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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카몰리 Nov 10. 2019

고양이, 정말 키울 거야?

아기 고양이 입양하는 날, 처음 마주하는 책임감을 느꼈다.

고양이를 키운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

이 결정을 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을 고민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졸라 애견숍에서 데려왔던 강아지 로즈가 일찍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후 내겐 다른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동생과 자취하고 있는 상황. 작은 거실과 부엌이 있는 투룸, 과연 이곳이 고양이가 거주하기에도 적합한 환경일지도 충분히 고려해야 했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은 벌이지 않는 것이 좋다. 충동적인 내가 후회할 결정을 하지 않기 위해 이토록 오래 고민한 일이 있을까? 마음속 확신이 들 때까지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동안에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모습 대신 고양이를 키워서 어려운 점, 좋지 않은 점을 위주로 찾아봤다. 그런 사례를 보며 과연 내가 어떤 상황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을 거쳤다.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본 이런 고민의 시간은 확실히 실전에 돌입했을 때 도움이 됐다. 이후 누가 "고양이 너무 귀여워, 키우고 싶어."라고 하면 고양이와 함께 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길 권한다.

털을 숙명처럼. 니털=내털 급의 개념 탑재 & 돌돌이 생활화.

숙면 포기. 새벽녘 명치 위를 뛰어다닐 수 있음.

인테리어 타협. 집안의 천 가구 뜯길 각오와 식물 인테리어 시 고양이 독성 유무 주의.

외부 약속은 필수적인 것만. 와이프, 남편보다 무서운 귀가본능 유발자. 자주 놀아줄수록 순해진다.

내새끼 아프면 내탓. 병원비 쿨하게 대줄 통장 마련. 그외 전세집 이사 시 조건 추가. 기타 등등.


시작은 유기묘였다. 크고 작은 유기동물센터의 아이들을 보고, 입양 절차를 위해 몇 차례 시도했으나 묘연이 닿지 않았다. '이 아이야!'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아파서 입양이 불확실해지고 더 이상 소식조차 들리지 않아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결심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묘연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친구가 말했다.

"우리 집 애 데려가." 매일 같이 어떤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찾아 헤매던 내게 그러지 말고 자기네 새끼 중 한 마리를 데려가라고 한 것이다. 친구네 집에서 세 번째 출산인가, 이제 삼대가 살게 돼 너무 북적여 입양처를 찾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사진 몇 장을 보내줬고, 그렇게 충격적으로 예쁘고 똘망똘망하게 생긴 하얀 눈송이 같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오게 됐다.

친구 어머니께서 찍어서 보내준 아기 고양이 사진. 같은 아이 같지만 두 마리가 남매다. 누가 나와 살게 된 아이일까?


고양님을 맞이하기 전 대청소를 하고 이동장, 화장실, 사료, 간식, 숨숨집, 스크래쳐, 장난감 등 고양님을 위한 물품을 준비하는데 몇 날 며칠 부산을 떨었음에도 뭔가 부족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 고양이용 사료를 주문했는데 아기 강아지용 사료가 배송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다행히 혹시 몰라 습식 캔 사둔 것이 있었고, 교환 처리도 빨리 되었다.)

탑처럼 쌓인 고양이 관련 용품 언박싱. 이 박스 행렬은 시작에 불과했다고 한다..

 

4월 13일, 인천터미널에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토요일. 그건 마치 조리원에서 퇴원해 아기를 데리고 처음 집에 가는 엄마의 자세만큼이나 비장했다.(아직 그런 경험은 없지만ㅎ)

친구의 어머니가 직접 고양이를 데리고 터미널로 나오셨다.

"헉!"

외투 지퍼를 열자 어머니의 품 안에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털뭉치가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3개월 된 여자아이. 실물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아서 깜짝 놀랐다.

'어떡하지, 정말 내가 이 작은 생명을 잘 키울 수 있을까?!' 고양이를 마주하자 입양의 책임감이 실질적으로 다가왔다. 불면 날아갈 듯 가냘픈 새끼 고양이.

서울역에서 돌아오는 택시 안, 바깥이 훤히 보이면 불안해 할 수 있어서 임시방편으로 테이프로 케이지 구멍을 가렸다.

순간 이 작은 아이를 정말 엄마와 무리에게서 떼어내 혼자 데려와도 되는 걸까 죄책감이 스치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친구 어머니께서 고양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아기가 매일 잠에 들던 천을 잘라 함께 넣어주셨다.

사료는 뭘 먹이고 똥꼬는 어떻게 닦아주는지, 어떻게 놀아주고 집과 화장실은 어떻게 두는지 등 오랜 세월 고양이와 함께 한 전문가에게 몇 가지 유의사항을 듣고 조심스레 케이지에 넣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너무나도 작고 여린 이 생명체와 평생을 함께 하게 됐다는 사실에 나는 내내 설렘과 긴장 사이를 오갔고,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생명은 엄청난 소음에 덜컹이는 지하철 속에서도 삐약거리는 울음 몇 번 내다 금세 쿨쿨 잠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형제자매와 떨어져 나에게 온 귀한 생명. 네가 내게 온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 줄게. 같이 잘 지내보자.  
D+3. 노트북을 좋아하는 아기 고양이.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고 베냇털이 하늘하늘 올라와 있다.



시간이 흘러,

이 순둥이는 현재 생후 11개월 혈기왕성 팔팔한 어린이가 되었고 이 글을 쓰는 내 노트북 뒤에서 꿀잠을 자고 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한 뒤 아이를 데려왔지만,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새롭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한다. 생각보다 훨씬 큰 존재감으로 내 삶에 들어온 반려동물. 이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기 위해 늦기 전에 기록해보려 한다.  

묘생 11개월 차. 언니들 껌딱지라 꼭 옆에 와서 잔다. 언니들과의 깨볶는 일상을 공개할 예정.


씨스터후드, 여자 둘 고양이 하나. 세 자매가 함께 사는 이야기.

첫째: 삼십 대 직장인 혹은 로또지망생, INTP 아이디어 뱅크형
둘째: 이십 대 취준생 혹은 로또지망생, ISFP 성인군자형
셋째: 묘생 11개월 백수, 별명 백스물다섯 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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