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모임 첫 번째. 광고와 대중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동안 여행을 가면 근처에 독립 서점이 있나 찾아보곤 했다. 책을 추천하는 방식이나 각기각색의 진열방식을 보는 것이 재밌었다. 보물찾기를 하는 마냥 그 곳을 기억할만한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샅샅이 둘러보았었다. 가봐야 할 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곳 중에 최인아 책방도 있었는데, 윤지영 대표의 오가닉 미디어는 그 곳에서 처음 만났다.
오가닉 시리즈 책은 논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논문은 정의되지 않았거나 암묵적으로 그렇다고 생각되는 것을 연구하여 우리가 모두 알고 있었던 상식으로 만드는 과정 중에 나온다. 그러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많은 시간을 들이기 마련이다. 오가닉에서 묘사하는 세상은 내가 살아오고 경험한 곳이라, 읽는 그 순간에는 당연하다 생각되었다가도 책을 덮고 나면 혼란스러웠다. 전통적인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데서 오가닉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논지와 용어가 머리 속을 모호하게 맴돌고 있었다(원칙을 막연하게 설명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해 마시길). 읽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지만, 활용하기 쉽지는 않다.
윤지영, 오가닉 마케팅, 오가닉미디어랩, 2017.
오가닉 마케팅은 2017년도에 출간되었고, 독서토론은 2019년에 진행했다. 토론에는 마케터와 비마케터가 고루 참여했는데, 마케터 사이에서 이 책의 방향의 일부는 이미 새로운 트렌드를 지나쳐 ‘아니다’인 무언가가 된 느낌도 들었다. 책에서는 대중과 광고의 소멸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의 유투버들의 뒷광고 및 MCN과 크리에이터의 신뢰성 논란이 생소하지 않은 것을 보면 지금의 광고는 모습만 달리했을 뿐 사라지지는 않은 듯 하다. 책에서는 공유경제의 특징을 들어 시대의 변화를 다룬다. 하지만 토론이 있던 시점에서도 이미 공유경제에 대해 거품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으며 그 후 9개월이 지나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언택트 시대의 현실은 그 때와 또 다르다. 광고나 콘텐츠, 크리에이터, 브랜드와 광고, 네트워킹에 대한 개개인과 사회의 시선에 변화가 생겼을지언정 당시 나눴던 이야기에 다른 말을 얹지는 않았다. 열린 마음으로 책의 내용을 우리 상황에 적용해보는 것도 허점을 발견하면서 비판적으로 읽는 것도 논의의 좋은 재료가 된다. 토론하던 그 때도 그러했고 정리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읽으면서도 그러기를 바란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주제이다보니 유사하지만 다른 단어들이 활용되어 표현을 정리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는 제작자를 사용했다. 맥락상 특정 직업과 관련된 내용일 경우에는 해당 직업명을, 독서토론을 했던 우리를 칭할 때는 나, 우리, 1코노미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제품이나 서비스와 접하는 누군가는 책에서 사용한 그대로 고객을 쓴다. 고객, 구독자, 구매자, 사용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제작자가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제품/서비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순서
01 지금의 광고와 대중은
01 지금의 광고와 대중은
콘텐츠는 광고가 되고 광고는 콘텐츠가 되면서 이 둘을 구분하기는 어려워졌다. 크리에이티브가 아닌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 보니 콘텐츠와 광고를 분리해내기 위한 수많은 개념, 반면 분리되지 않으려는 광고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동시에 쏟아진다.
광고의 소멸, 60쪽.
광고는 콘텐츠를 담고, 콘텐츠들이 광고를 대신해서 광고 효과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현상이 설득의 역할을 하는 광고의 소멸을 알리고 있으며,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중임을 거부하고 더 이상 광고라는 형식을 소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광고란 무엇이고, 대중이 아니지만 광고에 소구되고 있는 이들은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광고가 소멸한다니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광고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이나 광고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변하는 것은 체감할 수 있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는 흔히 같은 단어를 쓰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단어를 쓰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광고와 내가 평소에 보고 쓰는 광고가 동일한 대상이기는 할까?
경계가 무너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용 경험을 광고에 녹여보자.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제품/서비스의 특징을 읊을 때와 일상에서의 활용 상황을 자기 이야기를 하듯이 말할 때 정보는 다르게 전달된다. 왜 샀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실제로 사용했을 때 어땠는지, 다른 제품/서비스와 어떻게 다른지, 그래서 감상이 어떠한지를 들으며 주관적인 감상임에도 객관적인 정보로 받아들인다. 제품/서비스를 사용하는 상황이나 선호 기준이 나와 다르니 그의 의견이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경험은 제품/서비스를 접한적 없는 사람에게도 감성과 가치를 전달하여, 자연스럽게 내가 사용할 때의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만약 어떤 광고가 솔직한 사용 경험을 담았다면, 콘텐츠에 가깝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광고의 범주에서 배제할 수 있겠는가? 광고이기 때문에 온전한 콘텐츠가 아니라고 한다면, 콘텐츠와 광고의 구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가?
드러내어 경계가 줄어들었다.
광고의 표현 방식이 변한다. 광고 소비의 양상은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영상, 복합적인 매개체로 옮겨갔고, 네이티브 광고(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과 유사한 형식을 활용하여 서비스 내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형태의 광고)가 성행한다. 사람들이 기존 광고를 부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도록 형식을 교묘하게 바꾼 것일까? 사람들이 편안하고, 정보를 받아들이기 쉽게 변화한 것일까?
