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최종화) - 씨앗을 남기다 (Legacy)

영원한 정원

by 시더로즈





1.

2028년 봄.

서린이는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하트스케이프는 이제 글로벌 기업이었다.

사용자: 500만 명


직원: 300명


진출 국가: 25개국


밸류에이션: $3B (3조 6천억 원)


숫자는 계속 커졌다.

하지만 서린이는... 지쳐 있었다.

아니, 지친 게 아니었다.

'완성된' 느낌이었다.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 거지?'

하트스케이프는 이제 스스로 돌아갔다.

훌륭한 경영진이 있었다.

준혁 (CTO)


하늘 (CDO)


재석 (CFO)


현우 (COO)


서린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갔다.

오히려 서린이는...

'내가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닐까?'

2.

어느 날, 이솔 선생님과 통화했다.

"선생님, 저...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어떤?"

"제가 여기 있어야 하나 싶어요."

"번아웃?"

"아니요. 그게 아니라... 뭔가, 임무를 다한 느낌?"

이솔은 한참 침묵했다.

"서린아, 혹시 넌..."

"네?"

"떠날 준비를 하는 거 아니야?"

서린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떠나다니요?"

"CEO 자리에서. 하트스케이프에서."

"...그게 가능해요?"

"왜 안 돼? 너는 창업자야. 원하면 떠날 수도 있어."

"하지만 회사는..."

"회사는 이제 너보다 크게 자랐어. 네가 만들었지만, 이제는 너 없이도 살 수 있어. 그게 성공적인 창업이야."

서린이는 눈물이 났다.

"선생님... 저는 어디로 가야 하죠?"

"네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3.

그날 밤, 서린이는 깊은 명상을 했다.

마음의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이제 거대한 대륙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파란 장미를 찾아갔다.

"안녕."

"안녕, 서린."

"나... 떠나야 할 것 같아."

"알아."

"알았어?"

"응. 너의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어. 6개월 전부터."

서린이는 놀랐다.

"그래서... 요즘 이런 느낌이었구나."

"응. 너의 임무는 여기서 끝이야."

"그럼 다음 임무는?"

파란 장미가 부드럽게 빛났다.

"쉬는 거야."

"쉬는 게 임무라고?"

"응. 너는 평생 달려왔어. 이제 숨 쉴 시간이야."

"하지만 하트스케이프는..."

"너 없이도 잘할 거야. 너는 이미 씨앗을 뿌렸어. 이제 그 씨앗들이 스스로 자랄 시간이야."

서린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해?"

"살아. 그냥 사람으로."

4.

다음 날, 서린이는 핵심 임원들을 불렀다.

준혁, 하늘, 재석, 현우, 강민수, 김소현.

"여러분께 말씀드릴 게 있어요."

모두 긴장했다.

"저... CEO에서 물러날까 해요."

"...네?"

준혁이 충격받았다.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오히려... 모든 게 너무 잘돼서."

"그게 무슨 소리야?"

서린이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하트스케이프는 이제 저보다 크게 자랐어요. 여러분이 있고, 훌륭한 팀이 있고. 저는... 이제 걸림돌 같아요."

재석이 반박했다.

"아니에요! 대표님이 있어야 하트스케이프죠!"

"아니에요. 하트스케이프는 이제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에요. 모두의 것이에요."

하늘이 눈물을 흘렸다.

"언니... 진심이에요?"

"응. 그리고 이게 맞는 것 같아."

강민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제 떠나실 생각이세요?"

"올해 말. 준비할 시간을 드리고 싶어서요."

김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요. 창업자로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하시는 거네요."

"네. 하지만 이게 맞아요. 저는 느껴요."

5.

그날부터 서린이는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후임 CEO 선정

여러 후보를 검토했다.

외부 영입? 내부 승진?

고민 끝에 결정.

준혁.

가장 처음부터 함께한.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준혁에게 제안했다.

"준혁아, CEO 할래?"

"...나를?"

