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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 Jul 22. 2018

04. 이제 탓하는 것도 지쳐

아일랜드 캠프힐

쿠킹 워크샵 마스터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일이 있다면 신입 코워커에게 오래 일한 코워커 1명을 붙여준다. 

요리를 못하는 나에게는 정말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여기서는 2년 넘게 일한 코워커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한명인 가비가 나와 함께 일 한다고 했고, 워크샵 마스터는 어떤 재료가 있으니 그걸로 무엇을 만들라고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샐러드, 야채 썰기, 설거지 담당이었고 가비는 닭을 이용한 요리를 했다.

쉬는 시간을 갖고 오븐 안을 보았는데 트레이가 1개 뿐이었다. 우리 하우스는 점심, 저녁을 한 번에 만들어야하므로 약 30인분이 필요한데 트레이 1개로는 점심을 먹고 끝날 양이 분명했다.

나는 가비에게 이거로는 모자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것을 만들기에는 워크샵 시간이 끝나기 15분 전이었고 워크샵 마스터가 닭을 몇 팩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저녁에 다른 요리를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저녁에 코워커들이 얼마나 체력을 소진한 채 집에 있는지 알기에 저녁식사를 그 때 같이 만든다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또한 이 하우스의 멤버인 내가 요리 워크샵에서 양 조절을 실패하였다는 것에 책임감이 없어 보였다. 


나에게 깊이 심어져 있었던 '책임감'이란 아빠가 가르쳐 준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가져오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없다면, 다른 적당한 것을 가져와야한다는 것.

워크샵이 끝나고 가비가 돌아가고 나서 다른 음식을 만들 재료가 있는지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러나 책임감이 강한 면에 비해 나는 다른 요리를 할 줄 몰랐다. 

코워커들에게 "우리 저녁에 식사를 준비해야할 것 같아" 라고 하면 

"가비는 다른 하우스이고 너는 우리 하우스니까 너가 더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어필했어야지!" 이렇게 나오겠지. 약간 불안해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워크샵을 마치고 돌아온 코워커들이 아니나 다를까 음식의 양이 왜이리 적은지 물었다. 조심스레 사정을 이야기 하였고 미안하지만 저녁에 다른 것을 만들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알렉스는 재료를 보더니 "괜찮아, 소세시 쓰면 되겠네"라고 넘겼다.

내가 요리를 준비하는 사람어야 하는데 못해서 책임을 떠넘긴 느낌이라 죄책감이 몰려왔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을 괜히 했나 라는 안도감이 있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던 영화관에서 지하 문구점에서 고무줄을 사오는 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 그 문구점은 문을 닫았고 나의 책임감이 발동걸려 걸어서 10분 떨어진 곳까지 갔는데도 고무줄이 없어서 그냥 빈 손으로 돌아갔다. 매니저는 지하 문구점이 닫았으면 나중에 사면 되니까 괜찮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여태까지 '책임감'인 줄 알았던 것이다.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서든 타인이 만족할 만한 것을 가지고 왔겟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잘못된 정의를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타인의 눈치를 보고 자책을 했던 것이다.

아빠가 가르쳐준 '뭐라도 가져와야한다'를 왜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가져올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도움도 청할 수 없도록 나는 나를 밀어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책임감을 나에게 이렇게 가르쳐 준건 아빠탓일까.


자신의 성격이 불만족 스러울 때면 부모가 그렇게 가르쳐서 그래. 라곤 한다. 내가 그랬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난 더 부모의 뜻과는 다르게 행동하려고 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특히 진로에 있어서 더더욱. 

그러나 여전히 부모 탓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탓할 거리가 없었다. 나는 이미 부모님의 의견과는 다른 행동을 해왔고 이미 취업하지 않고 해외봉사하러 와있지 않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했으면서 부모탓을 또 하고 있다. 나는 나로 살아가고 싶어하면서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 탓하는 것도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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