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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현 Apr 18. 2023

오디션

단평 | 중년 남성들의 불순한 기획은 오디션이라는 포맷을 만나 권력화된다. 자신이 쳐놓은 덫에 가공할 만한 적수가 걸려들자 아오야마는 끔찍한 봉변을 당한다. 영화는 호러 장르를 빌어 불편한 사고 전복을 시도하고, 그 정교한 알리바이에 속아 관객들은 남성 중심 세계관에 한 표를 던진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아무리 극단의 폭력을 앞세워봐도 소용없는 일이다. 아사미는 끝내 가해자조차 되지 못한다. | 극장전 | 072 |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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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위기>는 흔히 여러 가지 성적인 현상들, 특히 젊은 여성의 몸에 대한 강렬하고 갑작스런 추구와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추구는 제르진스키의 경우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의 성기는 그저 오줌을 누는 데에만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셸 우엘벡, <소립자>


역시 젊은 여자가 좋은거지?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아오야마가 뜸들이자, 그의 친구인 시게히코가 치고 들어온다. 아오야마는 질문을 회피한다. 그는 전문적인 교양이 있는 여자가 좋다고 말하면서, 발레나 피아노, 성악 등을 그 예시로 든다. 이럴 경우,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세울 수 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이 둘은 방금 전 바 로비에서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여성들을 실컷 흉 본 다음이다. 일본도 망조가 들었군. 시게히코는 자신의 경멸을 국가적 차원으로 맥락화한다. 그의 관점에서 이 진단은 일방적이다. 이것은 일정한 권위적 위치에 오른 본인 같은 중년의 남성들만이 내릴 수 있는 평가다. 그러나 그는 젊은 여자를 멸시하는 동시에 탐한다. 어쩌면 그 경멸 자체가 욕망의 불가능성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도 남자는 여전히 짐승이다. 타고난 생물학적인 구성으로 인해 그들은 늘 어리고 예쁜 여자들과 자길 원한다. 그러나 그들의 육체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가정이나 사회적 지위, 또는 도덕심 등을 핑계로 대면서 자신들의 성욕을 억제한다. 무엇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그걸 인정하기보다 본인의 의지로 이를 거부하는게 차라리 낫다. 채워지지 않는 그 공백을 엉뚱한 것들로 메꾼 다음 그들은 섹스보다 더 좋은 걸 찾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때 그들은 종종 정신적 측면에 집착한다. 나이가 들면 그들의 육체적 매력은 사그러들지만, 정신은 반대로 더 깊고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사업적 성공이나 문화 생활, 아니면 인생의 철학 따위가 그들이 더 젊은 남자들을 상대로 내세울 수 있는 우위점들이다. 그래서 아오야마는 교양 있는 여자가 이상형이라 밝히고, 시게히코는 어린 것들은 머리에 든게 없다며 깔본다. 그건 더 이상 젊은 여자를 취할 수 없는 중년의 남성들의 자기합리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은폐하기 위해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생성해낸 것이다. <오디션>은 세기말 일본이 품고 있던 이 모순적 욕구 불만의 상태에서 시작한다.


해결법은 시게히코가 제시한다. 오디션을 보는 것이다. 만약 아오야마의 이상형이 확실하다면, 몇천 명의 여자 중 한두 명은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제시하되, 탈락하는 후보들에 한해서 아오야마가 접근하여 만남을 시도하는게 이들의 계획이다. 오디션은 특수한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우선 오디션에는 필터링의 논리가 작동한다. 사람들은 모두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사회적 관계를 맺지만, 오디션만큼 이를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모집 조건을 명시하여 후보 집단을 한 차례 추린 후, 대면 면접으로 또 한 번의 선별 작업을 거쳐 가장 적합한 후보를 선정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오디션은 소거법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한 명의 이상적인 사람을 찾기 위해 수천 명을 탈락시켜야 하는 것이 오디션의 본질이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심사위원과 지원자 간의 갑을 계약을 상정한다. 오디션을 보는 이들은 배역을 따내기 위해 자신을 타인의 평가에 전적으로 맡긴다. 따라서 권력의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지원자는 방 한가운데 있는 의자에 홀로 앉아 스스로를 전부 드러내야 하는 반면, 심사위원은 자료 더미 뒤에 숨어 일방적으로 질문들을 던진다. 결국 최종 결정권을 가진 쪽이 상황을 주도한다. 오디션은 아오야마와 시게히코가 은밀히 공유하고 있는 남성 중심적인 사고관에 최적이다. 이들은 성에 차지 않는 여성들은 떨어뜨리고,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되 처음부터 상하관계를 명확히 한다. 게다가 오디션의 심사위원은 젊은 남자들에게는 접근이 제한되는 높은 자리다. 따라서 오디션은 중년의 남성들이 젊은 여자를 취할 수 있는 일종의 제도적 판타지인 셈이다.


