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Anarchist from Colony, 2017)
*본문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박열은 그의 시에서 말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고.
영화 ‘박열’ 초반, 박열의 아내이자 사상적 동지이자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친구였던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고 그에게 빠져든다. 인력거꾼으로 일하느라 얼굴은 시커멓게 탔고, 머리카락은 ‘셀프’ 미용이라도 한 듯 들쑥날쑥하다. 게다가 옷은 땀에 절어 여기저기 얼룩져 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영락없는 ‘개새끼’꼴이다. 하지만 후미코는 이렇듯 볼품없는 박열의 겉모습을 보고도 그에게 “동거하자”라고 제안한다.
이후 영화는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보여준다. 당시 일본 정부는 간토 대지진 후 민중이 폭동 조짐이 보이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린다. 정부에 대한 민중의 불만을 힘없는 조선인들에게 돌린 것이다. 대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후 거의 미친 상태였던 일본인들은 정부의 의도대로 그 울분을 조선인에 토해낸다. 영화 속에서 간토 지역 자경단은 조선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묻는다. ‘십오엔 오십전’을 발음해보라고. 그러면서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오싹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십오엔 오십전’을 일본인처럼 발음하지 못한 조선인은 그 자리에서 그야말로 ‘개죽임’을 당한다.
일본 정부는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이 생각보다 심해지자 이에 제동을 걸고 해당 사실이 국제 사회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그 희생양으로 지목된 사람은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박열. 이후 박열은 일본 정부에게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아 기소된다.
영화에는 여러 종류의 ‘개새끼’가 나온다. 스스로를 ‘개새끼’라고 칭했던 싸가지 없는 조선인 박열, 조선인을 ‘개새끼’라고 칭하며 ‘개새끼’같은 짓을 했던 자경단, 그리고 이 모든 ‘개새끼’들의 위에서 이들을 제 맘대로 길들이려는 일본 정부가 그렇다.
‘개새끼’는 다의어다. ‘개의 새끼’라는 단어 그대로의 뜻이 있고 ‘인간이지만 개보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가장 흔히 쓰이는 용례는 누군가를 비방하기 위해 쓰이는 비속어 ‘개새끼’일 것이다. 비속어로 쓰이는 ‘개새끼’는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의미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사실 욕으로 쓰이는 ‘개새끼’의 그 함축적인 의미와 뉘앙스를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 여러 종류의 ‘개새끼’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보자. 누가 진짜 개새끼인가? 인간이지만 ‘개새끼’같은 삶을 자처했던 박열인가. 조선인을 ‘개새끼’로 칭하며 개보다도 못한 짓을 저질렀던 일본 민중인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하며 이들을 개새끼보다도 못하게 여겼던 일본 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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