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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현 Apr 26. 2023

팬텀 스레드

단평 | 권력 관계를 상정한 비대칭 연애일지라도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결핍이 있고, 이를 제대로 파고들기만 하면 난공불락의 요새란 존재하지 않는다. 연인은 폭력적으로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한때 자신의 완벽함을 믿었던 자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의 병리학적 진단은 결국 이를 받아들일 것을 권유한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나약함도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 극장전 | 073 | 한국영상자료원 |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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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 사랑의 전제 조건은 결핍이다. 결핍이 없다면 만들어줘야 사랑은 성립 가능하다. 그러나 결핍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인간에게 어떻게 이를 심어놓을 것인가. <팬텀 스레드>는 1950년대 런던의 패션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특수한 러브 스토리를 통해 이 질문에 접근한다. 주인공인 레이널즈 우드콕은 저명한 일급 의상 디자이너다. 그는 영감을 받기 위해 수많은 여성들과 가벼운 연애를 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그녀들을 매몰차게 차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여자들은 그의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 그가 쫓는 환상들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하는 존재들이다. 이 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가 그녀들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은 없어진다. 달리 말하면, 그는 자신만으로도 충만한 생활을 구축했고, 여자들은 그 속을 일시적으로 구성하는 소모품들이다. 레널즈는 완성된 드레스와 함께 그들을 떠나보낸다. 조안나와 10월의 드레스. 한때는 몰두의 대상들이었으나 이제는 그의 손을 벗어난 것들이다. 그는 붙잡으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한 레이널즈의 세계 속으로 알마가 들어온다. 처음에 그녀는 그의 조건 하에 출입을 허가 받는다. 북부 요크셔 레스토랑에서 서로 눈이 맞았을 때 레이널즈가 먼저 저녁 식사에 그녀를 초청했고, 드레스를 입어달라는 요청도 그가 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그의 패션 워크샵이자 브랜드인 하우스 오브 우드콕의 메인 모델로 그녀를 스카우트한다. 너는 그가 딱 원하는 체형을 갖고 있네. 레이널즈의 누나 시릴은 그런 식으로 알마의 입장을 정리한다. 레이널즈에게 알마는 그의 거푸집에 꼭 들어맞는 밀랍인형 같은 존재다. 밀랍인형은 그를 둘러싼 철의 모양으로 인해 최종적인 형태가 정해지나,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관계는 일방적이며, 한계가 처음부터 명확히 세팅된다. 그러므로 그 선을 벗어나길 원한다면 기존의 규칙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팬텀 스레드>는 이들의 규칙이 재구성되는 광경을 마치 날실과 씨실이 서로 교차하는 모습처럼 그려낸다.