그렇게 해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될 확률은 어떻게 될까. <오디션>은 이 질문이 내포한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들 중 하나를 보여준다. 아오야마가 수 차례에 걸친 오디션 끝에 찾게 되는 아사미는 중년의 남성들이 젊은 여자에게 가지는 막연한 공포를 표상하는 존재다. 거기에는 정상적인 여자라면 자기처럼 나이 많은 남자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는 열등감이 기저에 깔려있다. 그렇다면 목적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그 이중성을 경계한다. 너무도 순조롭게 풀리는 둘의 관계를 보고 시게히코가 하는 경고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무살이나 어린 처녀가 사십대 중년 남성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빠져들리 없다. 그것도 재혼 상대로써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성을 강조해도 남자들은 어느새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아오야마도 참지 못하고 아사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기어코 덫에 걸리고 만다. 그가 보지 못하는 전화 저편의 모습 - 폐허에 가까운 집, 그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전화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대자루, 그리고 기이한 자세로 앉아 미소를 짓는 아사미 - 은 바로 아오야마 내면 깊숙한 곳에 뿌리잡은 불신이 만들어낸, 어두운 상상력의 풍경이다.


여행지의 호텔에서 아사미는 돌연 종적을 감춘다. 아오야마는 그녀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 단서들을 동원한다. 유년 시절 그녀가 다녔다는 발레 교습소, 그리고 일시적으로 일했다는 긴자의 작은 바 돌물고기 (石魚)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그는 아사미라는 여자의 실체에 조금씩 접근하게 된다. 과거 발레 교습소의 강사로 추정되는 휠체어 노인, 돌물고기의 주인 마담과 에이스 레코드에서 일하는 시바타라는 남성은 다 그녀와 모종의 관계를 가졌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의 현 상태, 즉 장애와 살인 그리고 실종은 전부 그녀로 연결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정황적 증거들에 불과하다. 그가 수집한 단서들은 법정에서는 별 효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오야마의 사고 전개에 강력한 경향성을 부여하여 결론을 유도한다. 아사미는 위험한 여자. 그것은 남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이다. 그는 이러한 심증들로 마음 속 의문의 구멍들을 어느정도 메꿔놓은 상태에서 아사미의 마취약이 든 위스키를 마신다. 그러므로 쓰러지는 순간 그가 보게 되는 환상은 실제보다 더 과장된 것이다. 이는 아사미의 범죄 행각이라는 뼈대 위에 아오야마의 욕망과 죄의식 그리고 공포가 살집을 덧댄 형태로 나타난다.

사실 우리는 아오야마의 여성편력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물론 그가 기혼자라는 점은 알지만 그게 전부다. <오디션>은 표면적으로는 아내와 사별한 어떤 중년 남자가 젊은 여자와 만나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들에게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간혹 그 인물들이 그 자체로 의문을 주거나 이후의 전개를 기대하게 해도 말이다. 먼저 그의 비서를 예시로 들어보자. 그녀는 자신의 상사인 아오야마에게 가서 결혼 소식을 알린다. 그는 그녀를 축하해주지만, 비서는 뭔가 더 할 말이 있어보인다. 나중에 그의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지만, 결국 말은 꺼내지 못한다. 두번째 예시는 아들의 여자친구다. 등교 길에서 만난 후 아들과 이 여학생은 생물학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계기로 친해졌다고 한다. 아오야마는 그런 아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며 은근슬쩍 자리를 비워준다. 이후 그녀와 잘 되고 있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아들은 여자는 겉보기와 다르고 복잡해서 무섭다고만 답한다. 아오야마는 그런가 보다, 하고 두 경우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다시 아사미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온다. 아오야마도 그렇고, 영화도 마찬가지다.


<오디션>에서 가장 불쾌한 장면은 무엇일까. 푸대자루에서 불구의 몸으로 나오는 시바타? 어린 아사미의 허벅지를 인두로 지지는 휠체어 노인? 그도 아니면 해맑은 표정으로 실톱을 가는 아사미? 이들이 일으키는 역겨움은 신체 고통을 간접 경험할 때 우리가 보이는 생물학적인 반응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불편한 곳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 바로 비서와 아들의 여자친구가 다시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오야마의 환상 속, 그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아사미의 황폐한 집의 한복판에 들어선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서자, 아니나 다를까 아사미가 달려들어 그의 바지를 벗기고 오럴섹스를 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정신을 차리자 아사미는 어느새 그의 비서로 바뀌어있다. 그녀는 원망의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저는 제가 대표님의 뭐라도 될 줄 알았어요. 그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비서는 어디가고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이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아들의 여자친구다.