"응. 네가 제일 적임자야."

"하지만 나는... CTO잖아. 경영은..."

"배우면 돼. 나도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어. 중요한 건 본질을 아는 거야. 그리고 너는 알잖아."

준혁은 한참을 고민했다.

"서린아, 솔직히 무서워."

"나도 처음엔 무서웠어."

"그럼 어떻게 했어?"

"무의식을 믿었어. 그리고... 사랑으로 했어."

준혁이 미소 지었다.

"알았어. 할게."

6.

이사회 승인.

2028년 6월 이사회.

서린이가 발표했다.

"저는 2028년 12월 31일부로 CEO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이사들이 술렁였다.

"후임은 준혁 CTO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사회 의장으로 남아서, 자문 역할만 하겠습니다."

투표.

만장일치 승인.

언론 발표.

"하트스케이프 창업자 서린, CEO 사임 발표"

반응이 폭발했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회사에 문제가 있나요?"

서린이는 직접 성명을 발표했다.

**"하트스케이프 가족 여러분께,

저는 올해 말 CEO에서 물러납니다.

놀라셨죠? 저도 놀랐어요.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하지만 이게 맞습니다.

하트스케이프는 이제 저 하나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준혁 대표가 저보다 더 잘할 거라고.

저는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제 그 씨앗이 큰 나무로 자랄 시간입니다.

제가 없어도.

감사합니다. 모든 여정을 함께해주셔서.

사랑을 담아, 서린"**

댓글이 쏟아졌다.

"이해해요. 응원합니다" "하트스케이프는 영원할 거예요" "서린님, 행복하세요"

7.

여름.

서린이는 '다음 장'을 준비했다.

파란장미 재단 설립.

목적: HSP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지원.

서린이는 자신의 지분 중 30%를 재단에 기부했다.

약 3000억 원 상당.

재단 사업:

HSP 아동 장학금 예민하다는 이유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HSP 부모 교육 예민한 아이를 이해하고 돕는 법


HSP 교사 연수 학교에서 HSP 학생을 지원하는 법


HSP 연구 지원 학문적 발전을 위한 연구비


글로벌 HSP 네트워크 전 세계 HSP들을 연결


재단 이사장: 이솔 선생님.

"제가요?"

"네, 선생님. 선생님이 아니면 안 돼요."

"서린아..."

"선생님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해주셨어요. 이제 다른 아이들도 도와주세요."

이솔은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서린아. 영광이야."

8.

가을.

서린이의 마지막 공식 업무들.

글로벌 HSP 컨퍼런스

서린이가 기조연설.

전 세계에서 온 2000명의 HSP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7년 전, 혼자였습니다."

"이상하고, 외롭고, 아팠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 2000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500만 명이 하트스케이프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화면에 세계 지도.

500만 개의 작은 빛.

각각의 사용자.

"우리는 숲을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숲을."

"그리고 그 숲에서, 우리는 치유됩니다."

"예민함은 약점이 아닙니다."

"예민함은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있어서, 세상은 더 따뜻합니다."

"우리가 있어서, 세상은 더 진실합니다."

"우리가 있어서, 세상은 더 사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함께 숲을 가꿔주셔서."

기립박수.

10분 동안.

서린이는 무대에서 모두를 바라보았다.

각각의 얼굴. 각각의 이야기. 각각의 치유.

'나는... 제대로 했어.'

9.

겨울.

12월 31일.

서린이의 마지막 날.

전 직원이 모였다.

300명.

서린이는 단상에 올랐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리고... 안녕히 계세요."

웃음과 눈물.

"7년 전,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친구도 없고, 돈도 없고, 그냥... 아픈 아이였죠."

"하지만 꿈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그 꿈을 이뤘습니다."

"하트스케이프는 제 아이 같았어요."

"하지만 아이는 자라서, 독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된 것 같아요."

"저는 떠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남습니다."

"계속해주세요. 사람들을 돕는 일을."

