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게으르고도 알찬 하루다. MOMA도 즐겁게 잘 봤고 사람들 선물도 샀으며 내 떨어진 파운데이션도 장만했고 지금은 재즈바에 있다. 느지막이 4시에 나와 여기저기 많이도 돌아다녔다.
MOMA에 가는 길에 중풍에 걸린 한 사람을 봤다. 중풍에 걸린 그는 여느 환자와 다를 바 없이 걸었다. 약간 다리를 절고 특이한 박자로 몸을 크게 기우뚱하며 걸어 나간다. 하지만 뭐랄까. 그 사람은 키가 컸고, 근육질이았으며, 딱 봐도 몸 관리를 열심히 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이 그 장면을 퍽 충격적으로 만들었다. 신체적으로 월등한, 분명 젊었을 때는 날아다녔을 것 같은 그런 사람도 똑같이 아파하는 모습이 나에겐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사람은 풍화를 견뎌낸 바위처럼 그 마지막에도 늘 늠름할 수는 없는 걸까 하고 묘한 쓸쓸함도 느꼈다. 아무리 잘난 근력과 골격, 기타 등등을 갖춰도 병이 들면 속수무책이라는 것. 당연한 일이지만 왜 이리도 그 사실이 속절없고 한탄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MOMA 전시 자체는 너무 즐거웠다. 다만 금요일이기 때문에 사람이 미어터져 작품반, 사람반이었다는 것이 조금 장애요소였다. 그리고 분위기가 놀랍다. 작품을 감상하던 중에 나에게 ‘너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며 물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과 미술관에서 작은 토론을 벌일 것이라 상상도 못 했던 지라 신선하고 재밌었다. 한편에는 사진을 찍느라 셔터음이 쉴 새 없이 들렸고, 간혹 가다 아이들은 째질 듯이 웃고, 뒤에서 슬쩍 가방을 잡아당기는 소매치기 때문에 손에 가방끈을 잡고 긴장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이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는 과정은 즐거웠다. 나도 왜 좋은지 생각해본 적이 없이 그냥 막연히 ‘좋아’라고 느꼈던 것들에게 이유를 붙여주는 과정은 기분 좋은 집중력을 요한다. 이 작품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다 보면 ‘어 이건 내 친한 친구들도 모를법한 얘기다’라는 지점도 생긴다.
새벽 한 시에 재즈바를 예약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재즈바라 걸어서 금방 다녀올 수 있어 좋다. 지금 나는 마티니를 시켜놓고 글을 쓰고 있는데 세상에, 난 마티니가 이렇게 센 술인지 몰랐다. 원래 내 앞에 뭔가 마실 게 있으면 당장에 마셔버리는 타입인데 마티니의 도수가 상상 이상이라 저절로 홀짝거리며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그냥 영화에서 본 걸 따라 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던 마가리따나 시킬걸 하는 생각이 든다. 바깥은 비가 온다. 재즈바 안은 딱 좋은 온도에 분위기는 어둑하고 내가 앉은 의자는 푹신했다. 사람들이 딱 좋은 정도의 소리로 떠들고 있다. 내가 완전히 분위기에 동화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 상태로 관조하는 것도 기분이 꽤 좋다. 공연시간이 다되어 적지 못하지만 버드랜드(재즈바) 꼭 다시 온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