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돼지'를 만나다

아장아장 정치부 26│교육부 나향욱 국회급습사건

by 고승혁


까치발을 들고 카메라 기자 어깨너머로 긴 통로를 바라보았다. 텅 빈 복도. 그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난 7월 11일 국회의사당 5층 교문위 회의실 앞에서 기자들이 나향욱 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복도만큼이나 이름이 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회의실은 5층이었다. 좁은 통로 좌우로 방송용 ENG 카메라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자 힐끔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그가 오기로 한 오후 4시 10분.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일약 유명인 반열에 오른 교육부 나향욱 전 정책기회관은 11일 국회에 출석하기로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교문위 회의실에 입장하는 순간까지, 핫 셀럽(Hot celebrity)의 동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 기자들은 집요하게 복도 저편을 바라보았다. 로비에 깔린 하얀 타일이 반들반들 빛났다. 아직 그는 오지 않았다.


나향욱을 기다리는 동물원 가족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 전 기획관 관련 기사가 잡혀있지 않았지만 그의 실물을 확인하고 싶어 국회 본청 5층까지 올라갔다. 상임위 회의는 기자실 모니터에 실시간 중계되기 때문에 직접 회의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교문위 앞 복도에는 이미 장이 섰다. 굳이 올 필요 없는 취재기자들도 팔짱을 낀 채 나 전 기획관을 보겠다며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막이 오르기 직전의 객석처럼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자들은 때때로 손목을 쳐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예정된 시간이 10분이나 지났다. 한껏 예민해진 카메라 기자들 사이로 나 전 기획관이 안 오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번져나갈 때쯤. "뒤! 뒤로 왔다. 뒤!" 우악스러운 외침이 폭발했다. 적군이 급습한 전장의 병사처럼, 카메라 기자들이 일제히 장비를 들고 몸을 틀어 나 전 기획관을 향해 플래시를 터트렸다. 헝클어진 머리칼 아래로 얼빠진 듯 텅 빈 표정이 있었다. 얼굴이 심하게 번들거렸다. 갈 곳 잃은 눈동자 두 개에는 초점이 없었다. 나는 신도림역 출근길처럼 사정없이 몰려드는 기자의 틈바구니에서 가까스로 몸을 빼내었다.


개돼지를 뛰어넘는 지략으로 기자들을 속이고 뒤로 들어온 나향욱. 이것이 바로 인간의 두뇌.


넋 나간 나향욱, 넋이 충만한 나도 찍혔다. 뉴시스.



"우리 사람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2002)'에서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던 대사가 떠올랐다. 예술가의 조상이 신내림을 빙자해 제멋대로 춤 추고 노래하며 피로 악몽을 점쳤던 무당이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홍 감독의 제언은 하나의 이정표처럼 느껴졌다. 테바이의 무녀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에게 비극을 경고했듯 홍 감독은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사람과 괴물은 달라야 한다며 계고장을 날렸다.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노골적인 신용카드 광고가 흥행하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더이상 속물적 욕망을 대중 앞에 내놓으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덮어놓고 돈을 밝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깨우친 현대인이 바라본 미개한 헬조선 사람들


결국 교육부 공무원이 부끄러움 한 점 없이 '민중은 개돼지'라고 기자에게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징후는 많았다. 재벌가(家) 정몽준 전 의원의 아들이 "국민이 미개하다"며 SNS에 글을 올린 것이 재작년이었다. 사람이라면 설령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사회적 위상'과 '체면'을 생각해서 숨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가면(persóna)'을 쓸 줄 알기에 구스타프 융은 사회적 행동규범을 수행하는 인간의 외적 자아를 '페르소나(persona)'라고 분석했다. 가령 동물은 배가 아프면 누가 보든 말든 아무 데서나 똥을 싸지만 인간은 욕구를 숨긴 채 화장실을 찾아간다. 개는 발정이 나면 아무 곳에서나 교미를 하지만 사람은 성욕이 일어난다고 아무나 붙잡고 성폭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타자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통제할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뜻이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 "아... 나향욱....아이고 골아." 뉴시스.


나 전 기획관이 나와 당신을 향해 개돼지라고 말했을 때 깨진 것은 고작 공무원에 대한 신뢰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인간성 자체를 분쇄했다.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욕망에만 천착하는 극도의 동물적 이기주의를 전면화 한 것이다. 사실 국민을 미개한 개돼지로 생각하는 엘리트주의자는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널려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지배층도 내밀한 사념을 SNS나 종합일간지 기자를 향해 게걸스럽게 배설하지 않았다.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국민을 실제 짐승처럼 사육한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입으로는 '정의사회구현'을 외쳤다. 조선과 중국을 피로 물들인 히로히토 천왕도 '대동아공영권'이란 명분을 내걸었다.


나 전 기획관은 역사 속 수많은 악당들이 감히 뛰어넘지 못한 윤리의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렸다. 개와 고양이도 밥 주는 주인을 물지 않는다는데 2년 사이 재벌집 자제와 공무원이 밥 주는 소비자와 납세자를 할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1%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고 강변했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 어느새 괴물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최영 장군. 알고보니 황금도 돌도 다 갖고 있었다. 배신당한 기분ㅠㅠ


초등학생 시절, 옆집 아주머니에게 로봇 장난감을 많이 가지고 싶어서 부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어린 애가 벌써부터 돈을 밝히니.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최영 장군이 말했단다"라고 혼을 냈다. 얼마 전 초등학교 앞 카페에서 글을 쓰는데 한 아이가 혼나고 있었다. "너 이렇게 공부 안 하면 돈 많이 못 벌어. 나중에 의사 변호사 돼서 돈 많이 벌어야지" 아이는 노트에 긁적긁적 낙서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돈을 의심하지 않았다.


흥겨운 선비들


사람들은 더 이상 최소한의 윤리를 가장하기 위해 가면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적 규범과 도덕을 입에 올리는 사람을 '씹선비'라고 비하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윤리는 없는 윤리다. 대낮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발정 난 개가 교미하듯, 돈과 권력을 달라며 헉헉대는 사람들이 세계 전면에 부상했다. 홍 감독이 새 천년의 들머리에 붙여놨던 경고는 무시당했다. 괴물이 된 지배층은 가감없이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테바이 무녀의 신탁이 차츰 이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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