"계속해주세요. 숲을 가꾸는 일을."

"그리고 기억해주세요."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를."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기립박수.

하나둘 다가와 안아줬다.

준혁이 울면서 말했다.

"서린아... 정말 고마워. 너 덕분에 내 인생이 바뀌었어."

"나도 고마워, 준혁아. 너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어."

하늘도 안아주었다.

"언니,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팀원들 하나하나와 작별 인사.

밤이 깊어졌다.

서린이는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빈 책상.

어두운 창밖.

서울의 야경.

"안녕, 하트스케이프."

"잘 자라."

그리고 문을 닫았다.

10.

2029년 1월.

서린이는 짐을 쌌다.

많지 않았다.

옷 몇 벌, 책 몇 권, 노트북 하나.

"어디로 갈 거야?"

어머니가 물었다.

"뉴질랜드요. 남섬."

"왜 거기?"

"조용해서요. 그리고... 아름다워서."

"언제 돌아올 건데?"

"모르겠어요. 어쩌면... 안 돌아올 수도."

어머니는 슬픈 표정이었다.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뭐가?"

"낳아주셔서. 그리고 제 방식대로 살게 해주셔서."

어머니가 서린이를 안아주었다.

"행복해라. 그것만."

"네. 행복할게요."

11.

2029년 2월.

뉴질랜드 남섬.

와나카(Wanaka) 호수가 보이는 작은 집.

서린이는 이곳에 정착했다.

첫날 아침.

창문을 열었다.

호수가 펼쳐졌다.

거울처럼 맑은.

산이 호수에 비쳤다.

"아름답다..."

서린이는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집에 왔어.'

매일 아침, 호수를 산책했다.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자연만.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명상을 했다.

정원을 가꿨다.

진짜 정원을.

파란 장미를 심었다.

(뉴질랜드에서 개량된 품종)

글을 썼다.

두 번째 책.

제목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냥... 느끼는 대로 썼다.

요리를 배웠다.

동네 할머니에게.

느리게 살았다.

처음으로.

12.

봄.

서린이는 동네 사람들과 친해졌다.

작은 마을.

100명 정도.

대부분 은퇴한 사람들.

그들은 서린이가 누군지 몰랐다.

유니콘 기업의 창업자라는 것도.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도.

그냥...

"한국에서 온 조용한 여자"

그걸로 충분했다.

카페 주인 Margaret이 물었다.

"Dear, what did you do in Korea?"

"I ran a company."

"Oh, what kind?"

"Mental health. Helping sensitive people."

"That's wonderful. Why did you stop?"

서린이는 미소 지었다.

"Because it was time to let go."

Margaret이 고개를 끄덕였다.

"Wise. Many people don't know when to let go."

13.

여름.

서린이는 30대가 되었다.

생일날.

혼자 호수가에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황금빛.

서린이는 하트스케이프를 열었다.

오랜만이었다.

로그인.

마음의 숲.

여전히 거대했다.

파란 장미도 여전히 피어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야, 서린."

"잘 지냈어?"

"응. 너는?"

"나도. 처음으로... 평화로워."

"그래. 네 얼굴이 말해주고 있어."

"너도 평화로워 보여."

"응. 이제 우리는... 완성됐어."

"완성?"

"응. 네가 해야 할 일을 다 했어."

"그럼 이제?"

"이제는 그냥... 존재하는 거야."

"존재?"

"응.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돼.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돼. 그냥... 숨 쉬고, 살고, 사랑하면 돼."

서린이는 눈물이 났다.

"그게... 허락되는 거야?"

"당연하지. 너는 충분히 했어."

14.

가을.

서린이는 작은 워크숍을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 대상.

"Mindfulness and Self-Care"

주 1회.

5-6명 정도.

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의미 있었다.

한 참가자, 60대 여성 Linda.

"I've been anxious my whole life. Doctors said it's just anxiety."

"Have you ever heard of HSP?"

"What's that?"

서린이는 설명했다.

