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 도박꾼의 노래
넷플릭스 오리지널. 어떤 작품인지 모르고 봤는데, 흥미롭고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였다. 특히 음악이 영화 분위기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아, 인물의 감정을 강렬하게 음악으로 드러낸다. 감독이 누굴까 봤더니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콘클라베'를 연출한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이었다. 앞선 두 영화도 잘 만든 영화라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는데, 이 영화 역시 잘 만들었다. 원작 소설(로런스 오스본)이 있고, 시나리오도 다른 작가가 썼으니 온전히 감독의 역량을 쏟아부었다고 할 수 없으나 연출은 훌륭하다. 이미지(영상)와 음악으로 개인의 내면을 파헤치고, 개인이 느끼는 감정의 절박함을 격렬하게 표현하는 음향 효과와 빛(일루전)의 사용, 현실과 환각, 환상을 오가는 편집을 통해 시간이 뒤섞이며 관객이 느끼는 시공간의 감각을 해체한다. 이 영화 음악을 만든 폴커 베르텔만은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콘클라베'에서도 음악을 맡았다. 세 작품 모두 현대음악이 갖는 불협화음과 감각의 자극을 통한 음악적 체험을 날카롭게 구현했는데, 관객은 영상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미지보다 시각이미지 위에 흐르는 음악과 음향 이미지가 더 강하게 각인되는 경험을 한다.
영화에서 2-3시간 정도에 거대한 대하 서사를 보여주느냐, 한 사람의 심리와 내면을 핍진하게 보여주느냐는 소재와 주제에 따라 다른 작품으로 구현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영화 미학의 본질은 '빛'의 예술이고, 빛을 통해 드러내는 이미지로 말하는 예술이다.
이 영화도 주인공 '도일 경'이라는 한 인물의 뒤를 따라가며 고통스러운 내면을 드러내지만, 관객이 보는 건 화려한 마카오 카지노의 불빛과 수 많은 슬롯머신들의 반짝거리는 유혹의 빛들과 빛이 사라진 음울한 도시의 빌딩의 음산한 형상들이다.
'도일 경'은 이미 실패한 삶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인물이다. 그는 도박으로 모든 걸 잃었고, 호텔 창밖으로 떨어져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떠올린다. 시시각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경로는 오직 하나 뿐인 상황이다. 호텔 숙박료, 음식 값으로 큰 빚을 졌고, 도박할 돈이 없어 사채를 빌려야 한다.
설상가상, 사설탐정이 쫓아와 '도일 경'이 영국에서 훔친 돈을 갚지 않으면 경찰에 넘기겠다고 협박한다. 이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도일 경'이라는 자는 사기꾼으로, 영국에서 돈 많은 노부인에게 접근해 자산 관리를 해주겠다고 속이고 막대한 돈을 빼돌려 마카오로 도망왔다.
'도일 경'은 훔친 돈으로 도박을 했고, 이제 돈이 다 떨어졌으며, 호텔 숙박비와 음식 값이 밀려 있어 곧 심각한 상황이 닥치기 직전이다. 그럼에도 '도일 경'은 방을 뒤져 약간의 돈을 찾아내 도박을 하고, 사채를 얻으려 한다. 사채를 빌려주는 '다오밍'에게 애걸복걸하고, 다오밍의 집까지 따라간다. 하지만 '다오밍'은 다오밍대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고, '도일 경'의 처지를 이해한다.
관객은 '도일 경'이 다오밍을 만나 겪는 일련의 사건들, 두 사람의 관계,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의 처지가 서로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즉, 다오밍은 오히려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처지로 보이는데 절망하고, 당장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도일 경'은 절망의 낭떠러지 끝에서도 오히려 희망을 말하고 있는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날이 밝고, '도일 경'이 깨어났을 때 다오밍은 사라지고 없었다. '도일 경'은 다오밍이 남긴 숫자를 단서로 다오밍이 숨겨 놓은 돈을 찾아 다시 카지노로 가서 상상하기 어려운 큰 돈을 딴다. 여기까지만 보면 도박으로 돈을 잃은 도박꾼이 마지막 횡재를 하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도일 경'은 자신의 운명을 걸로 한 판, 한 판 가진 돈을 다 걸고 하는 도박에서 이긴다. 그러자 카지노 관리자가 '도일 경'을 불러 다시는 호텔 카지노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경고한다.
'도일 경'이 도박에서 매번 이길 수 있었던 건 그의 뒤에 한 여성이 있기 때문이고, 직원들 가운데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직원이 말하길, '도일 경'에게는 귀신이 붙었다고 말한다. '도일 경'은 말도 안 된다고 항변하지만, '다오밍'이 자살했다는 말을 듣자, 자신이 갑자기 모든 게임에서 이기게 된 이유를 깨닫는다.
자살 직전까지 갔던 참혹한 운명을 겪은 사람이 어느 순간 '귀신'의 도움으로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제 '도일 경'의 삶은 평범한 사람과 같을까, 다시 도박중독에 빠져 인생을 망가뜨릴까. 아니면 그의 삶 자체가 이미 죽어버린, 귀신의 삶일까를 관객은 모호한 상태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