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아트 2017년 3월호 기고
일상적 오브제의 기이한 변용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2011)’, 집이 한 채 들어섰다. 그런데 좀 괴이하다. 유럽의 가정집을 옮긴 형태인데 거실도, 소파도, 부엌도 홀쭉하다. 도무지 사람이 어깨를 펼 수도 없을 넓이로 길고 좁아져, 안에 들어서면 게걸음으로 발을 옮겨야 한다. 반원이었던 세면대는 초승달 모양이 되었고 베개가 두 개 있는 것으로 보아 2인용임을 짐작게 하는 침대는 한 사람이 간신히 몸을 뉘일 정도로 가느다랗다. 좁다란 이 집의 이름은 <Narrow House>(2011). ‘늘씬한’이 작품은 일상의 사물을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오스트리아 작가 에르빈 부름(Erwin Wurm)의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조각가라 칭하지만 그의 작품은 단순히 깎거나 살을 붙이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만큼 부름의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넓고, 속단 역시 금물이다.
에르빈 부름만큼‘조각이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생각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이 고민으로부터 출발해 그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 One-Minute Sculpture’ 시리즈는 1997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전시장에는 양동이, 마커펜, 볼펜, 연필, 오렌지 등 일상의 사물이 놓여 있다. 이것은 하나의 조건일 뿐, 작품이 완성되려면 꼭 필요한 요소가 또 있다. 그림이나 텍스트로 된 지시사항과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관람객이다. 참여자들에게 전달되는 지시 사항은 “혓바닥을 내밀어라,” “공(들) 위에 누워 몸의 어느 부분도 땅에 닿지 않도록 하라,” “마커펜을 신발 위에 올리고 일 분 동안 유지하면서 데카르트(René Descartes)를 생각하라”같은 것들이다. 관람객 중에는 지시에 따라 다리 사이와 겨드랑이에 신발을 끼우고 엉거주춤 서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몸을 의자 밑으로 구겨 넣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중요한 룰이 하나 있다. 동작 그대로 1분간 멈춰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붙은 이 시리즈의 이름은 ‘일분 조각’. 글자 그대로 1분 동안의 조각이라
는 것이다. 관람객은 우스꽝스럽고 불안한 그 포즈를 기꺼이 시도한다. 갤러리 직원이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을 기념품 값 정도의 금액을 지불하고 받아갈 수 있다. 또 추가 금액을 내면, 작가에게 사진을 전송해 친필 사인이 추가된 ‘인증받은’ 작품으로 받을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 1분간만 실재하는 조각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구적인 것만이 조각인가? 한순간에만 특정 모양이 되는 것은? 사진이나 비디오로 남겨지는 것은 조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등의 물음말이다. 당신의 생각은? 이것은 과연 조각일까?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에게서 나올 답은 ‘모두 다 조각’이다. 그는 조각에 대한 치열한 고민으로 그 영역을 넓혀왔는데, ‘일분 조각’ 시리즈를 비롯해 드로잉, 책 작업, 사진과 비디오 작업 모두를 조각이라고 부른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www.erwinwurm.at)에 소개된 다양한 작업은 조각이라는 이름 아래 분류돼있다. 카테고리는 그냥 조각(Sculptures)을 포함, 퍼포먼스 조각(Performative Sculptures), 사진 조각(Photographic Sculptures), 비디오 조각(Video Sculptures) 등 모두 ‘조각’이다. 바탕이 이러하니, 작품의 의미는 행위가 존재했던 1분 만이 아닌 다른 매체로 남겨진다는 점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한편 ‘시간’이라는 테마와 병렬하는 그의 또 다른 축은 ‘옷’이다. 그에게 옷이란 두 번째 피부이자 보호하는 껍질 즉, 살을 의미한다. 겉과 속, 비움과 채움, 열림과 닫힘, 고정과 변하기 쉬움에 대한 것에 대한 관심은 80년대 후반부터 바지나 스웨터 등 옷을 이용한 작업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초기작에서는 금속파이프나 좌대 등 단순한 물체를 단색의 옷으로 감싸는 작업을 통해 추상적이고 미니멀한 형태를 제시했다. 이후 비디오 <59 Positions>(1992)에서는 옷을 가지고 기괴한 자세를 만드는 사람을 보여주었다. 여기 등장한 '기괴한' 자세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머리에 바지를 뒤집어쓰고 팔을 Y자로 들어 다리 부분에 넣고 서 있는 자세 또는 온몸을 스웨터 안에 두고 주저앉아 두 다리를 소매로 빼낸 마름모꼴의 모습이다. 언뜻 보면 사람인지, 사람이라면 대체 무슨 자세인지도 모를 생물체들이 등장하는데, 59가지 옷 속 희한한 포즈를 한 사람은 조각처럼 ‘놓여져’ 20초 동안 그 자세를 유지한다.
