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시간이 문장이 되었기에
한참 전에 장남수 작가가 자신의 FB에서 '호주국립대학교 초청으로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한다'는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호주에서 가끔 일상을 담은 글과 사진이 올라왔고, 호주에서 돌아온 뒤에는 다시 제주도에서의 평범한 일상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장남수 작가가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지냈던 기간 동안 처음 방문하는 호주로의 여행부터 시작해 호주에서의 일상과 초청 주최자인 호주국립대학교 루스 교수, 한국학, 한국 노동 문제 등을 연구하는 같은 대학 교수들과의 우정, 집을 떠나 머나 먼 낯선 땅에서 경험하며 새삼 느끼는 노동자와 노동의 문제를 자신의 청년 때 경험과 아우르며 찬찬히 되새김하는 에세이다.
장남수 작가는 호주 다녀와서 책을 쓰겠다고 했고 약속을 지켰다. 나 역시 장남수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 소년노동자로 살았던 것, 검정고시를 두 개 합격하고, 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 독학으로 글을 쓰고 작게나마 인정을 받았던 것 등에서 매우 비슷한 동질감을 갖기에 이 책은 마치 내 삶을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남수 작가는 10대에 원풍모방 노동자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의식화'가 된 노동자다. 70년대, 80년대 독재정권은 노동자를 '빨갱이'와 동일하게 여기며 폭력으로 탄압했는데,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오히려 더 당당하고 가열차게 자본가와 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어린 노동자들은 온종일,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하고 다시 밤에는 야학을 했다. 이때 대학생 선생님들이 앞장 서 배움을 갈망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했고, 그 대학생 선생님 대부분은 70년대, 80년대 학생운동권으로, 사회 변혁 세력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장남수 작가와 그의 동료들은 한국현대사를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걸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런 현실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개인은 자신의 운명이 역사의 한 가운데 서는 줄 모른 채 격정의 시대를 살아갈 때가 있다.
그리고 참 다행스럽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나아졌고, 풍요로워졌다. 배를 곯던 어린 노동자들이 이제는 건강을 걱정해 음식을 줄이고, 운동할 고민을 하고, 자식, 손자 걱정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독재 정권은 사라졌고, 민주주의는 성장하고, 경제도 세계 10위권이 되었고, 인권은 법과 제도로 지켜지고, 여성의 권리,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도 조금씩 나아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동자'의 처우는 좋아졌다고 하면서도 날마다 어딘가의 현장에서는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인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다. 선진국이 되었다는 나라에서, 아파트가 수십 억씩 하는 나라에서 노동자는 월세에, 단칸방에서 살아가는 현실이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의심스럽다.
장남수 작가는 자신이 겪은 과거 노동자의 삶을 잊지 않고 있다. 그건 부끄럽지도, 그렇다고 대단한 자랑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노동자의 삶에 자부심을 갖는다.
그의 정체성은 호주에서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낄 수 있으며, 호주 원주민의 역사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에서 느낄 수 있다. 약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연대의 감정, 그건 노동자가 아니면 쉽게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장남수 작가는 '빼앗긴 일터'를 통해 한국 노동자의 현실을 통렬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21세기 한국은 이제 '빼앗긴 일터'를 더는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이 변했다고 말한다. 변했다면 변한 나라이고, 사회 현실이지만, 70년대 '빼앗긴 일터'가 있다면,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빼앗긴 일터'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우리가 소년노동자로, 청년노동자로 살았던 과거에 그랬듯, 오늘날에도 여전히 청년노동자들이 기계에 끼어 죽거나, 추락해 죽는 사고가 끊임 없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남수 작가가 쓴 '빼앗긴 일터'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기록이며, 그가 쓴 이 책 역시 한때 노동자였고,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한 여성 작가의 소중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