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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 Mar 19. 2018

쓰리빌보드 : 증오를 용서로 치환하는 각본의 변주



 90 아카데미 주인공이 기예르모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라면 숨은 주역은 마틴 맥도나의 '쓰리 빌보드'.  6 부분에 노미네미트 되었고,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파고> 이후 다시 한번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엄청난 카리스마는 물론, 엄청난 연기 스펙트럼을 통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샘록웰의 관록 역시 대단하다. 뿐만 아니라 변두리 미주리 지방의 건조한 분위기를 통해 미국의 현재를 차갑게 대유해낸 마틴 맥도나의 연출력 역시 손색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숨은 백미는 각본이다. 뛰어난 반전을 가지고 있던 <겟아웃>에서 수상은 양보했지만, 쓰리 빌보드의 각본은 폭력과 증오의 땅에 스며드는 용서의 연쇄작용를 그려낸다. 강렬한 소재가 시선을 잡지만, <쓰리 빌보드> 백미는 증오를 용서로 치환하는 각본의 변주에 있다.




화의 소재는 강렬하다. 강간당하며 죽어간 딸. 1년째 범인을 잡지 공권력. 엄마 밀프레드는 도로에 3개의 광고판을 설치하며 무능력한 공권력을 일갈한다. "내 딸이 죽어가며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월러비 서장?" 푸른 초원에 세워진 붉은색 광고판처럼 강렬한 도입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증오와 복수가 눈떵이처럼 불어나는 과정을 점층적으로 그린다. 영화의 공간은 미주리주 에빙이라는 미국의 촌동네지만, 그곳의 불편한 관계는 작은 마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공권력을 통해 무자비하게 유색인종, 여성, 왜소장애인 등을 경멸하는 경찰들의 면면. 그들을 비호하며 소수자의 발언권을 제한하는 마을 유지들. 일상화된 차별 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현재 미국의 공기를 포착한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밀프레드의 저항은 하나의 시민혁명이다. 무능력하고 의지가 없는 권력을 고발하고, 심지어 경찰서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다. 개인적인 원한이 작동하지만, 앞뒤 안가리고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나아가는 밀프레드의 모습은 비장하다. 하지만 분노에 가득찬 저항은 예상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암으로 인해 시안부 인생이었던 윌러비 경찰서장이 자살로 자신의 죽음을 앞당긴 순간부터 증오의 감정은 마을 전체에 퍼진다. 평소 빌보드사건에 불만을 가진 서장의 부하 딕슨(샘 록웰)은 상사의 죽음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빌보드를 관리했던 웰비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한다. 마을사람들에게서도 행동에서도 밀프레드에게 향하는 폭력의 징후들이 포착된다. 일차적인 복수의 통괘함을 넘어 영화 <쓰리 빌보드>는 증오와 확산, 폭력이 순환하는 우리 사회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실존하는 주범은 사라지고 타인에 대한 원한만 남은 상황. 심지어 빌보드에서 책임자로 저격된 월러비 서장까지 떠난 상태에서 한족한 시골 마을에는 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폭력의 고리에서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전체가 가해자이고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모든 캐릭터를 도덕적 결함을 심어 선악구분을 희미하게 만든다. 불안전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서로에게 죄를 묻고 따질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는 분명하게 말한다. 폭력과 증오 그리고 복수는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영화 각본은 군더더기 없는 네러티브를 통해 이 과정을 물흐르듯 전반부에 배치한다. 여기까지도 미국의 현재를 잘 잡아낸 훌륭한 전개지만 <쓰리 빌보드>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복수라는 동전에 뒷면에서 그간 보이지 않았던 용서라는 감정을 꺼내 에링마을에 짙게 깔린 안개를 거둔다.



딕슨 경관은 웰비에게 폭력을 가한것에 모자라 밀프레드가 설치한 빌보드에 방화를 저지른다. 타오르는 불길은 잡았지만 밀프레드의 내면은 복수심으로 가득찬다. 다음 날 그녀는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지고, 그로 인해 화상을 입은 딕슨은 병원에서 자신이 떄린 웰비를 만난다. 또 다른 복수와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순간. 하지만 웰비는 지금까지의 인물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가해자를 복수하는 대신 피해자인 웰비의 고통을 이해한다. 그것은 복수로 가득찬 마을이 되기 전 태초의 피해자 밀프레드에게 필요한 감정이었다. 타인의 상처에 대한 작은 관심말이다. 작지만 소중한 웰비의 관용은 폭력의 땅으로 얼룩진 에빙 마을에 다시 한번 연쇄작용을 만들어 낸다.



지금까지 영화가 미국의 현재를 그려냈다면, 영화의 엔딩크레딧까지의 15분은 미국의 미래이다. 85분 달려온 폭력의 확산은 순식간에 용서의 감정으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원한과 복수뿐 아니라 용서와 관용 역시 확산될 수 있다는 것. 가장 복수심이 강했던 딕슨과 밀프레드가 주변의 존재를 용서하자 온 마을은 다시 온기로 뒤덮인다. 가장 상반된 지점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던 밀프레드와 딕슨이 서로에 대한 증오를 지우고 함께 범인을 찾으러 떠난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둘의 차에서는 섬뜩한 빌보드 문구가 아닌 그 뒷면이 보인다. 어쩌면 동면의 양면처럼 복수와 용서는 한 몸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앞만 보고 살았을 뿐. 서로를 용서하는 차안에서 밀프레드와 딕슨은 심지어 범인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개방성을 보여준다. 영화 첫장면 안개로 가득한 에링마을의 서늘함은 사라지고, 이내 밝은 햇살로 가득한 마을로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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