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g Jul 06. 2017

똑똑해서 더 불행했던 옥자

옥자(Okja, 2017)

영화 '옥자' 스틸컷

*본문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채찍을 맞고, 생명을 잉태하는 행위는 내 의지가 아닌 강압에 의해 진행되고, 속눈썹에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마스카라를 칠했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움직이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

“뭐 이런 막장 상황이 있냐” 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건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말과 소는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이유로 주인에게 채찍을 맞고, 얼마나 있는지 그 규모조차 짐작이 되지 않는 강아지, 고양이 공장에서는 강제 교미가 이루어진다. 토끼들은 화장품 회사에 의해 마스카라 성능을 시험한다는 이유로 수십 번씩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발랐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마스카라를 발라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예뻐지기 위해 바르기는 하지만 바를 때마다 눈이 뻑뻑하고 건조해지는 그 느낌을. 좁은 우리 안에 갇혀 평생을 지내는 닭, 젖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 '옥자' 스틸컷

여기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낸 유전자 조작 동물 ‘옥자’가 있다. 돼지라고는 하지만 하마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이 동물은 불행인지 행운인지 너무나 똑똑하다. 봉준호 감독은 발을 헛디뎌 절벽 끝에 매달린 미자(안서현)를 구하는 옥자의 모습에서 그의 지혜로움을 충분히 설명한다. 웬만한 사람도 순발력이 없으면 하기 힘든 그런 행동을 옥자는 순간의 판단력과 기지를 이용해 쉽게 해낸다.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 미자를 위해서 말이다. 이 장면을 통해 관객은 짐작할 수 있다. 옥자는 동물이라고 무시하기에는 매우 무시무시한 지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이처럼 인간이나 다름없는 고등한 옥자를 한 대기업, 그리고 그 대기업의 연구원은 동물의 모습을 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학대를 가한다. 옥자가 지능이 떨어지는 단세포 동물이라도 그를 학대할 권리는 인간에게 없다는 것을 그들은 인지하지 못한다. 분명 살아 움직이고 감정이 있고 교감을 할 수 있는 존재인데 이런 것은 깡그리 무시된다. 옥자는 그저 질 좋은 고기를 위해 계획적으로 생산된 기계에 불과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동물의 기본권에 대한 의식이 지금처럼 중요시되진 않았다. 예전보다 살만해진 인간은 비로소 동물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동물의 행복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생명이 있는 존재를 바라보는 ‘인간’적인 마음만 있다면 수많은 강아지 공장이 생기고 동물에 채찍을 휘두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고기의 맛을 알아버린 인간이 그 맛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처럼 그들을 평생 우리에 가두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다.

영화 '옥자' 스틸컷

‘옥자’를 보면서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영화를 보고 당분간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미 삼겹살과 스테이크의 맛을 알아버린 나에게 그것은 불가능이었다. 다만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 해도 산 동안 그들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옥자’의 봉준호 감독은 말했다. “남들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가끔 닭고기, 소고기를 먹는다”고 “영화를 보신 분들이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다. 저는 육식에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이 영화를 보고 분명 많은 생각을 했지만 채식주의자가 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일말의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내 입에 들어가기 전 그들의 삶이 조금은 행복해야한다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사형수도 사형 직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주는데 잘못도 없는 그들이 이유도 모른 채 불행한 삶을 산다면 그건 전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불행일 테니까 말이다. 그것조차 생각하지 못한다면 옥자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옥자는 똑똑한 동물이다. 똑똑하지 못한 동물도 인간이 만들어낸 학대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동물을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돼지가, 소가, 닭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얼마나 똑똑한 동물인지는 짐작할 수 없다.

끝으로 지금 이 밤에도 인간의 학대를 견디고 있을 수많은 동물들에게 미안함을 표한다. 아무런 위로가 될 수 없겠지만.


ⓒ 2017, Kimjiyoung 글 all rights reserv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