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인데 의외로 많이 언급되지 않아 보이는 영화. 한국 사회에 꾸준히 확산하는 마약 문제를 '야당' 즉 마약사범이면서 마약 수사를 하는 검사와 손 잡고 마약사범들을 체포하는 일종의 이중간첩 이야기와 함께 버무렸다.
예전에는 한국을 두고 '마약청정국'이라고 했었다. 그만큼 마약과 관련해서는 심지어 군부독재 정권까지도 철저하게 유통과 소비를 막았는데, 시나브로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도 마약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되었다. 최근 언론 보도와 백해룡 경정의 증언을 토대로 살펴보면, 윤석열 정권에서는 아예 대놓고 마약밀수범들이 마약을 지닌 채 공항을 통해 당당히 들어오거나, 배를 통해 수천만 명이 동시 투약할 양이라는 코카인 1.7톤을 적발하기도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마약'을 입력해 뉴스를 보면, 마약 관련 뉴스가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거의 모든 뉴스가 마약 적발 건수와 마약 양, 마약을 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는 부정적 뉴스 뿐이다.
이 영화는 마약 범죄와 정치 권력이 연결되어 있는 걸 전제한다. 마약 범죄 집단이 국가 권력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국가는 대개 남미 쪽 몇몇 국가들인데, 이들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들에서 생산하는 마약 대부분이 북아메리카 미국과 캐나다로 흘러가는 구조다. 마약은 1960년대부터 미국 지식인, 청년 사이에서 마리화나가 유통되면서 점차 사회 전체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에서 68항쟁과 그 무렵의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 사이에서도 마약이 널리 유통되어 미국 정부는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미국 청년 문화로 히피, 락, 대마초, 명상 등 외래 문화가 깊이 침투하고, 시애틀에서 시작된 미국 좌파(공산주의) 이론이 가까운 캘리포니아(로스엔젤레스, 헐리우드)를 장악하면서 미국 대학생들은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미국에서 마약이 확산하는 경로는 주로 캘리포니아 남부 멕시코 국경 근처로 배와 비행기를 통해 대량으로 밀수입하는 과정이었고, 남미 마약조직은 미국인 비행사, 보트 등을 매수해 마리화나와 코카인을 톤 단위로 퍼날랐다.
마약 카르텔은 남미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마약 카르텔이 존재하고, 마약으로 번 돈으로 공무원을 매수해 타락시킨 다음 범죄 협력자로 만든다. 윤석열 정권에서 백해룡 경정이 잡은 마약 범죄자들과 언론에 드러난 수사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한 마약 밀반입이 아니라 권력과 결탁한 강력한 권력 범죄라는 의심이 매우 짙은데, 만약 국가 권력이 개입해 마약을 들여왔다면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된다.
영화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아들과 마약이 연결되어 있는 설정이지만, 현실이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윤석열 정권에서 '비상계엄'으로 드러난 대통령의 내란 실행을 보면서 생생하게 경험했다.
마약 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검사다. 검사를 다룬 영화가 한국에서 유독 많은 이유는, 한국에서 검사의 사회적 지위, 정치적 역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특수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검사는 억울하게 마약사범으로 체포되어 옥살이 하던 이강수와 진급하지 못한 채 무능한 검사로 낙인 찍혀 한직에서 일하던 검사 구관희가 단합해 마약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검사 구관희는 야망은 있으나 수사 실적이 뛰어나지 못해 진급을 하지 못한 상태였고, 마약사범으로 체포된 이강수는 '야당질'을 당한 억울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필요로 결합해 강수가 마약 판매상의 줄을 타고 들어가 중간 판매상 또는 수입상을 확인하면 구관희가 이들을 체포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쌓는다.
영화는 두 사람의 협력과 배신을 통해 서사의 극적 긴장과 반전을 일으키는데, 영화 '내부자'와 서사의 구조가 비슷하다. 이때 검사 구관희는 권력자에 빌붙기로 작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검사가 권력자를 위해 권력자와 그 주위 인물이 저지른 범죄와 비리를 눈 감아 주는 상황은 지금 한국의 현실과 매우 비슷하다. 구관회의 변심은 필연적으로 '야당' 이강수를 용도 폐기하는 걸로 나타나고, 이강수는 믿었던(구관희를 '형'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구관희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고 폐인이 되어 죽기 직전에 겨우 살아난다.
영화 전반부가 이강수와 구관회의 협력과 합작으로 승승장구하는 과정이었다면 구관회가 권력의 개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이강수와 구관회는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적이 된다. 두 사람 사이에서 마약 범죄를 소탕하는 진짜 경찰 오상재(마약수사대)가 끼어들면서 세 사람은 서로를 견제하고 경쟁하는 긴장을 불어넣는다.
강수가 마약 중독의 나락에서 필사적으로 살아올 수 있던 건 대단한 의협심이 아니라 의리를 저버린 배신자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과 경쟁자 비슷하게 여겼던 오상재 형사와 힘을 모아 권력자의 범죄를 은폐하고 권력자에 빌붙어 출세하려는 구관회를 응징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통쾌하다.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거나, 못하는 답답한 상황을 영화에서는 시원하게 보여준다. 불온한 현실을 고발하고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결말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의 결함과 한계를 뚜렷이 보여준다. 지금 검찰 개혁이 벌어지는 상황도, 대통령을 탄핵하는 상황도 권력을 가진 자들의 비리와 범죄가 얼마나 악랄한가를 현실이 더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