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그의 작업들은 그 자체로
강렬하고 직관적인 시각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옥이 영국의 양옥 사이에 끼어 있는 작품이나, 뉴욕 한복판에서 전통 가옥이 다리 위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질적인 공간 속에 놓인 비정상적인 구조물들은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적 현실’을 통해 공간과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건축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번에 마주한 서도호의 작품 동인아파트는 조금 달랐다. 이 작품은 나에게 시각적인 충격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처음엔 그것이 왜 예술인지조차 의아할 정도였다.
동인아파트는 오랫동안 방치된 채 철거를 앞두고 있는, 이제는 다 쓰고 버려진 흔적들만 남아 있는 건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노후된 건물로만 보였을 이 장소를 서도호는 굳이 작품으로 삼았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어떤 특별한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철거 예정의 빈 아파트가 예술로서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과연, 이것이 예술일 수 있을까?
이 작품을 마주한 나의 첫 반응은 혼란이었다. 단지 폐허와 같은 이 공간이 예술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면,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짓는가?
우리는 흔히 예술을 무언가 아름답고 완성된 형태로만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이 낡고 버려진 아파트는 그 어떤 ‘완성된 미’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파괴와 소멸을 향해 가고 있는 공간이었다. 서도호는 왜 이곳을 예술로 선택했을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며 서도호가 남긴 영상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나는 무언가 다른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동인아파트는 단지 건물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의 결과물이었다.
작가가 이 버려진 공간을 주목하고, 예술로 재해석하기로 한 그 선택. 예술은 어쩌면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도 그러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가치 있다고 여기고, 그것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그 가치가 우리에게 특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서도호는 동인아파트라는 흔한 공간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그 공간은 예술이 되었다.
그 과정은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무수한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은 우리 각자의 경험과 배경, 그리고 가치관에 의해 좌우된다. 그리고 때로는 그 선택이 타인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기도 한다.
이 깨달음은 서도호의 동인아파트 작품을 바라보면서 점차 깊어졌다. 예술은 당장 눈앞에서 모든 답을 주지 않을 때가 있다. 대신, 우리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허락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예술을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다. 예술은 때로는 즉각적인 감동이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뒤집어 보고,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동인아파트는 더 이상 단순히 버려진 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도호의 시선과 선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입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예술을 넘어서,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예술도, 인생도 모두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