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가 지배하는 21세기
"알고 보니 21세기 첫 10년은 미래로 넘어가는 문턱이 아니라 ‘재(re-)’의 시대였다.
끝없는 재탕과 재발매, 재가공, 재연의 시대이자 끝없는 재조명의 시대"
사이먼 레이놀즈 (레트로 마니아, 2010)
과거 시대의 낭만을 쫓는다는 것
가십걸과 프렌즈가 돌아오고, 을지로의 골목 어귀에서 시티 팝을 찾아 듣는 2021년.
"얼마나 로맨틱한 시대였길래!"
인스타그램을 부유하다 닿은 문장이었다. 빈티지 주얼리를 판매하는 계정에서 한 목걸이를 소개하며 남긴 감탄. 피드를 둘러보니 근래에는 찾아보기 힘든 상당히 장식적이고 '로맨틱'한 장신구들이 즐비했다. 고풍이라면 한 때 철 지난 구형으로 치부되던 것이 시간이 지나 다시 낭만으로 읽히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했다.
21세기를 배경으로 만든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 특히 과거에서 상상하는 2000년대와는 달리, 실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난 대중문화의 가장 큰 키워드는 '향수 nostalgia' 였다. 특히나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도 음악과 패션에서 잊혀진 과거의 아카이브는 영감의 원천이다. 아티스트들은 종종 먼지 쌓인 레코드판을 꺼내 읽듯 과거의 젊음, 기록으로 남은 역동기의 생경함, 태어나기 이전 세대가 향유하던 유스 컬처와 서브컬처에서 영감을 받거나 특정 시대의 양식을 차용하며 과거의 낭만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지금, 일본의 경제 부흥기 성행한 여유와 낭만의 시티 팝부터 뉴밀레니엄의 Y2K까지, 20세기 모든 시대의 양식이 인터넷 세상을 구천처럼 떠돌고 있다. 전후 모던 디자인의 시작을 알린 미드 센추리 모던 디자인부터 사랑과 평화를 염원했던 60년대 사이키델릭 음악의 포스터를 장식한 형형색색의 그래픽과 올록볼록한 폰트, 그리고 70년대 나팔바지(멋지게 보이고 싶다면 플레어 팬츠라고 읽는다)도 새로운 전성기를 맞는다.
팝-펑크 리바이벌로 소환되는 80년대 펑크록과 인터넷을 주름잡은 체커보드, 더불어 세기말의 감성을 그대로 담은 90년대 힙합의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스트리트 웨어 까지. 심지어는 더욱 근거리의 2000년대 패션과 문화도 재연되고 있으니 20세기는 처음인 Z세대부터 한 시절을 주름잡던 베이비부머 중년층에게 까지도 21세기 들어 가장 큰 영감이 된 것은 노스텔지어 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고의 유행은 비단 요즘 일만은 아니다. 근대 이전, 복식사에는 50년의 유행 변화 주기가 있었다. '철 지난', 이전 세대의 스타일이 50년마다 다시 유행으로 돌아온다는 것인데,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유행의 주기는 20세기 이후 유행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25년 주기로 짧아졌다가 1990년 이후 인터넷의 등장과 이후 패스트패션의 영향으로 10년 주기로 반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21년,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의 확장으로 범람하는 레퍼런스와 아카이브 샘플링,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각종 시대의 복제는 현시대를 얼마나 대변하고 있을까? Y2K가 유행으로 돌아오는 2021년, 새 10년을 맞이하며 얼마나 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을까.
REFERENCES
레트로 마니아 (사이먼 레이놀즈, 2010)
복식디자인론 (이은영, 2003)
서양 패션 멀티콘텐츠 (김민자 외, 2010)
스커트 길이와 주가 지수 상관 이론인 헴라인 지수 (Hemline index) 이론을 중심으로 한 패션 이론 검증 연구 - 1980~2013년을 중심으로 (김선숙,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