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g Nov 28. 2017

“당신의 그림을 정말 좋아합니다”

영화 ‘러빙 빈센트’, 어디서도 보지 못한 ‘황홀함’

영화 '러빙 빈센트' 스틸컷

엄마는 그림을 잘 그렸다. 아쉽게도 그 재능을 물려받진 못했지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기에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좋아하는 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고흐다. 관심 있는 분야도 아니고, 동시대를 산 것도 아니고, 인종도 다른 사람의 열렬한 팬이 된 건 스스로도 정말 의아한 일이다.

영화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다. 아니, 더 정확히는 고흐가 죽은 뒤 그의 삶을 되짚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유화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107명의 예술가들이 총 6만 장의 고흐풍 유화를 그렸다. 제작 기간만 해도 10년이다.

영화를 좋아해 많은 작품을 봤지만 이 영화 같은 독특한 제작 방식을 거친 것을 만나기는 힘들다. 고흐풍으로 그려진 유화로 채워진 스크린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황홀함’이다. 마치 고흐가 살아나 그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화가들이 작업하는 장면 / 영화 '러빙 빈센트'

고흐는 생전 자신이 머문 곳의 풍경을 많이 그렸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 아를에 머물면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과 ‘밤의 카페’, ‘카페’다. 고흐는 표현은 서툴렀지만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사랑했던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자살을 선택했지만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살고 싶어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림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게 많았으니까.

20대 초반 유럽 장기 여행을 떠났을 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뮤지엄’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 고흐가 그린 대부분의 작품을 눈으로 직접 봤다. 하지만 예상대로 지겨움을 느꼈다. 교과서에서 본 작품을 실제로 본다는 신기함은 있었지만 화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가 없던 때라 눈으로 슥 훑는 것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2주 정도 지나 고흐가 죽기 전 머물렀던 마을 오베르쉬아즈에 가게 됐다. 오베르쉬아즈에 가게 된 이유는 아주 명료했다. 신청한 투어 프로그램에 그 코스가 있었기 때문.

오베르쉬아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대단한 유적지도 없다. 하지만 고흐를 어느 곳보다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고흐만으로도 충분히 가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고흐가 죽기 전까지 묵었던 라부 여인숙, 자살을 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던 장소인 갈대밭,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무덤이 있다.

고흐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긴 곳은 라부 여인숙이었다. 라부 여인숙은 매우 작은 규모의 숙박 시설이다. 고흐는 그곳 맨 위층에 묵었다. 고흐의 방은 사람 열 명이 들어가면 숨도 못 쉴 정도로 좁고 천장도 낮았다.

생각보다 너무 허름해서였을까. 이상하게 그곳에서 고흐가 애달프게 느껴졌다. 총에 맞은 상처를 움켜쥐고 침대에 몸을 뉘었을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라부 여인숙 주인의 딸과 아르망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 영화 '러빙 빈센트' 스틸컷

고흐와는 정말이지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고독, 쓸쓸함, 외로움. 그런 감정들이 그 방에서 느껴졌다.

생각보다 여운은 오래갔다. 며칠 뒤 한국에 돌아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책을 한 권 샀다. 편지를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느껴졌던 건 고흐가 정말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깨달음과 왠지 모를 공감이었다. 20대 중반을 앞두고 사회에 나가기 전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감정을 느낄 때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이후 고흐의 팬이 됐다.

‘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삶을 재조명한 영화다. 영화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배달했던 우편배달부의 아들 아르망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고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아르망은 고흐 주변 사람들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마다 고흐에 대한 평은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은 그가 아주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르망은 고흐에 대한 사실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무심코 결론지었던 그에 대한 평가를 달리 생각하게 된다. 나 또한 아르망처럼 고흐의 삶에 다가갈수록, 그의 고독을 마주할수록 고흐의 그림이 더욱 좋아졌다. 거친 붓터치를 볼 때마다 슬픔이 느껴졌다. “저렇게라도 터뜨려야 했겠지”라는 짐작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고흐에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찾아보는 정도가 됐다.

부모에게 외면 받고, 정신병을 앓고, 가난한 와중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를 만약 만난다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감히 위로를 건네고 싶다. “나도 가끔 당신처럼 외로울 때가 있어요. 그리고 당신의 그림을 정말 좋아합니다”


ⓒ 2017, Kimjiyoung 글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 이전글 찬바람이 불어오면 부산으로 가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