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길 바랄게
“파인애플 대리님, 대리님. 그거 아세요?”
“뭔데요 라임씨?”
“옆 팀 바나나 과장 있잖아요, 이번에 응암동에 집 사셨대요.”
“우와!! 정말요?“
”저번에 저랑 왕십리랑 신길뉴타운 얘기했었는데, 그냥 30평대로 가기로 하셨나봐요.“
”오…그랬구나. 축하할 일이네요. 부럽다.”
“대리님도 얼른 갈아타세요. 지금 대출 풀로 당겨서 사야 돼요.“
”그러고보니 라임씨는, 저번에 마포 본다고 하지 않았어요? 마래푸.“
”아 그게요, 매도자가 계약 취소했어요.“
”헐! 정말요? 그래도 되는 거에요?“
”괜찮아요, 배액배상 천만원 받았거든요…“
”우와! 천만원…“
라임씨는 날쌘돌이였다. 어리고 똑똑했다. 그는 아는 것도 많았고 호기심도 유달랐지만, 유독 ‘돈 얘기’에 눈을 반짝이곤 했다. 업무관련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그는 항상 돈 얘기를 했다. 은행 모기지, 서울 동네별 부동산, 재개발 재건축, 심지어는 채권, 달러까지 섭렵한 것 같았다.
”라임씨, 회사에서 그런 돈 얘기 하지 말지.“
근엄한 표정의 빨간펜 부장이 한 소리를 해도 라임씨는 여전했다. “옙, 알겠습니다!” 대답은 씩씩하게 해 놓고 이제는 나와 메신저로 부동산 수다 삼매경이었다.
“파인애플 대리님, 토스 뱅크 까세요. 내 모든 자산이 한 눈에 보여요. 그리고 제가 지난주엔 어딜 갔냐면요…”
스마트폰으로 하는 인터넷 뱅킹과 자산 운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나는 라임씨와의 대화가 꽤 즐거웠다. 일만 생각하다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환기되곤 했다. 골방에 갇혀 주어진 대로 일만 하다가 바깥 세상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라임씨, 그런데 대출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은행마다 가서 상담을 받아야죠. LTV 땜에 많이는 안나오는데요, 신용이랑 퇴직금 중도인출, 그리고 보험약관대출까지 땡기면 되요.”
“허…그럼 너무 무섭지 않아요?”
“그게 바로 영끌이죠!”
유독 라임씨는 나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아마 나의 리액션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하면 그의 말 속도는 점차 빨라지곤 했다. 심지어 그는 유튜브도 시작했다고 했다.
“영상을 편집해서 짬짬히 올려보고 있어요. 아직까진 수익이 빵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좋아질 수도 있겠죠.”
“그럼요 라임씨. 파이프를 여러 곳에 꽂아 놔야죠.”
어디서 들은 건 있는 파인애플이었다.
“대리님, 대리님도 얼른 갈아타세요. 강남 아파트에서 애들 키우셔야죠.”
항상 대화의 마무리는 강남 아파트였다. 라임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조만간 강남에 입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강남 아파트에서 예쁜 사립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네이버 부동산에 들어가 반포자이 시세를 확인했다. 한숨을 쉬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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