in Helsinki'라고 치면서 이렇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구글 검색을 못 해서 물어봤을까.


"핀란드에 와서 3년이 안 되었으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핀란드어 수업을 들을 수 있는데, 너는 핀란드에 처음 온 지 이미 3년이 넘었으니 네돈네산으로 핀란드어를 배워야 할 거야. 세상이 미쳐 돌아가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핀란드로 많이 이주했거든, 그래서 핀란드어 수업도 아마 경쟁이 치열할 거야."


"직업 교육 같은 건 없어?"

"핀란드어나 스웨덴어로만 진행돼."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알아서 다 하라는 얘기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가 구직자로 등록이 되었으니 구직 활동을 하는지 증명해야 한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이메일로 구직 활동을 보고해 달라고 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왜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는 이곳에 꾸역꾸역 다시 돌아왔을까. 그곳을 나와서 한참 동안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 그러다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눈 속을 헤치며 자전거로 음식 배달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외국인이었다.

하긴 어디든 외노자의 삶은 고달프고, 일자리가 없으면 더 고달프다.


Kela 카드 신청도 거절당했다. Kela 카드를 받을 수 있으면 보조금이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 처음에 독일에서의 실업 급여를 여기서 신청해야 하는 줄 알고 Kela에 간 김에 카드를 신청했던 거였는데 몇 주 후 거절 내용이 담긴 우편물을 받았다. 그 이유는 내가 핀란드에 영구적으로 거주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분명 여기 와서 주소를 등록했을 땐 영구 주소지라고 확인 서류까지 받았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소 등록 서류를 들고 Kela에 다시 찾아가서 물어보니 주소 등록 서류와는 별개로 남편은 여기 공부하러 여기 온 거고 그건 임시 거주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도 임시로 거주하는 게 된다고 했다. 아니 그럼 주소 등록할 때 우리한테 임시 주소라고 하던가. 그러면서 나에게 핀란드에 다른 가족은 없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핀란드에 다른 가족이 어찌 있겠냐고요.




최근 E2 Tutkimus에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거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외국 학생들은 공부를 마치는 대로 핀란드를 떠날 계획이며 핀란드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5명 중 2명은 가까운 미래에 이곳 떠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핀란드 고용주들은 핀란드가 아닌 해외에서 습득한 기술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핀란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느끼고 있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어렵고 국제결혼 등 가족으로 온 사람들도 핀란드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86%에 해당하는 외국 학생은 공부를 하는 중에는 핀란드에  정착할 수 있었지만 3명 중 1명은 핀란드에 계속 남아있다면 승진이나 커리어 발전의 기회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핀란드어 수업, 구직 훈련, 핀란드 비즈니스와의 네트워크 기회에 대한 지원 부족하며, 핀란드인과 친구가 되거나 네트워크를 만들기 어려운 점, 구직  시 핀란드어 혹은 스웨덴에 대한 높은 장벽이 핀란드에 정착하기 힘든 점이라고 언급하였.

Survey: Nearly half of foreign students plan to leave Finland after graduating | News | Yle Uutiset


"외국인은 창업으로 내몰리고 있는가?"

취업을 하지 못해 창업을 선택한 여성 이민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와 팟캐스트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20년 조사 결과 헬싱키 지역에서 일자리가 없는 여성 이민자의 수는 12,700명에 달하며, 외국인으로서 취업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창업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Women with immigrant backgrounds increasingly becoming entrepreneurs | News | Yle Uutiset 


이런 기사들을 읽으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나 괜히 여기 돌아와서 삽질하는 걸까.


그 와중에 핀란드는 올해도 6년 연속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로 선정되었다. 과연 그 행복은 나 같은 이민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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