남자들은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들은 머릿 속에서 수많은 여자들의 옷을 벗기고 잠자리를 같이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사회적 금기나 제약도 없으므로, 모든 여성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어리고 예쁘면 더욱 가능성이 높다. 아내의 임종으로 첫 장면을 장식하는 <오디션>은 아오야마에게 면죄부를 주는 척하며 시작한다. 그의 아들과 걸어가는 뒷모습을 멀리서 잡을 때 영화는 아오야마가 나름 가정에 성실한 남편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제법 오랫동안 그의 지조를 지킨다. 그가 재혼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도 장성한 아들이 마련한 것이고, 오디션 지원서들을 살펴보는 도중에 아내의 사진을 슬쩍 돌려버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정도로 아내에게 충실했으니, 중년의 남성이지만 젊은 여자에 빠지더라도 조금은 눈 감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오야마의 집착이 아사미에만 국한될 거란 우리의 짐작이 순진했던 것이다. 그는 비서와 아마도 권력형 성관계를 맺었을 것이고, 아들의 여자친구를 본 찰나의 순간에 그 미성년의 몸을 탐했다. 아오야마는 알게 모르게 아내를 배신한지 오래다. 게다가 그는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여성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러므로 아사미의 집에서 펼쳐지는 이 기괴한 광경은 그가 가진 난잡한 성도착증의 보고인 셈이다. 그렇게 그의 피해자들을 거친 후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아사미다. 그녀의 모습은 흡사 그 이전의 여성들이 한데 중첩된 것처럼 보인다. 마치 그들 모두의 대변자가 된 것처럼. 저만 사랑해주셔야 해요. 아사미가 호텔에서 이 말을 했을 때, 아오야마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사미는 이에 대해 매우 - 그것도 아주 뒤틀린 방식으로 - 진심이었다. 그 간극이 이 이야기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후반부 10분에 걸친 고문 시퀀스를 통해 <오디션>은 아사미라는 인물이 가진 실로 엽기적인 수준의 광기를 보여준다. 마취약으로 아오야마를 쉽게 무력화한 그녀는 여러 고문 도구들을 차례대로 그의 몸에 갖다 댄다. 장침이 그의 애교살을 관통하거나 실톱으로 왼발이 절단될 때, 아오야마의 고통은 시점 숏을 통해 우리에게도 온몸으로 체험된다. 이 순간 머릿 속을 관통하는 생각은 이것이다. 아오야마가 이 정도 벌을 받아야 할 만큼의 잘못을 했는가.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이 있을 것이다. 아사미에게도 있다. 결국 오디션을 봐서 젊은 여자랑 자고 싶었을 뿐이잖아? 모두 똑같아. 아사미가 그에게 내리는 판결은 결국 남성과 여성의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녀의 발언에 일부 공감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후 아사미가 펼쳐보이는 극한의 폭력은 그 취지가 가졌던 정당성을 단숨에 무효로 만든다. 어느 누구도 <오디션>을 여성 복수극이자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사미의 범행은 남성들이 무의식 속에 품고 있는 여성 혐오를 부추기고 강화하는 효과만 낳게 된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면 그녀의 접근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이는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두개골을 드릴로 뚫는 격이므로, 충격요법이라고 할 수도 없다. 요컨대 아사미의 진단과 처방에는 어떤 병적인 수준의 오차가 있다. 사람을 토막살인하거나 감금하고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정상적인 사고의 범주가 아니다. 아사미가 단단히 미친 여자라는 사실은 부정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망가뜨린걸까.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아오야마와 아사미가 행복할 수 있었던 시나리오는 과연 존재하는가. <오디션>에 대한 흥미로운 반응 중 하나는, 초반부만 해도 많은 관객들이 이를 로맨틱 코미디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젊은 여자들을 모아놓고 재혼 상대를 찾는다는 소재에 대해서도, 좀 변태적인 발상이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르의 취지에 따라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 둘이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응원하게 된다. 이 감상에는 중년의 남성이 젊은 여자와 만나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다소간의 편법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 오디션에서 수많은 지원자들 - 즉 수준 이하의 여성들 - 을 아오야마와 시게히코가 탈락시킬 때, 우리도 같이 이들을 간단히 리스트에서 제하는 것도 영화와 맺은 공범 의식이다. 관객들은 이미 아오야마의 편에 서서 사태를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아사미를 생각해보자. 그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오디션의 지원자들을 모집하기 위한 광고가 방송을 탔을 때다. 미래의 히로인을 찾는다는 내용의 나레이션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그런데 아사미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 그녀는 아오야마가 만난 20대 전후의 여성이 아닌, 초등학생에 가까운 어린 아이의 몸을 하고 있다. 영화는 마치 그녀가 아득히 어린 시절부터 이 방송을 기다려왔다는 듯한 인상을 심는다. 그렇다면 아사미는 그 어둡고 텅 빈 그녀의 집에서 미래의 히로인이라는 꿈을 키워온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은 배반 당하고 착취의 도구로 변질된다. 그녀가 유년에 받아왔던 학대와 그것은 별반 차이가 없다. 이는 아사미가 평생 동안 누적한 방어기제를 발동시켜,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그 행복을 독차지하고 말겠다는 병적인 집념으로 뒤바뀐다. 그러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행복을 위해 편법을 썼다는 점에서 이 둘은 같은 우를 범한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오야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사미에게는 동의하지 않는가. 그건 폭력을 떠나서, 우리가 이미 그녀를 마음에서 탈락시켰기 때문은 아닐까. 잘려나가는 신체와 비명 속에서도 이 질문은 계속 남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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