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회사, 원팀, 수평적인, 자유로운, 빠른 실행, 열린 소통.. 등
"그 회사는 어때?" 첫 직장에 입사하거나,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게 됐거나, 누군가 내가 재직하는 회사에 관심이 있을 때 듣게 되는 질문이다. 그럼 우리 회사는 어떤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고 "우리 회사는 이런 회사야~"라는 답변을 하게 된다. 몇 번의 이직을 통해 여러 회사를 다니게 되었고, 그 회사가 갖는 회사만의 문화와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 물으면 '회사가 거기서 거기지 뭐..'라며 답할 정도로 기업 문화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들어 '기업 문화란 뭘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이전에 재직했던 회사들을 떠올렸다. 어떤 회사와는 너무 잘 맞았고, 어떤 회사는 비상식적이었고, 또 어떤 회사는 나를 속상하게 하기도 했고 어떤 회사는 재밌었다.
오늘은 그동안 재직했던 다양한 회사들에 재직할 당시 느꼈던 기업 문화와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주요 업무는 계약된 고객사들이 요청하는 업무를 해내는 일이었고 요청하는 업무의 종류는 사이트 운영, 구축, 데이터 분석등이었다. 고객사의 비위를 맞춰야 했고, 퇴근 시간 이후에도 고객사 전화받는 일이 일상 다반사였다. 어떤 고객사와 업무 미팅을 할 땐 여직원이 꼭 참석을 해야만 했다. 뒤에서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유는 '그 회사 대표가 여자를 좋아해서'였다. 팀장과 '그 고객사'와 미팅을 하러 간 어느 날.
고객사 : ㅇㅇ님, 남자 친구 있어요?
나: 네
고객사 : 사진 봐봐요
나: 없어요.
팀장님 : 있잖아, 보여드려
나: 없어요.
팀장님 : 사진첩 봐봐
나: (마지못해 둘이 찍은 사진을 꺼내 들며) 별로 없어요 여기요.
고객사: (허락 맡지 않은 다른 사진들을 넘기며 보면서)와 ㅇㅇ님이 아까운데? 별론데? 뭐 하는 사람이에요? 얼마나 만났어요? 같이 살아요?
나: 아니요. 핸드폰 주세요.
대략 위와 같은 대화가 이어지고 너무 불쾌하고 저급한 질문을 받으며 팀장을 쳐다보니 팀장은 내 눈을 외면하고 그 고객사의 불쾌한 질문에 같이 동조하며 고객사의 비위를 맞췄다. 당황스러움과 분노, 수치스러움과 미안함, 마지못해 사진을 보여준 나 자신에 대한 후회 등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고 미팅 시간에 무슨 말이 오간지도 모르게 미팅을 마쳤다. 회사로 복귀하면서 팀장에게 말했다.
"저 이렇게는 일 못하겠어요. 왜 그런 무례한 질문 하시는데 같이 동조하셨어요?
제가 팀원이면 제 편 들어주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제 입장에서 한마디라도 해주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 이 고객사 미팅 다신 참석하지 않을 거고요, 회사 들어가서 실장님께 다 보고드릴 거예요."
가는 내내 팀장은 나의 분노 섞인 말들을 들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멋쩍게 웃었고, 나는 화로 벌거진 얼굴을 하고 눈물을 꾹 참은 채 원망의 말들을 뱉으며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실장님께 향했고 실장님께 고객사와 있었던 일을 다 말씀드리자 실장님이 팀장님을 불러 따끔하게 몇 마디 하며 타박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고객사와 하는 업무에서 빠지게 되었고, 그 미팅도 다시 참석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에도 그 고객사와의 계약은 여전히 유지됐다. 대형 고객사여서 우리 회사 매출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터라 회사는 별다른 조치 없이 쉬쉬하며 이런 일들을 조용히 넘어가곤 했다. 갑이 요청하면 술집에서 하루 몇 백만 원을 접대비로 쓰고, 갑질을 당해도 쉬쉬하는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회사 구조 자체에서 오는 문제를 기업 문화로 해소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기반의 사업을 온라인으로 확장한 패션회사. 아무래도 제조업 기반이다 보니 수직적인 문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입사했는데, 상상을 뛰어넘었던 회사였다. 입사 첫날 인사팀에서는 온보딩을 위한 가이드도 주지 않았고, 모든 건 팀에게 맡겼다. 그래서인지 신규 입사자에게 업무를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텃세가 심했다. 또, 사무실에서 쌍욕을 듣는 것과 키보드와 마우스 등을 집어던지는 장면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인사팀은 이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결국 팀 리더는 더 아무렇지 않게, 눈치 보지 않고 행동했고 이를 다른 팀 팀장도 벤치마킹하여 부하직원들을 막 대했다. 팀 리더가 하는 말은 곧 사규가 되었다. 9시 출근자들은 8시 30분까지는 미리 와있어야 했고, 리더가 소리 지르고 욕하고 물건을 던져도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했다. 전체 팀을 아우르는 기업 문화는 없었고, 팀 문화가 곧 기업문화가 되었다.