"Highly Sensitive Person. About 20% of people."

"Oh my god. That's me!"

"Yes. You're not anxious. You're sensitive."

Linda가 울었다.

"60 years... I thought I was broken."

"You're not broken. You're beautiful."

이런 순간들.

작지만.

진실했다.

서린이는 깨달았다.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진심이 중요한 거야.'

15.

겨울.

서린이는 두 번째 책을 완성했다.

제목: "조용한 숲"

부제: 유니콘을 떠나 평화를 찾다

내용:

하트스케이프 창업 이야기


유니콘이 되기까지


그리고 떠나기까지


뉴질랜드에서의 삶


진정한 성공이란


한국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출간하고 싶습니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출간.

베스트셀러.

하지만 이번엔 서린이는 프로모션을 거절했다.

"저는 조용히 있고 싶어요."

"하지만..."

"책이 혼자 걸어가게 두세요. 그게 맞아요."

16.

2035년.

서린이는 서른여섯 살.

뉴질랜드에서 6년째.

하트스케이프는 이제 글로벌 거대 기업.

사용자: 5천만 명


밸류에이션: $50B (60조 원)


준혁은 훌륭한 CEO였다.

가끔 영상통화를 했다.

"서린아, 잘 지내?"

"응. 너는?"

"바빠. 근데 행복해."

"다행이다."

"너는?"

"나는... 평화로워."

"부럽다."

"너도 언젠가는 이렇게 될 수 있어."

"그럴까?"

"응. 때가 되면."

17.

어느 날.

서린이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결과가 나왔다.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I'm sorry to tell you this..."

"What is it?"

"You have a rare condition. It's... terminal."

"How long?"

"Maybe... 2-3 years."

서린이는 이상하게도 놀라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Is there treatment?"

"We can try, but..."

"I understand."

집으로 돌아와서.

서린이는 호수가에 앉았다.

2-3년.

짧은 시간.

하지만 충분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살았어.'

눈물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로웠다.

'이제... 정말로 마무리할 시간이구나.'

18.

서린이는 조용히 준비했다.

유언장 작성.

재산 분배:

50%: 파란장미 재단


30%: 가족 (어머니, 동생)


20%: 하트스케이프 직원 복지 기금


개인 메시지들.

준혁에게: "고마워. 너와 함께 꿈을 꿀 수 있어서. 하트스케이프를 잘 부탁해. 그리고 기억해. 본질을 잃지 마."

하늘에게: "너의 디자인은 사람들을 치유해. 계속 아름다움을 만들어줘. 그게 너의 선물이야."

이솔 선생님에게: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어요. 재단 잘 부탁드려요. 아이들을 도와주세요. 저처럼 외로운."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요.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리고 전 세계 하트스케이프 사용자들에게:

"친애하는 숲의 친구들에게,

저는 서린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하트스케이프를 만든 사람이에요.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저는 아마 이 세상을 떠났을 거예요.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아름답게 살았어요. 그리고 평화롭게 떠났어요.

여러분께 부탁이 있어요. 계속 숲을 가꿔주세요. 여러분의 마음의 숲을.

그리고 기억해주세요. 예민함은 약점이 아니라 초능력이에요. 여러분은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예요.

서로 사랑해주세요. 서로 돌봐주세요.

저는 여러분을 사랑했어요. 한 번도 만난 적 없어도.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숲의 나무들이니까.

감사합니다. 함께 숲을 가꿔주셔서.

사랑을 담아, 서린

P.S. 제 마음의 숲에서, 파란 장미는 여전히 피어 있을 거예요. 여러분의 숲에서도 피어나길 바라요."

19.

2037년.

서린이는 서른여덟 살.

호수가 보이는 집.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평화로웠다.

고통도 없었다.

그냥... 조용했다.

마지막으로 하트스케이프를 열었다.

마음의 숲.

여전히 거대했다.

파란 장미.

활짝 피어 있었다.

"안녕... 마지막 인사야."

