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마틴 스콜세지 감독 작품.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세 번 정도 봤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집중해서 봤다. 스콜세지의 페르소나인 로버트 드 니로와 그의 오랜 동료 조 페시가 등장하면서 하드보일드한 내용이 전개될 걸로 기대한다.
스콜세지의 이전 영화 '좋은 친구들'과 '비열한 거리'와 맥을 함께 하는 마피아 영화이면서, 미국 라스베가스 도박 역사의 한 시대를 담은 영화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드는 영화는 다른 어떤 감독의 작품보다 '리얼리즘'에 충실하다. 거의 모든 영화는 현실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도 현실을 매우 충실하게 반영하는 걸로 유명하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폭력적이고, 잔혹하다. 영화는 현실의 폭력성과 잔혹함을 '카메라'를 통해 반영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 탈색된다. 그럼에도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는 주로 마피아의 세계를 날것으로 드러내려는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그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작 '대부'가 마피아의 세계를 가장 뛰어나게 그렸다고 하지만, 사실 '대부'가 '리얼리즘'에 충실한 작품이 아니라 일종의 '판타지'라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같은 마피아의 세계를 그렸지만 '대부'는 마리오 푸조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었고, 마리오 푸조는 출판사 편집자의 제안으로 마피아 소설을 쓰기로 했고, 마피아에 관한 취재를 했다. 그 자신 이탈리아 사람으로, 이민 2세대에 해당한다. 미국에서 '리틀 이탈리아'는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차이나타운'처럼, 이탈리아 사람들이 단단한 민족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집단 주거 지역이다. 마리오 푸조는 어릴 때부터 마피아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리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마피아들은 누군가의 자식들이었다.
특히 마틴 스콜세지나 마리오 푸조는 모두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민 2세대로, 마피아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대부'가 성공한 건 마리오 푸조의 소설 원작이 훌륭한 것도 있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연출이 탁월했기 때문이기도하다.
그럼에도 '대부'는 이탈리아 마피아를 '있는 그대로' 즉 '리얼리즘'에 충실한 영화로 보기 어려운 까닭은, 1960년대 마피아의 현실이 영화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기 때문이다. '대부'에서는 마피아들이 고급 정장을 입고, 마치 상류층의 사교 모임처럼 모여서 파티와 회의를 하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 마피아들의 생활은 그저 평범한 동네 아저씨들처럼 행동하며, 외모나 입는 옷도 중하류층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마피아들은 겉모습부터 그들이 나누는 대화, 말투, 사소한 행동 등이 '진짜' 마피아처럼 보인다. 즉, '대부'의 마피아들은 일종의 '신격화' 된 존재들이라면, 마틴 스콜세지에 등장하는 마피아들은 '리틀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진짜' 마피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우연이지만, '대부 2'와 '카지노'에서 주연을 연기한 배우가 로버트 드 니로다. '대부 2'는 '대부'의 프리퀄로, 마리오 콜레오네가 어떻게 '대부'로 커가는가를 보여주는 서사다. '대부'에서 보여준 권위적이고 성공한 마피아가 되기 전인 평범한 인물이 마피아로 변해가는 과정이 곧 미국 현대사의 중요한 일부라는 걸 알 수 있다.
'카지노'도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니콜라스 필레기가 쓴 소설 '카지노 : 라스베가스의 사랑과 영광'을 원작으로, 마틴 스콜세지와 니콜라스 필레기 두 사람이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했다. 라스베가스는 사막 위에 세운 도시로, 이 도시의 탄생과 진화 과정은 마피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라스베가스'는 19세기 중반에 몰몬교도들이 집단으로 이주했다. 인구가 늘면서 1911년에 '시'로 승격했고, 1931년 '후버댐' 공사를 시작하면서 라스베가스는 도박을 할 수 있는 시 단위의 라이센스를 받는다. 즉, 라스베가스가 공식 도박 도시로 인정받은 때는 1931년이다.
라스베가스는 1930년대까지만 해도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특히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인디언과 동쪽과 서쪽을 오가는 상인들이 잠깐 들렀다 가는 곳이었다. 1940년대 '후버댐'이 완공되면서 라스베가스는 커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라스베가스'의 발전에 직접 뛰어든 인물이 벤자민 시걸, '벅시'라 불리는 인물이다. '벅스'와 관련해서는 영화도 있는데, 베리 레빈슨 감독이 연출한 '벅시(BUGCY)'가 그 영화다. '벅시'는 마피아로, 라스베가스에 호텔을 짓고, 카지노를 키운 인물이다. '벅시'를 시작으로 라스베가스에 마피아들이 본격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 영화 '카지노'는 그런 배경을 바탕에 깔고 있다.
