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너와 함께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 한 적이 있어. 그 때 너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라고 말했어. 엄마랑 J가 기도 외에 뭘 할 수 있을까?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우리가 쓸 것을 다 쓰고 그 중에 한 5만원 정도 내려나? 만약 지금 어느 광장에서 대규모 반전 시위가 열린다면 뛰어나가 시위를 하려나? 아, 너와 내가 즐겨보던 러시아 애니메이션을 더 이상 틀지 않고 있긴 해. 그 정도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라는 말은 사실, 내가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몇 분 외에는 딱히 내 것을 내어 주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엄마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움과 슬픔과 분노를 느꼈지만 기도만 했을 뿐 일상을 살았지.
반면에 이 일에 대해 자신의 일상조차 포기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우리나라 해군 특수부대 출신인 이근 대위는 얼마 전 우크라이나에 참전하기 위해 떠났단다. 처음에 소식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그가 SNS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떠났다며 조롱했지만, 결국 드러나고 있는 것은 그가 국제 의용군으로서 실제 작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국내로 돌아왔을 때 처벌받을 것을 각오하고 전장으로 떠났지.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그의 감정주머니 속 물들은 전쟁이라는 사건에 엄마나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더 출렁이지 않았을까. 그 엄청난 출렁거림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가희생을 각오한 행동까지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나서 아이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고통받는 뉴스를 매일 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엄마와 다른 많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인걸까?
아니, 그렇지 않아. 엄마는 또 엄마의 마음이 누구보다 출렁이는 세상의 일에 힘쓰고 있거든.
온 에너지를 다해 너를 5년째 키우고 있고, 이 글을 쓰고 있지.
워크샵 끝에 만들었던 엄마의 아이덴티티 (정체성) 북 표지
서른살 즈음, 내가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배근정 선생님의 '아이덴티티 워크샵'에 참여했어.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아이덴티티 네임을 지었는데 신기하게도 'Mommy'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였단다. 너를 낳기 전이었는데도 말이야.
저 당시에는 사실 학교 밖 위기 청소년들에 대한 마음을 품었었단다. 단순 절도부터 폭행, 성폭력, 심하게는 살인까지 저지르는 청소년들. 그들을 이해하거나 품으려는 어른들은 별로 없지. 대부분 피해자의 아픔에 더 큰 마음을 느끼고 그들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만 주장해. 하지만 엄마는 피해자의 아픔에도 당연히 분노하지만 가해자인 아이들을 생각했을 때 더 강한 연민을 느낀단다. 그들이 제대로 된 양육을 받은 적이 없고, 세상에 대해 안전한 안내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믿기 때문이야. 건강한 양육이 부재한 환경에서 누구나 범죄의 길로 빠지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하겠지만, 범죄의 길로 빠지기 쉬운 자리에 그들을 방치해 둔 건 어른들이라고 생각했단다.
워크샵 중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 시간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있더라고. '세상을 품은 아이들'이라는 청소년 감호시설이었는데 워크샵이 종료된 후 무작정 찾아가서 짧은 시간이지만 청소년들의 교화와 자립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을 만났단다. 감사하게도 그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고, 공부를 가르칠 기회도 얻어 두어 달 짧은 시간 함께할 수 있었지. 그때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고 서울에서 부천까지 오로지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고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 찾아갔단다.
어때? 들어보니 앞서 이야기 했던 이근 대위의 행동과 약간 비슷하지 않니?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그 일에 왜 그렇게 마음을 쓰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은 크게 출렁이고, 그 출렁이는 에너지가 행동을 낳았잖아.
물론,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해 세상을 너무 힘겹게 받아들이고 있을 사람들에게 세상과 삶에 대해 다시 설명해주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양육할 수 있게 설득하교 교육하는 일에 힘쓰고 싶어졌단다.
그래서 이 글이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른들에게도 좋은 글이 되기를 바라며 온 힘을 다해 쓰고 있어. 부모 교육을 위해서는 더 큰 지식과 자격이 필요할 듯하여 공부도 준비하고 있지.
J야, 너의 마음은 어떤 일들에 크게 출렁이니?
너는 세상의 어떤 일에 크게 분노하는 사람이고,
세상의 무엇을 너무 사랑해서 기꺼이 너의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마음이 출렁거리다 못해 넘칠 것 같은 것을 하나는 꼭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기업에 취업을 하고, 돈을 많이 벌고...우리가 일생의 목적인 것 처럼 여기는 '보편적인' 것들을 획득하는 것이 과연 너라는 유일무이한 존재의 삶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네 삶이 문제없이 잘 굴러가는 건 중요한 일이고 그렇게 만드는 것에도 많은 책임감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맞아. 하지만 '왜?'라는 생각 안 드니?
왜 살고 있지? 왜 살아야 하지?
오로지 네 삶만 집중해서 보면 왜 살아야 하는지 절대 알 수 없단다. '태어났으니깐 산다', 혹은 '잘 살기 위해서 산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고말지.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살고 있는 건데, 왜 내가 굳이 이 세상에 나온건 지 이유를 찾으려면 세상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니?
꼭 전쟁같은 심각하고 규모가 큰 문제가 아니어도 괜찮다. 그리고 꼭 너의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어.
맞딱트렸을 때 너를 분노시키든, 사랑하게 하든, 어떠한 감정이 들든간에 매우 크게 네 가슴을 출렁거리게 하는 세상의 일을 찾으렴. 출렁거리다 못해 마음이 뜨거워져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게 하는 그런 세상의 일 말이야.
그게 네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고,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과 내 일상의 모든 것에 담겨있던 의미가 드러나고, 하루도 헛되이 살지 않게 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