재직했던 또 다른 회사는 설립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오래된 회사였는데, 여기엔 몇 년 전부터 전통(?)으로 자리 잡은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 바로 회사 동료들이 직접 참여하여 장기자랑을 하고, 거기서 순위를 매기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매년 대규모로 장기자랑을 했는데 장기 자랑에 나가는 사람들은 자발적인 아닌 착출 되어 나가게 된다. 장기자랑이 진행되는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았다. (ㅋㅋ지금 생각해도 웃김)
1. 신규 입사자다? -> 착출
2.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잘 추거나, 끼가 있다? -> 착출
3. 참석자가 더 필요한데 지원자가 없다? -> 착출을 위한 오디션
4. 참석자 확보 완료
5. 보컬/댄스 학원 등록 지원 및 일부 업무 배제 후 장기자랑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 구축
6. 장기자랑 진행
7. 순위 선정 및 상금 전달
8. 회식
나도 신규입사자라 프로세스 1에 의해 착출 되었고, 노래나 춤을 잘 추냐고 묻는 질문에 못한다고 하자 프로세스 3에 따라 오디션을 봤다(ㅋㅋㅋㅋ) 업무 시간에 임원 몇 분이 노래방을 잡아두고 착출 대상을 호출하여 인순이 거위의 꿈을 돌아가며 소절별로 부르게 했다. 나도 한 소절 불렀는데, 임원분의 표정이 곧 어두워지더니 노래를 끄고 뭐 잘하는 거 없냐고 물었다. 단소로 아리랑을 불 수 있다고 하니 아무 말하지 않고 다음 팀을 호출하셨다. 그 당시에는 하기 싫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웃기고 재미있던 추억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엔 장기자랑 시즌만 되면 블라인드에 불평불만 글로 도배가 되었다. 그리고 몇몇의 동료가 인사팀이나 상위 리더에게 말하기도 했지만 장기자랑은 강행되었다. 그리고 1년-2년 뒤쯤 임직원들의 큰(?) 반발로 사라졌다고 들었다.
한창 테크 붐이 불기 시작하며 여기저기 테크 회사라며 소개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이직 제안을 할 때도 우리는 테크 기업이고, 수평적인 조직이며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을 중시한다 등의 기업문화를 같이 이야기했다. 테크 기업에서는 인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었고, 메시지의 톤 앤 매너도 무척 친절하고 채용 프로세스의 안내도 깔끔했다. 기업에 대한 설명과 어필은 유선상으로도 진행되었고,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여러 번 리마인드 해주었다. 그동안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안내와 프로세스라 새롭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채용에 걸리는 시간도 타 회사 대비 무척 짧았다. 속전속결로 채용 프로세스가 끝나고 입사했다.
입사 첫날엔 인사팀에서의 온보딩이 이루어졌고, 이후 팀 내에서 온보딩이 이루어졌다. 재택근무 시 가이드라거나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은 위키에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고 없다면 추가로 가이드를 만들어 배포해 주었다. 그리고 꽤 디테일한 가이드들도 있었는데 꽤나 세심하게 신경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었다.
1. 나이 공유는 지양한다.