"안녕, 서린."

"우리... 잘했지?"

"최고로 잘했어."

"후회 없어?"

"단 하나도."

"나도."

"이제 갈 시간이야."

"응. 알아."

"무섭지 않아?"

"아니. 오히려... 기대돼."*

"뭐가?"

"다음 여정이."

파란 장미가 부드럽게 빛났다.

"거기서도 사랑을 지킬 거야?"

"당연하지. 그게 나니까."

"그럼... 안녕."

"안녕은 아니야. 잠시 후에 봐."

"응. 잠시 후에."

20.

눈을 감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천천히 내쉬었다.

평생을 함께한 호흡.

마지막 호흡.

서린이는 미소 지었다.

창밖에서 파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창가에 앉았다.

서린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날아갔다.

하늘 높이.

서린이의 숨이 멈췄다.

평화롭게.

아름답게.

에필로그

2037년 겨울.

서린이의 장례식.

뉴질랜드 와나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왔다.

팀원들. 사용자들. 가족들. 친구들.

준혁이 추도사를 읽었다.

"서린은... 파란 장미였습니다."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세상이 말했지만, 그녀는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증명했습니다.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그녀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주가 함께였으니까."

"그녀는 약했지만, 강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가장 강한 힘이니까."

"그녀는 떠났지만, 여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만든 숲은 영원하니까."

"안녕히, 서린."

"아니, 안녕은 아니죠."

"잠시 후에 봐요."

"당신이 가르쳐준 대로."

장례식 후.

서린이의 유언에 따라, 재가 호수에 뿌려졌다.

바람이 불었다.

재가 날아가 호수에 내려앉았다.

물결이 일었다.

그리고 고요해졌다.

한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하트스케이프를 열었다.

공지가 떠 있었다.

"서린의 마지막 메시지"

클릭.

서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리 녹음해둔)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이 메시지를 녹음하는 지금, 저는 아직 살아있어요.

하지만 이걸 듣고 계시다면, 저는 이미 떠났겠죠.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행복했어요.

38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충분히 살았어요.

사랑했고, 꿈꿨고, 이뤘고, 떠났어요.

완벽한 삶이었어요.

여러분께 부탁해요.

계속 살아주세요. 아름답게.

계속 사랑해주세요. 진실하게.

계속 꿈꿔주세요. 용감하게.

그리고 기억해주세요.

여러분은 파란 장미예요.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세상이 말해도, 피어나세요.

활짝.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사랑을 담아, 서린."

녹음이 끝났다.

침묵.

그리고 한 사람씩, 하트스케이프에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느꼈다. 슬픔과 감사." "오늘 나는 느꼈다. 사랑과 결의." "오늘 나는 느꼈다. 평화와 희망."

전 세계 5천만 명이 동시에 기록했다.

하트스케이프 서버에 빛이 들어왔다.

데이터가 흘렀다.

5천만 개의 감정.

5천만 개의 숲.

그리고 각 숲에.

새로운 나무가 자랐다.

'추모나무'.

파란빛으로 빛나는.

10년 후, 2047년.

파란장미 재단 본부.

서울.

이솔은 이제 60대.

여전히 재단을 이끌고 있었다.

매년 1000명의 HSP 아이들을 지원했다.

장학금, 상담, 교육.

그 아이들 중 하나.

열두 살 소녀 지우.

"할머니, 서린 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이솔은 미소 지었다.

"파란 장미였단다."

"파란 장미요?"

"응.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졌지만, 그녀는 피어났어."

"어떻게요?"

"사랑으로."

지우가 생각했다.

"저도... 파란 장미가 될 수 있을까요?"

이솔이 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이미 파란 장미야."

"정말요?"

"응. 모든 HSP는 파란 장미야. 단지 아직 피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럼 저도 피어날 수 있어요?"

"물론이지. 서린처럼."

지우의 눈이 빛났다.

"저도 사람들을 도울 거예요. 서린 언니처럼."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리고 저도... 사랑을 지킬 거예요."