'벅시' 이후 1960년대 후반에 미국의 진짜 부자이면서 영화제작자, 비행기 제작자인 '하워드 휴즈'가 헐리우드에서 라스베가스로 들어오면서 라스베가스는 오늘날의 도박 도시로 확고한 면모를 갖춘다.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에비에이터'도 있는데, 주연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했다.
영화 '카지노'는 하워드 휴즈가 라스베가스를 장악하던 시기와 많이 겹친다. 물론 하워드 휴즈가 소유한 호텔이 더 많고,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의 30% 정도를 하워드 휴즈가 차지하는 상태였고, 하워드 휴즈는 정치가와 권력자들과 긴밀한 관계여서 아무리 마피아라 해도 하워드 휴즈를 건드릴 수는 없었다.
하워드 휴즈도 자기 호텔에 있는 카지노의 운영을 마피아에게 맡기는 정도로 물리적 충돌을 피하고, 서로 이익을 챙기는 타협을 하고 있었다. 영화 '카지노'는 이런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어, 자칫 마피아가 라스베가스를 완전히 장악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라스베가스 호텔 카지노를 운영하는 마피아 가운데 시카고에 근거지를 둔 마피아 조직은 카지노 텐지어스를 운영하는 인물로 '샘 '에이스' 로스스틴(로버트 드 니로)'을 파견한다. 텐지어스 호텔의 소유주는 필립 그린이지만, 그는 마피아가 겉으로 내세운 바지 사장일 뿐, 카지노를 운영하는 사람은 로스스틴이다. 다만 카지노 면허를 로스스틴 이름으로 받을 수 없어 로스스틴은 식음료부장 같은 직원으로 등록해 뒤에서 운영하는 방식이다. 로스스틴은 마권업자로 매우 높은 승률을 보이며, 사기꾼에 범죄자이긴 해도 그는 카지노 경영을 잘 하고, 스스로 자신 있다고 생각한다.
카지노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상당 부분은 현금 가방에 담겨 정기적으로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수익금은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고, 현금 정산소의 직원들과 마피아들이 계속 돈을 빼돌리는 상황이다.
시카고 마피아 두목들은 이런 좀도둑질을 눈치 챘고, 카지노를 감시하려는 목적으로 니키(조 페시)를 라스베가스에 파견한다. 니키는 '진짜' 범죄자로, 잔인한 성격에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악한 인물이다. 니키는 이미 시카고에서 FBI 수배 인물이었고, 그가 라스베가스에 도착하자 곧바로 FBI도 뒤를 따라 그를 추적한다.
로스스틴(에이스)과 니키는 오랜 친구이면서 자기 삶의 지향점은 상당히 다르다. 에이스가 폭력을 쓰지 않고, 가능한 합법적 방법으로 마피아의 사업체를 키우려 한다면, 니키는 과거 조직폭력배처럼 직접 폭력을 써서 자기 욕망을 실현한다. 에이스는 니키가 라스베가스로 온다고 했을 때, '여기서는 튀지 않게 행동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불법인 상태에서, 니키가 시카고에서 했던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면 나키 자신은 물론 에이스를 비롯한 카지노와 시카고의 두목들까지도 위혐하다는 걸 에이스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스는 사업에서는 합리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하면서 자기 삶에서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는 카지노를 드나들며 손님을 상대로 사기치는 매춘부 진저(샤론 스톤)에게 반해 그와 결혼하는데, 이런 판단을 하는 에이스의 인간성과 인간적 한계가 드러나는 장치다.
에이스를 보면, 그가 가족도 없고 세상을 험하게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범죄자가 되고, 마권업자로 도박판에 발을 들이게 된 상황은 그의 개인적 자질보다는 그가 살았던 어린시절부터 그의 부모, 가족과 그들이 놓인 사회적 배경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걸로 본다.
에이스가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고, 오로지 돈만 보고 결혼한 매춘부 전저를 끝까지 믿으려 했던 건 '가족'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진저는 에이스와 결혼하고도 기둥서방 레스터(제임스 우즈)와 계속 연락하고, 은행에 있는 돈을 에이스의 허락 없이 빼내 레스터에게 건내주곤 했다. 진저와는 결별하지만 어린 딸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려는 에이스를 보면, 그가 혈육과 가족에 크게 집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진저는 에이스와 니키 사이에서 자기 욕망을 최대한 충족하려 몸부림친다. 에이스와 결혼한 이유도 에이스를 사랑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그가 제시한 2백만 달러의 현금과 백만 달러어치 보석으로 자신을 팔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진저는 여러 번 에이스를 사랑하려고 노력했고, 행복한 삶을 이루려 아이도 출산하지만, 진저는 그의 기둥서방 레스터를 끝내 잊지 못하고, 그와 관계를 끊지 못한다. 그게 진저의 한계이며, 진저가 선택한 운명이다.
