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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by 백건우

프랑켄슈타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작품.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인공 생명체인 클리처는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19세기 유럽과 고딕을 섞은 미장센은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빅터는 귀족의 자식으로 자랐으나, 아버지와 엄마는 정략 결혼을 한 사이였고, 나이 차도 많아 아버지는 마치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런 아버지는 유명한 외과의사였고, 빅터를 교육하면서 냉정하고 잔인한 체벌을 했다.

나이 차가 많은 아버지는 엄격하고 체벌하며, 자식을 마치 동물 사육하듯 빅터를 대했고, 그의 동생 윌리엄에게 쏟는 사랑을 빅터에게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빅터의 아버지는 빅터가 뛰어난 외과의사가 되길 바랐고, 혹독한 수련을 거쳐 자신이 걸었던 최고의 외과의사가 되길 바라며 빅터를 조련했으나 빅터의 삶에서 그 시간들은 잔인한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어릴 때 학대를 당하고, 사랑하는 엄마마져 출산 후 사망하면서, 빅터의 어린시절은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마음 만큼이나 아버지를 증오하고, 외로움과 삭막한 감정이 사로 잡았다.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 조커의 과거를 보면,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러 다큐멘터리에서 연쇄살인자들의 어린시절 역시 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경험이 그의 미래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걸 알 수 있다.

빅터는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 과학 기술과 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빅터의 이 의지는 어머니가 동생 윌리엄을 출산하다 사망한 사건에 크게 영향 받은 걸로 보인다. 빅터는 인간의 출생은 어쩔 수 없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서, '죽음'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고, 의학과 과학으로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가 죽음에 집착하는 건 어머니의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즉, 죽음을 막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어머니를 되살리는 상징적 행위이면서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빅터는 여러 사람의 시신에서 부분을 취합해 인간의 형상을 조합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건 인간이 곧 '신'이 되는 걸 의미한다. 빅터가 만든 크리처는 여러 사람의 몸에서 가져온 육체의 부분을 조합한 것이고, 생명을 불어넣는 건 높은 압력의 전기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모아 에너지를 얻는다.

빅터의 실험은 성공하지만, 인조인간을 만든 빅터는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당황한다. 크리처의 탄생은 빅터에게 새로운 자식의 등장을 상징한다. 즉 빅터는 크리처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으나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인조인간 크리처는 흉칙한 외모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갓난아이'의 상징이다. 아이를 출산한 부모가 '갓난아이'를 보는 시각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아이는 당연히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흉칙하고 기괴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이런 감정이 잘못된 건 아니다.

크리처가 처음에는 말도 하지 못하고, 행동도 제멋대로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도 '갓난아이'가 점차 자라서 기어다니다 걷는 걸 보는 것과 같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단어를 말하고, 점차 자연스럽게 말도 하고, 걸어다닌다. 빅터가 만든 건 크리처로 보이지만, 이야기의 상징은 '갓난아이'로 해석할 수 있다.

빅터가 크리처를 난폭하게 다루고, 심지어 폭력을 쓰는 장면에서 빅터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당했던 폭력을 떠올린다. 그건 빅터가 그렇게 싫어하고 증오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닮아가는 걸 의미한다. 빅터는 증오하면서 닮아가는 아버지가 되고 있다. 크리처는 그런 폭력적인 아버지를 여전히 사랑하고 의지하려 하지만, 빅터는 크리처를 두려워하고 없애려 한다. 빅터의 아버지가 빅터를 바라볼 때 느꼈던 감정이 빅터에게 그대로 투사되는 걸 알 수 있다.

빅터는 자기가 만든 크리처를 없애려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자연과 신의 섭리를 저버린 행위로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괴물을 만들었다고 자책하는 빅터였으나, 결국 크리처를 아들로 인정하고, 크리처 역시 빅터를 '아버지'로 부른다. 빅터와 크리처의 관계는 빅터와 아버지의 관계를 그대로 가져온 걸로 볼 수 있다. 빅터는 자기 운명에 개입한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시간이 지나 보니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만든 크리처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만들었고, 자기가 아버지에게 가졌던 감정을 크리처에게 투사했다. 그 결말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으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크리처에게 미래의 희망을 보게 함으로써 빅터의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덜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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