광고는 광고임을 드러냈을 때 오히려 거부감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광고 컨텐츠에 개인화가 접목되기 시작하자, 그 이전처럼 스폰서 광고를 의미하는 ‘스폰서드’를 불쾌하게 여기지는 않게 되었다. 관심이 있는 컨텐츠를 몇 번 찾아보면 내가 알지 못했지만 흥미가 가는 정보들을 제공해주기 때문인데, 한 토론 참여자는 (자신의 클릭이 추적된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컨텐츠가 스폰서드라고 쓰여있으며 그 결과물이 마음에 들 때는 더 정확한 추천을 바라며 링크를 눌러본다는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광고라 하더라도 유용한 정보를 필요한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하게 된다면 '광고이기 때문에 싫은 광고’에는 속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광고는 설득할 생각이 없다.
페이드 미디어는 텔레비전이나 신문과 같은 공간을 구매하여 광고를 싣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광고 형식인 페이드 미디어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은 10년 전에도 있었지만 아직은 존재하고 있다. 어떤 광고는 이 공간을 필요로 하는데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슬로건이나 로고와 같은 브랜드 이미지를 널리 알리려고 한다면, 최적화된 타게팅이나 당장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광고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 형성에 효과적인 매체에 순위를 매긴다면 텔레비전은 꽤 오랫동안 상위권을 유지할 것이다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막상 실무에 적용하려면 막막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론과 실행 사이에 연결 고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 끊긴 구간을 메꾸기 위해 연장(방법론)을 들고 회사로 찾아가게 된다. 이것이 '홈스쿨링'의 시작이다. 당시는 연구하고 지식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돈을 버는 선순환에 대해 고민하던 차였다. 회사의 숙제를 대신 해주는 방식(이른바 컨설팅)으로는 네트워크를 체득하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었다. 오너십은 우리가 아닌 회사에 머물러야 했다. 그래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방법론을 내재화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집중했다.
여기에는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크가 발판이 되었다. 홈스쿨링을 하는 조직에는 이미 오가닉 미디어의 감염자들이 있다. 그들이 주도한다. 우리의 역할은 감염자들이 조직을 더욱 전염시키도록 돕고, 그래서 조직이 네트워크를 체득할 수 있도록 돕는 것뿐이다. 워크숍 세션, 결과물들은 다시 우리의 지식을 검증하고 확장하는 씨앗이 된다. 이렇게 블로그와 책, 비즈니스 스쿨(워크숍)은 서로가 서로의 가치의 성장과 확산에 기여한다. 연쇄적 순환이다.
이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정의하게 된 것이 바로 고객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고객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다. 시시각각 컨텍스트에 따라 '생산자-매개자-구매자'로 단번에 전환되는 고객의 역할이다.
오가닉 미디어랩의 실험과 발견, 84-85쪽.
고객은 더 이상 완성된 제품/서비스를 일방적으로 구매하고 사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작 구조의 일부가 된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나와 내 제품/서비스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만든 공간 안에서 뛰어놀까? 우리는 주어져 보이는 대로의 브랜드를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는 고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제작자가 갖춰야 한다는 고객 중심적 사고방식이 무엇일까?
고객에게 길이 있다.
만든 사람은 그 일에 깊숙하게 빠져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사용할 수는 있는지 잘 인지하지 못한다. 제작자는 사람들이 제품/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발견하고 구매하고 사용하며 브랜드에 충성하기를 바라지만 막상 그들이 세운 가설은 들어맞지 않는다. 사람들은 번거롭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미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이유를 들어 제품/서비스를 외면할 것이다.
고객은 기획자의 생각이 맞는지를 안내할 수 있다. 고객은 외부의 시선에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무엇을 원하는지, 대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하거나 사용해볼 수 있다(물론 그들이 그 대답대로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고객에게 답이 있다는 말을 흔하게 하지만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고객이 아니라 작업을 하고 있는 본인이며, 고객에게 잘 물어보고 그 내용을 잘 반영하는 것은 제작자의 몫이다.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고객은 제품/서비스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어떻게 하면 내가 이것을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시기를 제작이 끝난 뒤보다 더 앞으로 당긴다면? 제작자는 제품/서비스에 고객의 입장을 녹일 수 있을 것이며, 고객은 제품/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콘텐츠처럼 정기적으로 고객에게 노출시키는 제품/서비스를 다룰 때, 고객이 선호하는 내용이나 방향으로 제작해야 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생각할 때 많은 고객의 선호를 얻어 겉으로 보이는 인지도가 높아지거나 추종자가 생긴다 하더라도 제품/서비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사업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고객이 아니라 제작자에게서 온다. 저자가 다루는 오가닉 미디어의 경우 스쿨이라는 형식을 갖추기 이전부터 가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이를 알아본 사람들이 활용할 방법을 같이 고민하고 만든 것이다.
고객은 돌다리가 되어준다.
어떤 커뮤니티나 제품/서비스는 일부러 진입장벽을 만들기도 한다. 특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 이용이 가능한 경우, 수량이 제한적인 경우, 가격이 높은 경우, 높은 수준의 지식이나 경험이 필요한 경우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쉽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매력이 있지만 그 동시에 의심을 가지거나 포기를 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경험자는 강력한 네트워크가 된다. 체험에 대해 공유할 때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지고, 이용해야 할 이유가 만들어진다. 왜 이름도 모르던 서비스를 이용하고, 사용한 적 없는 제품의 첫 구매를 위해 줄을 서고, 가보지 않은 전시회나 공연의 표를 예매하겠는가.
킴은 2~3년 동안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관계와 생각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빠르게 읽고 나눠야 했던 개념들이 혼란스러워, 지금은 모임을 쉬고 글을 정리하고 있다.
그 당시에 몰랐던 이야기의 흐름을 발견하는 것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