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고민(3)
입원 병동에서 봉사를 하며 접한 분들 중엔, 저번 글에서처럼 바둑 두길 즐기는 할아버님처럼 미소를 짓게 하는 분이 있는가하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만큼 긴장시키는 분도 있었다. ADHD를 오래 앓아온 환자였는데, 어릴적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각종 무술을 배웠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갑자기 청해 온 악수에서 꽉 쥐는 아귀힘에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공격성까진 아니지만, 이런 예측하기 힘든 행동양식이 정신과 환자들의 특성이며, 정신과 의사로의 진로를 택하면서 감수해야 할 것 정도로 여겨왔는데, 인턴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동안 생각이 짧았다고 느꼈다.
이번 주, 생일과 겹친 당직근무에서 만난 다른 과 환자의 가르침 덕분인데, 채혈에 실패해서 아프게 하면(주삿바늘을 찔렀을 때, 피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곳에 다시 시도해야 한다) "바로 면상에 주먹 날아갈 줄 알아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으니 세상은 넓고 환자는 다양하구나 싶었고, 꽉 잡은 악수가 뭐라고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는지 웃음이 나왔다.
맞아가면서까지 채혈을 하고 싶진 않아서 포기하고 스테이션의 간호사 선생님들께 채혈 거부 사유를 말하니 당신도 그 환자에게 따귀 운운하는 말을 들었고 종종 있는 일이니 너무 괘념치 말라는 체념섞인 말을 들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의료기관 내 의료인에 대한 폭행에 의한 상해 등을 가중처벌하는 법이 나온지 꽤 된 것 같은데, 현장이 바뀌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그나마 나아져서 이정도인 걸까? 인턴 근무 중 환자와 실갱이를 벌이다 경찰서까지 다녀왔다던 선배도 떠오르고, 법이 바뀌는 것보단 병원 복지로 개인별 카메라가 지급되는게 빠를듯 싶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