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단념
... 끝없이 새로운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고 돌진하고 대립하고 깨뜨리고 불타다가 생명의 마지막 불꽃마저 꺼진 뒤에야 끊어지는 생활태도가 있다.
김기림, 단념 中
진부한 반복들에 대해 혐오를 느끼며, 세상의 원리를 관음하는 기분으로 과학(정확히는 과학철학 관련 글들을 재밌게 본 것 같다)에 매력을 느꼈던 중학교를 지나고, 과학고 입시에 실패한 이후, 대입 수능 시험을 준비하면서 접한 작품이다. 당시엔, 작가가 말한 "부단한 건설"을 향한 "영웅의 길"을 동경했다.
지식의 최전선에서 하루하루 경계를 무너뜨려가며 끝없이 진보하는 삶. 설혹, 성과가 변변찮더라도, 늙은 기타수의 삶 같이, 그것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괜찮다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마음과 달리 "평온을 바라는 시민"이 되어 "기어 내려가서 저 골짜기 밑바닥의 탄탄 대로를" 향해 가는 중이다. 작가 스스로와 친한 벗에겐 권하고 싶지 않다던 고상한 섭생법에 매료돼버렸다.
물론, 이제와서 "영웅의 길"을 흉보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여전히 동경하고 응원하는 태도에 가깝지만 적당히 욕망하고, 적당히 단념하면서,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그 속의 감정들을 음미하는 아르네의 삶을 상상하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있는 모두에게 김기림의 <단념>,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