이솔은 눈물이 났다.

"서린아, 들리니? 네 씨앗이 자라고 있어."

50년 후, 2087년.

하트스케이프는 여전히 존재했다.

이제는 AI와 완전히 통합됐다.

전 세계 3억 명이 사용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의 숲'. 여전히 치유. 여전히 사랑.

하트스케이프 박물관.

서울 강남.

서린의 생애를 기록한 곳.

한 가족이 방문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다.

"이 분이 서린이라는 분이야."

"누구예요?"

"하트스케이프를 만든 분이지."

"왜 만들었어요?"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지금처럼요?"

"응. 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럼 어떻게 했어요?"

"꿈을 꿨어. 그리고 믿었지. 그 꿈을."

손자가 전시물을 보았다.

서린의 첫 노트. 하트스케이프 v0.1 스크린샷. 시리즈 A 계약서. 유니콘 기사. 마지막 메시지.

그리고 한가운데.

파란 장미 한 송이.

(표본으로 보존된)

"예쁘다..."

"그치? 이 장미처럼, 서린도 아름다웠어."

"지금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가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별이 됐어."

"정말요?"

"응. 그리고 네가 하트스케이프 쓸 때마다, 서린이 미소 짓는 거야."

"진짜요?"

"진짜야."

손자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하트스케이프를 열었다.

자신의 마음의 숲.

아직 작은 숲.

하지만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써요?"

"응. 할아버지도 써."

"할아버지 숲은 어때요?"

"크지. 50년 동안 가꿨으니까."

"우와... 저도 크게 키울래요."

"그래. 천천히, 매일 조금씩."

둘은 함께 앱을 보며 미소 지었다.

박물관을 나서며.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서린은 행복했을까요?"

할아버지는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을 거야."

"왜요?"

"자기가 사랑한 일을 했으니까."

"저도 그렇게 살래요."

할아버지가 손자의 손을 잡았다.

"그래. 네 파란 장미를 찾아."

"네!"

둘은 손을 잡고 걸어갔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얀 눈송이들.

마치 축복처럼.

진짜 마지막.

우주 어딘가.

영혼의 세계.

서린이 서 있었다.

젊고 빛나는 모습으로.

옆에는 수많은 존재들.

과거의 레무리아인들.

"잘했어, 서린."

한 존재가 말했다.

"고마워요."

"네 임무를 완수했어. 사랑을 지켰어."

"혼자는 아니었어요. 모두 함께였어요."

"그래.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어."

"다음엔 뭘 하죠?"

"네가 선택해."

서린은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푸른 별.

아직도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아직도 외로운 사람들이.

"다시 갈게요."

"정말?"

"네.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

"파란 장미로?"

서린이 미소 지었다.

"아니요. 이번엔 다른 꽃으로."

"어떤?"

"해바라기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는."

존재들이 웃었다.

"역시 너답다."

"언제 갈 거야?"

"준비되면요."

"그럼... 잠시 후에 봐."

"응. 잠시 후에."

서린은 마지막으로 지구를 바라보았다.

5천만 개의 작은 빛.

하트스케이프 사용자들.

각자의 숲.

"고마워요, 여러분."

"함께해줘서."

"그리고 기다려요."

"언젠가 다시 만나요."

"다른 모습으로."

"하지만 같은 사랑으로."

빛이 되어 사라졌다.

지구 어딘가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우는 소리.

하지만 눈은...

깊고, 지혜로웠다.

의사가 놀라며 말했다.

"이 아이... 뭔가 특별해요."

어머니가 물었다.

"뭐가요?"

"눈빛이... 마치 오래 산 사람 같아요."

아기가 의사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서린의 미소였다.

끝.

아니, 시작.

왜냐하면 사랑은 끝나지 않으니까.

사랑은 계속 흐르고, 계속 피어나고, 계속 전해지니까.

파란 장미는 영원하다.

THE END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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