옷을 이용한 또 다른 작품 <Fabio Getting Dressed>(1992)에서는 겹겹이 옷을 입는 파비오(Fabio)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나체로 시작해 한 겹 한 겹 옷을 입기 시작한다. 속옷 다음 티셔츠, 바지, 셔츠, 넥타이, 스웨터, 또 다른 스웨터, 그 위에 스웨터, 마지막으로 몇 겹의 외투까지. 옷을 계속해서 입고, 얼굴도 파묻히고, 이상한 자세가 될 때까지 입는다. 뚱뚱해진 파비오는 엉거주춤 서 있다가 영상을 빠져나간다. 에르빈 부름은 이와 같이 옷을 소재로 한 작품을 통해 ‘표면으로서의 피부에 대한 관심’을 밝힌다. 옷은 몸의 모양을 만들지만 또한 어떻게 우리가 스스로를 보는지에 대한 인식을 일깨운다. 이것은 우리와 세계 사이의 경계이자 보호하는 갑옷이다. 옷으로부터 시작한 표피에 대한 그의 관심은 결국 ‘살’로 이어진다.
‘Fat Car’ 시리즈는 이름 그대로 아주 뚱뚱한 차인데 그 표면은 흘러넘치는 뱃살 같고 라이트와 번호판, 문의 손잡이는 투실투실한 살로 덮여있다. 이 차는 어쩌다 이리 비만이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최고급 차는 차고에 고이 모셔지고, 나들이라 봐야 자태를 뽐내듯 도심을 배회하는 것일 게다. 제아무리 태생이 날렵한 스포츠카여도 움직이지 않고, 안에 갇혀 있으면 비만이 되지 않겠는가. 그는 이렇게 헛된 욕망에서 온 과시용 소비를 꼬집어, 우리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는 불편한 웃음을 짓게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하는 그는, 미술관과 갤러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통로를 종횡무진한다. 2009년에는 패션 잡지『Vogue』에 유명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Claudia Schiffer)의 ‘일 분 조각’이 하이패션 이미지로 소화되었고, 전 세계를 달구는 록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노래 <Can’t Stop> 뮤직비디오의 주요 콘셉트가 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마커 펜을 콧구멍에 넣고 눈에 필름 통을 끼운 멤버들을 볼 수 있다. 처음 에르빈 부름에게 작품 콘셉트를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이 왔을 때, 그는 단 한 가지 조건만을 요구했다. 이 뮤직비디오의 영감이 그에게서 온 것이라는
문구만 넣는다면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대중에 다가서겠다는 그의 의지는 날개를 달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의 가장 큰 광고 매체는 MTV다”라고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이것이 예술이고, 이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룰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신념이자 의지다. 그런 그는 스스로를 천생 예술가라 일컫는다. 부름에게 예술가의 정의란 간단하다. ‘그릴 것과 약간의 음식, 이것이 원하는 것의 전부’인 사람들, 그들이 바로 예술가라는 것이다. 예술가는 다 사기꾼 아니냐는 경찰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작가의 길이었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조각과를 가게 된 인생의 기로에서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고민을 겪었다. 이 흐름에서 탄생해 그를 수식하는 주요 작품, ‘일분 조각’ 시리즈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다. ‘2017 베니스 비엔날레’, 오스트리아관의 대표작가로 돌아온 그가 ‘일 분 조각’의 2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또 한 번 선보인다고 하니,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구경꾼들은 올해 가장 핫한 그곳에서 몸소 조각이 될 기회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1954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에르빈 부름은 빈과 림베르크에 기점을 두고 전 세계로 누비고 있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한 바 있으며 2017년에 오스트리아관 대표작가로 참가하는 그는 독특하고 괴상하기도 한 이미지를 통해 익살과 풍자를 풀어내는 조각가다. 일시적인 시간에 대한 의미와‘조각이란 무엇인가’의 의문에서 시작된 ‘One-Minute Sculpture’는 많은 이들에게 그를 알린 대표작이다. 테이트 모던을 비롯, 베를린 현대미술관, 크라쿠프 현대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그의 작품은 퐁피두센터, 구겐하임 미술관, 쿤스트 하우스 등 세계 유수 기관에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