에이스가 진저에게 집착하며, 진저를 의심하고, 진저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고, 진저가 쓰는 돈의 행방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유는 진저의 거짓말과 진저가 했던 과거의 잘못에 원인이 있지만, 에이스가 처음부터 진저를 믿지 않은 상태로 결혼했기 때문이다. 즉, 에이스와 진저는 사랑이 없는 부부이면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가장 저열하고 천박한 관계라는 걸 보여준다.
에이스는 결국 진저를 쫓아내고 이혼한다. 진저는 이혼하기 전까지도 그의 기둥서방 레스터와 만나고 있었고, 이혼하면서 막대한 재산을 받았지만, 그 돈과 보석은 불과 얼마 가지 않아 다 빼앗기고 결국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
에이스와 니키는 오랜 친구로, 서로 힘을 모아 협력하고, 그들의 사업(범죄)이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관계였다. 에이스는 직접 폭력을 쓰지 않고 주로 머리와 말로 그의 사업을 추진했으며, 그는 상당한 재능과 자질이 있어 마피아 두목들의 눈에 띄었고, 라스베가스 카지노의 관리자로 지목될 정도에 이른다. 에이스로서는 상당한 출세이며, 카지노 운영을 잘 하는 것이 곧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에, 그는 카지노가 아무 문제 없이 운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니키는 에이스와 달리 오로지 폭력만이 완벽한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잔혹한 성격으로, 상대가 누구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침 없이 폭력을 쓴다. 에이스는 니키를 경멸하면서 한편 두렵고, 니키는 에이스가 범죄자이면서도 아닌 척, 마치 사업가처럼 행동하는 꼴을 보면서 역겨워 한다.
두 사람의 갈등은 초반부터 예견되지만, 중간에 진저가 등장하면서 갈등이 증폭된다. 에이스는 자기가 운영하는 카지노의 안전을 위해 니키가 출입하지 않기를 바라고, 니키가 시카고의 두목들 허락 없이 독자적으로 라스베가스 일대에서 살인, 강도를 자주 하다보니 FBI의 표적이 되어 결국 에이스에게까지 감시의 눈길이 몰리고 있어 니키에게 여러 번 경고하지만, 니키는 오히려 에이스를 비난한다.
진저는 니키에게 붙어 에이스를 죽이고 엄청난 재산을 나눠 갖자고 꼬득인다. 니키는 진저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에이스를 살해할 준비를 한다. 그렇게 오랜 친구였던 에이스를 살해할 정도에 이르면서, 사건은 점차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폭주한다.
니키는 FBI를 우습게 봤지만, FBI는 오랜 시간 니키와 그의 조직, 크게는 시카고 마피아 전체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고, 구체적인 범죄 증거를 확보하려고 용의자들의 집에 도청장치를 해두었으며, 용의자들이 사는 집 주변에서 감청을 통해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모두 녹음하고 있었다.
범죄 조직의 붕괴는 결국 이익의 분배에서 시작한다. 마피아 두목들의 탐욕과 부하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지 않는 불만이 쌓이면서, 부하 가운데 한 사람이 범죄로 얻은 수익금의 분배가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노트에 자세히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 내용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도청을 하던 FBI에게 알려지고, FBI는 이 녹음 자료를 바탕으로 범죄용의자들의 집을 압수수색해 증거물을 확보한다.
둑이 터지기 시작하자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들은 꼬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카지노와 관련되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조직원들이 살해되기 시작하고, FBI의 증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거'된다. 당연히 에이스와 니키도 그 제거 대상에 들어가고, 니키는 자기 부하들에게 비참하게 맞아 죽는다. 에이스 역시 자동차에 장치한 폭탄이 터져 죽을 수 있었지만, 운이 좋아 살아 남는다.
에이스의 몰락과 니키와 같은 마피아 조직의 폭력이 라스베가스에서 사라지면서, 1970년대까지 라스베가스를 지배했던 조직폭력 집단의 카지노 운영과 범죄는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 그러니까 사업으로써의 카지노가 호텔 대기업들의 진출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라스베가스는 미국의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는 도시이며, 미국의 욕망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라스베가스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 화려함과 거대한 외형의 내면에는 인간의 탐욕을 먹고 사는 괴물이 꿈틀거리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욕망을 꿈꾸며 라스베가스로 모여 들고, 그런 사람들을 노리는 범죄자들이 모여 들고, 단 1%의 수익만으로도 수십 억 달러, 수백 억 달러의 이익을 가져가는 자본가의 보이지 않는 함정이 화려함으로 치장한 도시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런 자본과 범죄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탐욕과 추악함을 건조하게 드러낸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걸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관객은 도덕이나 윤리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원초적인 욕망을 이해하고, 관객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두운 면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