레이널즈는 바라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가 뭔가를 바라는 순간들에 주목해야 한다. 대체로 이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예술이다. 이것은 의상 디자이너로써 그가 느끼는 사명으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었을 때 충족되는 고양감을 위해 레이널즈는 매진한다. 이미 업계 내 저명한 인사인 그는 이 일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데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어떤 슬럼프도 겪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해도 그 만큼의 성과를 돌려받는 천직인 셈이다. 따라서 그와 예술의 관계는 대등한 것으로 묘사된다. 두번째인 연애는 그렇지 못하다. 여기서 레이널즈는 자신의 기호에 맞춰 여자들을 선택하고, 그들의 모든 것을 취하나 이를 위해 그가 지불하는 대가는 아주 적다. 여기서 그는 착취자이자 주도자로 행동하여 갑의 포지션을 점한다. 레이널즈가 여자들과 맺는 관계는 대등하지 않다. 그가 늘 우위에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세번째에서 정확히 역전된다. 바로 돈이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만, 세번째에서 레이널즈는 이 둘을 모두 타협해야 한다. 그의 가장 큰 스폰서 중 한명인 바바라 부인이 대표적이다. 레이널즈는 스스로 못생겼다고 반복하는 이 늙고 뚱뚱한 여자를 위해 드레스를 만들어주고, 그녀가 그의 작품을 함부로 대하는 광경을 목격해야 한다. 그러나 하우스 오브 우드콕은 그녀의 후원이 일으켜세웠다는 시릴의 말마따나 바바라 부인의 지분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레이널즈는 다른 두 관계와는 달리 이 자본주의적 계약에서는 철저히 을의 포지션으로 끌려다닌다. 레이널즈를 아래에 두고 싶다면 가장 쉬운 방법은 그를 매수하는 것이다. 그는 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라도 결국 따라올 수 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예술과 연애 그리고 돈은 모두 레이널즈가 기꺼이 맺는 관계들이다. 이 셋 간의 적절한 균형을 지키면서 그는 지속 가능한 생활을 영위해왔다. 그래서 그는 이 팽팽한 장력이 허용치를 넘어서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예술은 그럴 일이 없으니 예외다. 그렇다면 이 순간들은 연애 또는 돈에서 온다. 그 자체로 보면 연애는 그가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허용치를 넘어설 것 같으면 바로 그 관계들을 종료한다. 따라서 그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은 돈과 관련된 관계들이다. 알마는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그녀는 바바라 부인이 드레스에 보이는 무성의한 처사가 레이널즈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돈과 맺은 굴종의 계약으로 인해 억압된 레이널즈의 분노를 대신 표출해준다. 그녀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마치 행동대장처럼 전면에 나선다. 레이널즈의 분노를 자극하여 명분을 확보한 뒤 바바라 부인의 집으로 쳐들어가 그녀로부터 드레스를 벗겨낸다. 그리고 그를 대변하여 하우스 오브 우드콕에 다시는 얼씬거리지 말라는 경고로 마무리한다. 이 모습은 레이널즈에게 큰 감동을 준다. 돈이라는 요소가 허용치를 넘어설 때 그는 종종 거기에 굴복했을 것이다. 그건 굴복할 일이 거의 없는 그의 삶에서 유독 수치스럽게 다가왔을 터이다. 그러나 이제 이 알마라는 여인이 이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을 넘어 통쾌한 한방을 날렸으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는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다. 고마워. 이건 레이널즈가 아는 한 그가 상대방에 치하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그러나 알마는 이에 이렇게 응수한다. 사랑해요. 그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답변을 기다린다. 이미 그녀는 그 이상을 바라고 있다. 돈이라는 부분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에 너무 기뻤던 나머지, 레이널즈는 연애가 기준치를 한참 넘어서 통제 불능이 되고 있는 모습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는 것은 연애가 예술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웨딩드레스를 의뢰하기 위하여 찾아온 벨기에 공주는 여러모로 바바라 부인의 상위호환격 인물이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에 왕족다운 기품은 물론, 레이널즈의 작품에 대한 섬세한 배려심까지 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지갑도 두둑하다. 말하자면 벨기에 공주는 최상급 클라이언트나 마찬가지이며, 그녀를 위해 레이널즈는 오래 전부터 드레스를 만들어왔다. 세례복, 첫 영성체 때 입은 옷, 궁정 파티 드레스 및 사교계 데뷔 때 입은 옷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갔다고 그가 증언한다. 각자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면 이렇게 긴 세월 동안 합을 맞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즉, 벨기에 공주와 레이널즈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사이인 셈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매개체로 맺어진 특별한 유대관계다. 연애의 영역에서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는 알마는 벨기에 공주를 강력한 경쟁자로 인식한다. 그녀는 벨기에 공주에게 가서 자신을 소개하고 이렇게 말한다. 전 여기에 살아요. 예술은 머나먼 이상향에 존재하지만, 연애는 언제나 바로 곁에서 몸을 부대끼며 생활한다. 따라서 벨기에 공주가 아무리 레이널즈를 고취시키고 사로잡더라도 소용없다. 레이널즈의 일상은 이미 알마의 손바닥 위에 있기 때문이다. 알마는 이러한 홈그라운드 이점을 기반으로 전쟁선포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레이널즈를 예술로부터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알마는 극약처방을 내놓는다. 그녀는 뒷산에서 독버섯을 구해와 레이널즈가 먹는 아침 식사에 이를 섞어넣는다. 독은 그의 온몸에 퍼지게 되고, 레이널즈는 벨기에 공주의 웨딩드레스를 최종 검토하는 순간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다. 동시에 웨딩드레스 역시 상처를 입는다. 이를 기점으로 하우스 오브 우드콕은 두 개의 목적으로 집단이 분리된다. 하나는 다음 날 오전 아홉시까지 손상된 웨딩드레스를 수선하여 벨기에로 보내는 일이다. 이는 시릴과 우드콕 소속 의상 디자이너들의 몫이다. 다른 하나는 쓰러져서 사경을 헤매는 레이널즈를 돌보는 일이다. 이는 알마의 몫이다. 이것으로 알마는 예술이라는 연적과 레이널즈를 분리시키는 것은 물론, 일종의 보복을 가하는 데에도 성공한다. 벨기에 공주는 아마도 평생에 단 한번 입을 웨딩드레스를 한차례 손상되고 최종적으로 레이널즈의 손도 거치지 않은, 말하자면 진품 이하의 물건으로 받게된 셈이다. 그러므로 고결한 예술의 옷감을 연애라는 칼날이 부욱 찢어버린 모양새가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예술과 돈의 빈자리까지 독차지하여 몸집을 한계치까지 불린 연애를, 레이널즈가 두 팔을 벌려 반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단순한 역학관계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레이널즈의 가장 큰 공포는 그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다. 때문에 연애가 사랑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그는 적정선을 유지했다. 내부의 아주 작은 영역만 채우게 해두면, 설령 이것이 빠지더라도 다른 것으로 쉽게 메꿀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권 아래에 둔다. 그러면 타격을 입어도 오래 가지 않고, 타협하거나 상처받을 일도 없다. 레이널즈의 완벽주의에는 어떤 유아적인 강박증이 자리잡고 있다. 그가 가장 무방비한 순간에 어머니의 환상을 보는 것도 그가 그저 두려움 많은 소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부분을 들여다보자. 유년의 레이널즈는 아직 자신의 균형을 찾기 이전이다. 따라서 많은 부분들을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 자기만의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다. 그가 균형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생존 전략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레이널즈는 복잡한 시스템을 고안해내어 간신히 어른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알마가 레이널즈를 독차지하려면 이러한 상태에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를 소년의 모습으로 퇴행시킨다. 알마는 그저 레이놀즈의 균형 속에서 자신의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그녀의 연적들 - 예술이나 돈 - 에게는 유효한 투쟁 방식이었겠으나, 이 모두를 관장하고 있는 레이널즈에게 다가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알마가 택한 것은 레이널즈가 아직 균형 감각을 터득하기 이전의 시절로 그를 되돌려놓은 후,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완벽해지기 이전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세상은 온통 두려운 것들 투성이다. 그 속에서 어린아이는 자기를 돌봐주는 존재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돌려준다. 죽은 어머니의 유령이 일시적으로 지켰던 그 자리로 알마가 유유히 들어선다. 그녀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듯이 레이널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다음날, 레이널즈는 그녀에게 청혼한다.


