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트리려는 사람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 <공범자들>은 그 어떤 영웅신화보다도 용기 있게 저항하는 주인공과 계획적으로 그것을 방해하려는 안티 테제가 맞서는 다큐멘터리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간의 공영방송 지배 역사를 보면, 이 다큐멘터리가 왜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초대됐는지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10년 역사는 '판타스틱'했다. 웬만한 장르 영화 빰치는 스토리과 플롯은 이 다큐멘터리의 재미를 담당하지만, 어쨌든 공범자들의 가장 큰 힘은 다큐라는 장르가 가진 현실성에 있다.
최승호 PD의 신작 <공범자들>을 보면 언론정치 권력의 블랙코미디 같은 현실에 웃다가도 금세 공영 방송 구성원의 처절한 투쟁의 역사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정말 '눈물 나게 재미있는' 영화다. 수많은 해직 노동자가 만들어지고, 공영방송의 보도가 망가진 지금 <공범자들>은 지금의 최승호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있기까지의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담는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태생적으로 사회적이기도 하다. <공범자들>을 관람하는 우리는 영화의 관찰자이자 동시에 사건의 개입한 당사자다.
돌이킬 수 없게 된 언론 권력
시작은 KBS였다. 경찰이 KBS 본관을 장악했고 이사회를 열어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내몰았다. 경찰들 사이로 KBS 본관을 빠져나가느냐는 정연주 KBS 전 사장의 모습은 MB 정권의 살벌한 분위기를 상징했다. 다음 타깃은 MBC였다. 간판 시사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던 김미화, 손석희, 신경민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최승호를 비롯한 정부에 비판적인 PD와 기자들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재철, 김장겸, 길환영, 고대영 친정부적인 낙하산 사장들이 공영방송을 장악했다. 시민이 전달한 수신료의 가치는 그렇게 변질됐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보수 정권 10년 공영방송 찬탈 역사다. 시민들 역시 권력의 방송장악 의지와 꼼수를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도 자위하기도 했다. 그 사이 세월호가 터졌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안전 대신 권력으로부터의 안전을 택했다. 돌이킬 수 없었다. 공영방송 일선 기자들이 사건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쫓겨나기 시작했다. 기레기라 불렸다. 공영방송은 더 이상 그 존재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고 권력의 하수인 취급받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그들이 무서워야 할 대상은 권력이 아니라 시민이어야 했다.
최승호의 카메라는 끈질기게 10년간의 부패한 언론-정치 권력을 탐사하며, 집요하게 망가진 언론에 대한 기록을 담아낸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카메라는 동시에 권력에 반발했던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저항사를 기록한다. 미처 주류언론에 담기지 않은 그들의 처절한 투쟁의 역사를 기록해 그들이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상부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해직 노동자들의 인터뷰. 노조를 만들고 조직적으로 권력과 맞선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구술. 타자의 현실을 바꾸지만 정작 자신들이 처한 작은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좌절하는 저널리스트들의 붉어진 눈시울을 담아낸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적 배우로서 그들은 그 어떤 영화의 주인공보다도 용감하고 끈질겼다. 권력의 장악 의지와 현재도 진행 중인 투쟁의 역사를 번갈아 편집하면서 최승호는 이 싸움이 아직 지지 않았다는 것. 앞으로도 계속되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진행 중인 싸움을 기록하면서 최승호 감독은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해직이나 감봉 등으로 불이익을 받은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서술한다. 감독이 직접 말하듯 이 영화는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는 동시에 방송을 유리한 권력에 투쟁한 자신의 동지들을 위한 헌사이기도 하다.
감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권력도, 그 구성원도 공영방송의 진짜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공영방송이 충성해야 하고 무서워야 할 진짜 주인은 바로 국민이다. PD수첩을 통해 공분의 감정을 잘 끌어냈던 최승호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시 한번 국민들의 공감을 필요로 한다.
공영방송의 투쟁사를 알려 이 이야기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로 소환하려고 한다. 과거에 공영방송에 실망했던 진짜 주인에게 다시금 공영방송을 돌려주려고 한다. 언론이 질문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증명된 지금 공영방송은 권력의 하수인으로서 수모를 겪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국민과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할 대상이다.
영화의 크레딧은 올라왔지만 아직 영화가 담은 현실의 엔딩 크레딧은 올라오지 않았다. 지금은 영화라는 공간을 빌려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고향 MBC로 돌아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방송환경을 만들 최승호라는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