2. 반차/휴가, 재택/대면 시 슬랙 내 표기 가이드
3. 내부 업무 툴에 대한 공통 가이드(프로필 사진, 명칭 등)
4. 테마별 친목 파티
5. 온라인 기반의 팀 친목
그동안 재직했던 기업에서는 느낄 수 없던 섬세함! 특히 나이 공유하지 말라고 가이드한 것은 꽤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나이를 알면 나이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각 툴에 대한 공통 가이드를 적용한 것도 좋았다. 특히 좋았던 건 비대면 근무라 팀 간, 부서 간 말할 기회나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이를 온라인으로 잘 풀었던 것이었다. 매달 테마를 정하고, 그 테마에 관심 있는 동료들이 신청을 하면 소수 정예로 팀을 짜주고 인당 회식비를 지원해 줬다. 하고 나서 제출해야 하는 건 사진과 간단한 소감뿐! 이때 많은 동료들이 참석하고, 좋아했다. 온라인 기반으로 팀 친목을 다지는 부분은 우선 '배달 상품권'을 개인에게 주고 특정 시간에 맞춰 음식을 시키고 모두 카메라를 켜고 먹방(?)처럼 자유롭게 맛있는 걸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온라인 회식이 있었다. 이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재직 회사 중 기업 문화를 가장 신경 썼던 회사를 뽑으라면 이 회사를 뽑겠다. (재직 당시 이야기라,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기업 문화는 재직한 타이밍도 한 몫하는 것 같다) 풀재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 친해진 동료들과는 여전히 연락하며 지낸다.
처음 경험하는 산업군이었지만 다양한 테크 기업 출신의 인재들이 있다 하여 근 몇 년간 경험했던 테크 조직에서의 근무 경험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다 하는 생각이었다. 채용 단계가 시작되고 채용팀과 서면, 유선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이상하게 싸함을 느꼈지만 그냥 말투가 원래 이런가 보다 생각하고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채용 단계가 끝나고 입사 첫날, 인사팀에서 반나절 정도 회사 내규에 대해 설명해 주고 팀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회사에 적응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익히는데 최근 몇 년간 다녔던 회사와는 다르게 투명한 소통을 하기보다는 모두가 눈치 보고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공개된 슬랙 채널에 다 같이 이야기하는 걸 눈치 보고,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면에 불만과 화가 가득했다. '왜일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생각은 계속 '왜'였다. 왜 이렇게 화가 나있지? 왜 눈치를 이렇게 보지? 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지?라는 생각들을 하며 사내, 팀 내 분위기를 살폈는데 이 또한 팀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며 '왜' 그러는지 점점 알게 되었다. 공개 채널에 이슈를 제기하면 디엠이 왔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실무자와 상급자를 멘션해도 디엠이 왔다. 대체로 디엠은 공개채널에 대한 '답'이거나, '꾸짖음'이었다. 생각보다 남 눈치를 많이 보는 분위기라고 느꼈는데 눈치를 주는 사람이 있으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 분명 이전에 테크조직에서 오신 분들은 그 조직에서 이렇게 일하지 않았을 텐데... 뭔가 안타깝기도 하고 '이 부분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체로 내가 느낀 문제들은 아래와 같았다.
1. 투명한 소통 불가
2. 눈치 못 챙기면 눈밖에 남
3. 누군가를 미워하고 남 탓 함
4. 문제제기를 하지 않음
'이런 기업 문화는 누가 만드는 걸까?'에 연달아 떠오르는 생각들
'기업문화가 원래 이랬던 걸까?' '아니면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우연히 모인 걸까?' '해결할 수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등...
그동안 조직 문화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여러 기업에서 다양한 문화를 겪다 보니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생각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업 문화를 만들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좋지 않은 기업 문화를 그대로 따르고 동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며...
본 글에서 기재한 각 회사의 기업 문화는 재직 시점과, 재직했던 팀마다 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정 기업은 무조건 이렇다! 가 아닌 시점과 팀에 따라 다르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훨씬 더 좋은 조직 문화를 가진 기업에 재직 중이라면 어떤 문화를 갖고 있는지, 그게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댓글로 공유해 주면 좋겠다.
그동안 재직했던 여러 회사에서의 경험을 사례와 함께 풀며, 다시 분노하기도 했고 즐거운 추억 속으로 잠깐 다녀오기도 했다. 좋았던 경험이든, 싫었던 경험이든 많은 경험을 해본 덕에 경험 기반의 글을 쓸 수 있으니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어떤 기업에서 어떤 상황을 겪고 있든 그 시간은 결국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해 줄 것이니 모두 힘내길 바라며 오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