규칙은 일시적으로 역전되어, 알마에게 유리하게 굴러간다. 그러나 이 사실을 레이널즈는 알지 못한다. 몸이 완쾌한 그는 관성에 따라 본래의 레이널즈로 돌아온다. 결혼한 후 이 둘은 허니문 기간을 거쳐 다시 관계가 불안정해진다. 레이널즈는 자신의 균형을 되찾고 싶어하고, 이에 알마는 크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새로운 규칙 하에 영구적으로 두려면, 또 한번의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레이널즈의 인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알마가 그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충격요법을 통한 서로 간의 입장을 재정의하기 위함이다. 처음 독버섯을 먹었을 때는 레이널즈의 무의식 속에서 그 재정의가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그가 똑똑히 보는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렇게 양측의 동의가 있어야만 계약은 공식적으로 체결되는 것이다. 알마는 여기에 버터와 아스파라거스를 겻들여 확인사살까지 한다.


천생연분이란 무엇일까. 서로가 완벽하면 천생연분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정반대일 것이다. 각자가 빈틈이 없다면 상대방이 들어올 여지도 없으므로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역으로 우리는 연인의 미숙하거나 부족한 점을 보완할 때 이를 천생연분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인간이 가진 고유한 약점들을 전부 꿰차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속에 자기 자신을 제대로 심어놓을 수 있다. 우리는 은연 중에 연인이 자신의 빈틈 속으로 비집고 들어와주기를 바란다. 사랑에는 어떤 피학적인 속성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완벽했던 사람일수록 더 부각된다. 알지 못했던 자신의 결핍을 발견했을 때, 그는 그걸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완벽을 되찾으려면 이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결혼 이후, 레이널즈는 당혹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예술과 연애, 그리고 돈의 삼박자는 이미 어긋난지 오래다. 허용치 이상으로 자라버린 알마의 존재가 모든 것에 훼방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널즈는 아무리 해도 자신의 균형이 맞지 않아 당황한다. 어느덧 새해 전야. 레이널즈는 춤을 추러 가자는 알마의 반복된 제안을 거절한다. 이에 알마는 혼자서 드레스를 입고 집을 나선다. 그녀가 없는 집은 유독 커보인다. 그는 일에도 집중할 수 없고, 심란한 마음이 된다. 현관문 앞을 서성이며 안절부절 못한다. 그는 분명 부족함이 없는 인간으로 살아왔을 터인데, 알마의 일시적인 부재도 견디지 못하고 그는 텅 비어버린다. 레이널즈는 허겁지겁 코트를 입고 새해 파티장에 도착한다. 그는 춤추는 사람들과 파티 소품들 사이를 휘청이면서 걸어 들어온다. 자정 카운트다운이 울려퍼지는 순간 그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군중 속에서 알마를 찾는다. 이곳에는 정교한 솜씨로 옷감을 재단하던 일급 의상 디자이너도, 수많은 여자들을 사로잡고 쉽게 관계를 정리하던 카사노바도 없다. 그저 길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 버린 미아가 있을 뿐이다. <팬텀 스레드>는 사랑에 대한 일종의 병리학적 진단이다. 가장 강한 인간도 무너뜨리는 특수한 조건을 도출해낸 후, 이를 연구사례 마냥 펼쳐보인다. 알마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쓰러져주길 원해요. 힘없고 나약하게 무방비상태가 되도록. 그래도 죽지는 않을 거에요. 내 도움을 통해 다시 일어설 테니깐요. 사랑으로 약해진 인간은 사랑으로 다시 강해진다. 확신을 품은 레이널즈는 독버섯을 꿀꺽 삼킨다. | 극장전 | 073 | 한국영상자료원 |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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