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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것들

by 백건우

가여운 것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작품. 이미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 디어'를 통해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개성 있는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이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알레고리로 가득하다. 그의 작품에서 관객이 눈으로 보는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기 보다는, 보여지는 것(기표)과 보여지는 것의 이면에 숨은 의미(기의)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정치적 함의와 철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송곳니'에서 보인 강렬하고 강력한 '(가부장, 국가)권력' 비판 알레고리처럼 이 작품도 중층적이고 중의적 알레고리를 담고 있어 작품을 해석하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다. 가장 쉬운 분석은 주인공 '벨라'를 두고 '프랑켄슈타인'의 여성 버전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갓윈' 박사가 벨라를 창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미장센도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작품 속 세계와 인물이 현실이 아닌, 환상과 신화의 어디쯤에 있는 'Another World'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이야기를 보는 듯 하다. 중세 또는 근대의 풍경에 '스팀 펑크'의 세계관, 첨단 의학을 뛰어 넘는 사이버 펑크 의학, '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신화를 보는 듯한 유럽 종교, 유럽 신화의 알레고리 등이 모두 버무려진 작품이다.

'벨라'는 '제조된 인간'이다. '프랑켄슈타인'에서 빅터가 만든 인조물은 인간의 신체 조각을 이어붙여 만들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임신한 여성의 신체에 태아(자식)의 뇌를 여성(엄마)의 뇌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든다. '갓윈'은 '신'을 상징한다. 그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즉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며 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연구를 하는 의사이면서 과학자인데, '갓윈'은 자신의 육체도 아버지 즉 '신'에 의해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하고, 실제 그의 외모는 온갖 생체 실험으로 갈가리 찢긴 흔적이 역력하다.

'갓윈'은 아버지에게 배운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인간을 개조,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고, 템즈강에 뛰어내린 임신한 여성의 주검을 돈으로 산 다음, 자신이 연구한 의학 기술을 바탕으로 새롭게 제조해 성공한다. 이때, 태아의 뇌를 엄마의 뇌에 이식하는 건 '갓윈' 즉 '신'의 의지는 선악과 도덕, 윤리의 기준을 뛰어넘는 걸 보여준다. '신'이 인간을 '창조' 또는 '제조'할 때 선악과 도덕, 윤리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 인간은 만들어진 다음부터 스스로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갔다는 걸 강조한다.

이건 '벨라'가 작품의 초기 장면에서 하는 언행과 끝부분에서 하는 언행의 차이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벨라'는 미친 과학자가 '제조'한 인간이면서 '신'이 창조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최초의 인간은 신생아의 뇌처럼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고, 오로지 본능만이 있을 뿐이다. 벨라는 언어를 배우고, 행동의 옳고 그름, 규범을 익힌다. 벨라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개인'의 성장이면서 또한 인류의 성장을 상징한다.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보면, 벨라의 성장은 역사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성장하는 걸로 볼 수 있다. 벨라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스스로 '성'을 상품으로 팔아 경제적 자립을 이루려 한다. '성'을 대하는 벨라의 태도는 중세와 근대에서는 혁명적이며, 현대 여성의 주체성을 일찌감치 실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갓윈'의 시각으로 보면, 그가 '제조'하는 생명체는 우리(인간)의 눈으로 보면 기괴한 기형, 변형체들이다. 돼지머리에 닭의 몸을 하거나, 염소의 대가리에 닭의 다리를 한 동물들이 마당을 뛰어다닌다. 이런 신체의 기형, 변형은 차이와 경중은 있으나 란티모스 감독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생명체의 신체를 물리적으로 변형시키거나 기형으로 만드는 능력은 '신'의 영역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인간의 과학기술은 '신'의 능력에 점차 가까워지고, 유전자 변형, 유전자 삭제 및 복제 등의 기술로 기존에 할 수 없었던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다른 영화 '인간 지네'에서도 외과의사가 인간들을 입과 항문을 연결하는 끔찍한 장면을 보이고, 그보다 더 잔혹한 고어 영화 '엔지니어링 레드(절대 보면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에서 인간의 육체를 해체, 재조립하는 장면들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매우 온순한 수준에서 신체의 기형이 보여진다. 다른 예술 장르에서는 보기 어려운 신체의 변형과 기형을 다루는 건 주로 '영화'에서 가능하고, 작품도 많다.

신체를 변형, 기형으로 만드는 가해자의 심리에는 '신'이 되고픈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인간의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신'의 영역, '신'의 능력에 도전하려는 '미친 과학자'들이 나타나고, 이들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를 대상으로 생명을 창조하거나 '제조'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기존의 윤리, 도덕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끔찍한 짓을 저지른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신'이 창조한 인간이 '신'의 의지, 의도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처럼, 미친 과학자가 만들거나 개조한 생명체 역시 그의 의지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벨라'는 성인 여성의 몸을 가졌으나 자신의 몸 안에 있던 태아의 뇌를 가진 기형적 존재다. 그의 기형적 신체는 비상식, 몰상식한 행동으로 드러나고, 최소한의 윤리 기준도 없는 상태 즉 갓난아이의 상태로 깨어난다.

그런 '벨라'가 시간이 흐르면서 언어를 배우고, 몸을 가누고, '나'와 '세계'를 구분하는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점차 인간의 보편적 상식을 갖추게 된다. 즉, '신'이 아무런 의도 없이 만든 피조물이라도 피조물이 스스로 자의식을 생성하고, 주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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