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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Mar 31. 2019

[스물다섯, 파리] #1

프랑스 워킹홀리데이 #1 어쩌다 여기까지 오셨는지...

진짜 어이가 없네,
내가 어쩌다가 파리에서 이러고 있냐고


2018년, 스물다섯의 나,

파리에서 1년을 보내며 이런 말들을 꽤 자주 읊조리곤 했던 것 같다.


얼핏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지만사실 상황에 대한 불평이라기보단 삶 속에 존재하는 우발성에 대한 경이라고 해두자. 내가 저 말을 내뱉을 땐 대개 파리에 대해 (예상치 못하게) 생겨버린 애정을 새어 나오는 웃음으로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프랑스에는 왜 오게 된 거예요?


타지 생활을 하는 이방인으로서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면 으레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질문이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시게 되었냐고.' 늘 '말하자면 긴데...'로 답변을 시작해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곤 했건만 하도 여러 번 설명을 하다 보니 어느덧 일목요연하게 이유를 설명하는 요령을 터득해있었다.  시간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고민했던 선택과 결심 과정이  별 걱정없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 . 


'유럽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데, 영국은 학비가 너무 비싸서 프랑스로 오게 되었어요.'라고.


프랑스 자체에 대한 열정이나 애정이라기보단 차선책으로 이 나라와 연을 맺게된 셈이므로 상대가 프랑스인일 경우에는 프랑스인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하는 겸연쩍은 사과를 덧붙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앞서 스물둘-셋에 걸쳐 1년 동안 영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 경험이 있다. 나와 같은 영문학 전공생들은 대개 미국을 우선순위로 생각했는데, 당시의 내 마음을 끄는 유일한 옵션은 유럽이었다. 그 때의 나에게, 한국 밖으로 나간다는 건 내 경험밖에 존재하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 등을 직접 견학하러 가는 일이었고, 버스나 기차만으로도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들을 오갈 수 있다니 유럽은 나의 목적에 아주 딱 부합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유럽과의 인연은 영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첫 해외 생활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뒤도 돌아보기 싫을 정도의 트라우마를 남기지는 않았던지, 나는 유럽에 더 머물고 싶어 졌다. 그리고 나는 취업보다는 대학원에서 문학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영문학과를 나왔으니 단순히 생각하면 영국인데 영국의 학비는 나의 상황으로선 감당 불가였다. 장학금도 수소문해보았지만 영어권은 학비를 다 내고서라도 오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니 특출 난 경우가 아니면 (게다가 대부분의 장학금은 이공계나 상경계에 쏠려있고) 수혜의 기회는 아주 미미했다.


그러다가 독일과 프랑스의 저렴한 학비 사정을 알게 되고, 시간상 조금 돌아가더라도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배워서 유학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저렴한 학비 사정이란,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영어 수업들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국립대에서 자국어로 진행되는 경우로 한정된다. 


학생비자는 어학원을 등록해야 하고, 주당 노동 시간도 20시간으로 정해져 있다니, 생활비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독일의 경우 당시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합법 노동시간이 너무 적어서 생활비 마련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결국 프랑스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얻어 떠날 결심을 하고, 프랑스어 기초 공부를 하여 파리로 떠나게 된다.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프랑스어 성적을 취득해오리라는 목표를 품고서.



인천공항으로 달리는 아빠 차 안



사실 파리는 나에게 2015년 첫 여행 시 테러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킨 장본이 되는 도시로서 (물론 도시 탓을 할 것은 아니지만은...) 그곳에 살기는커녕 다시 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망설여지는 곳이었다. 위생이나 치안에 있어서도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은 두말할 것 없고. 그런데...


그리되었다.


그러니 삶은 살아보아야 안다는 말이 맞다.


파리에서의 1년 후 나는 어쨌든 파리라는 도시와 프랑스어에 꽤 진심으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프랑스 사회는 앞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면 내 주요 관심사를 들여다보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 나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참, 물론 생각해보니 이건 프랑스 학비 오른 사실을 제외했을 때의 이야기다. 


프랑스에서는 2019년부터 비유럽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10배에 가까운 등록비 인상이 진행된다.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물론 10배가 올랐어도 영국에서 외국인 학생에게 받는 등록금에 비하면 그래도 감당할만한 수준이긴 하다.)



예쁘긴 예쁜데... 그래서, 왜 나 여기 있냐고 (?)


참, 어찌 보면 내 인생에 프랑스라는 나라가 치고 들어온 건 좀 생뚱맞은 일이다. 


그래서 번뜩 그 존재를 깨달을 때면 '뭐야,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하는 소리가 나오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스물다섯의 나는, 그래서 파리에 있었다.


그리  예상치 못한 전개는 돌아보면 다행히 감사하게도 나를  나답게, 어쩐지 미적찌근했던  인생을  진짜같이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파리에서의 1년을 통해 내리는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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