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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Apr 28. 2022

무너진 백화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사재인 성사재천

J야, 너가 꿈꿨왔던 이상적인 모습과는 멀어진 현실에 좌절하는 마음에 빠져있진 않니?


그 마음은 참 슬프고, 허무하고, 초라해지는 마음이지. 얼른 무언가를 다시 해내서 내 삶이 실패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도 들게 하고 말이야.


그럴 때 엄마는 너에게 "넌 해낼 수 있어!"라는 응원이나 "계획대로  될거야!"라는 격려보다 이 글귀를 선물로 주고싶네.

우리는 모두 풀 같고 개미 같은 존재입니다. 미미하지만 사실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것을 탁 깨달아버리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신경 안 쓰고 편안히 살 수 있으며, 남의 인생에도 간섭하지 않게 됩니다.
(법륜의 '행복' 中)


우리는 모두 풀 같고 개미 같이 미미한 존재란다.


풀과 개미가 계획이 있다 한들 소가 뜯어먹고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 끝이듯이, 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노력한다한다 한들 그것이 이루어지고 말고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란다.


그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을 때 인생은 훨씬 더 가벼워지고, 선물처럼 행복으로 다가올거야.




자연휴양림에 놀러가 샤워 중에 세면대를 봤는데 글쎄 엄청 큰 개미가 있지 뭐야. 개미가 너무 큰 덕분에 움직임이 눈에 잘 들어왔어. 더듬이는 끊임없이 더듬이의 길이 반경 만큼을 더듬고 있었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더라구. 아등바등 세면대 한 번 올라와 보겠다는 개미가 불쌍해 보여서 최대한 물이 세면대 쪽으로 튀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한 두 방울 튀었어. 자기 주변에 물방울이 튀니깐 개미가 잔뜩 움츠리고선 안절부절 못하더라?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온 뒤 너희 아빠가 뒤이어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나왔어.

  "여보, 개미 봤어?"

  "어, 그 세면대에 큰 거 한마리? 흘려보냈어."


개미는 알았을까? 자신이 그렇게 몇 분 있다가 하수구로 쓸려갈 운명이라는 걸 말이야. 개미는 그 당장 코앞에 떨어진 물방울만 견뎌내고 다시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개미가 살려고 그렇게 노력해도 살고 죽는 것은 자신보다 몸집이 몇 십만배는 더 큰 존재가 쥐고 있는 샤워기의 방향에 달려있는데 말이야.  


우리의 운명도 별 반 다를게 없단다. 위험을 피할 수 있기를, 내가 계획한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기를 기대하며 살아가지만 살 수록 느끼게 돼. [피할 수 없는 위험들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말이야. 그저 열심히 세면대를 기어올라 가던 개미를 느닷없이 덮쳤던 물방울 하나처럼 나는 잘못한 것 없이 살아가도 그런 위기와 시련은 찾아온단다. 물방울을 마주한 내가 마음을 다잡고 비장하게 몸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내고 어떻게든 가던 길을 가려 해도 이내, 작정한 샤워기의 물줄기가 나를 향해 쏟아지는 일도 일어나.


그게 엄마가 깨달은 인생의 성질이야. 그리고 나는 그 앞에 풀이나 개미와 다를 것 없이 한없이 수동적이고 무력한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도 한참이 걸려 깨달았지.


엄마가 초등학교 때 말이야, 엄청 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일들이 있었어.'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성수대교 붕괴사고'인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어린 나는 그 사고들로 세상이 시끄러운 가운데 혼자 이런 생각을 골똘히 했어. '난 저런 사고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내가 특별하고 전지전능하다는 비합리적인 믿음이었어. 이제와 생각하니 인생은 끊임없이 나의 그런 비합리적인 믿음을 깨온 것 같아. '실패'라는 도구로 말이지.


인생의 큰 실패는 마치 "넌 절대로 무너진 백화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란다, 꼬마야."라고 일러주듯이 찾아와.


첫번째 실패는 입사한 뒤 역시 난 뭐든지 할 수 있는 존재라며 의기양양함이 하늘을 찔렀던 첫 직장에서 말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겹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상황을 악화시키며 결국 내가 백기를 들고 퇴사를 했던 일.


두번째 실패는 너를 키우며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난 애를 키우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를 증명하려 애쓰다 결국 품고 있던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사산'으로 끝난 일.


세번째는 실패는 아니지만, 네가 어느정도 나에게 시간을 허락해주어 이젠 내 것을 해봐야겠다 결심했던 작년 말부터 급격하게 잦아진 병원 출입. 마치 인생이 엄마에게 "너도 늙고 병드는 존재란다, 꼬마야."라고 말해주는 듯 하네.


저 세 번의 큰 실패/좌절이 있고나서야 엄마는 조금 익숙해졌단다.


마음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때 마치 나는 이런 일을 겪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요상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거야"라며 좌절하는 대신에, 어떻게든 나는 이런 일을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려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대신에, 잠시 서두의 저 글귀를 떠올리며 인생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거지. 마음에서 일어나는 슬픔과 좌절감과 허무함을 관조하면서 말이야. 그러면 그 일들은 별 게 아닌 일이 돼. 그냥 그렇게 될 일이었는데 내가 미리 알 수 없었던 일일 뿐.


엄마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혹시 이런 의문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엄마, 어짜피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거라면, 그냥 대충 살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 J야. 대충 살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지극히 예민하고 명석한 네가 못 알아챌리가 없어. 인생의 섭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인지 말이야. 그 자각에는 자책과 열등감, 수치심이 따라붙겠지.


엄마가 우리딸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꿈꿔왔던 이상과 멀어지는 현실을 느낄 때 어떤 것도 증명해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야. 이상과 멀어진 것은 네가 딱히 부족해서도, 네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이미 어른들은 알고 있단다.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말이지.


엄마의 엄마, 너의 외할머니가 퇴사 후 첫 실패에 너무 속상해 하고 있는 나에게 해준 말이 있어.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좀 살아도 돼."


그 뒤에 삼킨 말은 아마 이거 아니였을까?

내가 60년 동안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이더라.




우리는 모두 풀 같고 개미 같은 존재입니다. 미미하지만 사실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것을 탁 깨달아버리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신경 안 쓰고 편안히 살 수 있으며, 남의 인생에도 간섭하지 않게 됩니다.
(법륜의 '행복' 中)


이걸 탁 깨달아버리면 어쩌다 세상이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둘 때, 얼마나 감사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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