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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akonomist Mar 14. 2018

라면과 라멘

라면의 다윈진화론

    1835년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찰스 다윈. 그는 갈라파고스 제도 각각의 섬에서 서로 다른 모양을 한 핀치새를 발견합니다. 환경과 먹이 유형에 따라 부리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 다윈은 진화론을 연구해 종의 기원을 저술합니다. 이젠 너무나도 유명한 다윈 진화론에 관한 일화인데요. 저는 라면을 먹으면서 다윈 진화론이 생각났습니다. 이름 유사성에서 보듯 한국 '라면'과 일본 '라멘'은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면과 라멘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서로 다른 환경에 각자 적응해 진화했습니다. 마치 갈라파고스 핀치새처럼 말이죠. 저는 이들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는지 조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라면과 라멘

일본 라멘은 어떻게 진화했나

(모든 리서치를 해준 Akira Kawashima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라면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메이지유신 때입니다. 외국에 항구를 개방하면서 여러 해외 문물과 함께 라면도 중국에서 일본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당시 도쿄-요코하마 지역에 라멘 음식점이 많이 생기는데 일본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 요코하마 항구 근처에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도쿄-요코하마에서 팔리기 시작한 라멘이 1923년 대지진과 2차 세계대전으로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전국으로 퍼지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라멘은 중국음식으로 인식됐습니다. 사람들은 라멘을 '시나소바(Shina-soba)=중국국수'라고 불렀죠. 


    전국으로 퍼졌던 중국국수는 각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일본 라멘은 국물 종류에 따라 나눌 수 있는데, 간장 국물은 도쿄에서, 미소 국물은 삿포로, 소금 국물은 하코다테와 오사히카와, 돈코츠(돼지뼈육수)는 규슈지역에서 유래합니다. 처음엔 중국 국수로 시작했지만, 각 지역마다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 방법이 상이해지면서 일본 '라멘'으로서 독창성을 가지게 되죠. 사람들도 점점 라멘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일본 음식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후에는 탄탄멘과 츠케멘 등 종류가 더 다양해지면서 일본 국민 음식으로 확실히 자리합니다.


    또 이것과는 별개로 인스턴트 라멘이 1958년 개발됩니다. 일본 닛신 식품 회장 안도 모모후쿠는 전쟁통에 빈곤해진 국민들이 공복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러다 미국에서 지원받던 밀가루와 덴뿌라를 기름에 튀기는 원리를 결합해 초기 인스턴트 라멘을 만들어내죠. 이어서 닛신 식품은 1971년 컵라면을 개발합니다. 컵라면은 휴대/보관도 간편하고 조리도 쉽기 때문에 인스턴트 라멘을 대중적으로 보급화 하는데 큰 역할을 하죠. 

처음 생산된 인스턴트 라멘 (치킨라멘)



한국 라면은 어떻게 진화했나


    한국에 처음으로 등장한 라면은 삼양라면입니다. 1963년 삼양식품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기술을 도입해 만들게 됩니다. 삼양식품 창업자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이 식량 문제 해결이라는 사명으로 정부금 5만 달러를 지원받아 일본에서 배워온 기술이었습니다. 한국 원조 라면을 자처하는 삼양라면이지만 그 뿌리는 일본 인스턴트 라멘에 있는 셈입니다.

    지금이야 라면 없이 못 사는 한국인이지만 처음 라면이 한국에 등장했을 땐 반응이 시큰둥했다고 합니다. 곡식 위주 식생활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튀긴 밀가루가 입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라면이 잘 팔리지 않자 회사 측에서 대로변에 점포를 설치하고 시식을 권하는 방식으로 라면의 맛과 장점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또 1965년 박정희 정권 당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 정책이 나오면서 라면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싼값에 간편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라면의 최대 강점이 부각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 후 삼양이나 농심 등 소수 회사가 한국인 입맛에 맞춰 라면을 독점적으로 생산하게 됩니다.


혼분식 - 쌀에 잡곡이나 밀가루를 섞어 만든 음식



그래서 라면과 라멘은 무엇이 다른가


1. 다양성

    보셨던 것처럼 한국 라면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또 일본 인스턴트 라멘을 기반해 시작했기 때문에 튀긴 인스턴트 음식이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인스턴트 식품 안에서 다양화를 시도했습니다. 아래 보이는 사진처럼 각종 다양한 인스턴트 식품이 출시됐죠.


    그에 비해 일본 라멘은 중국 국수를 기반으로 해 시작한 음식입니다. 한국 라면보다 좀 더 고급화된 음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간적, 환경적 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컵라면과 인스턴트 라면처럼 값싼 라면부터 미슐랭 스타를 받는 고급 라면까지 다양한 레벨로 발전할 수 있었죠. 그래서 사용하는 면도 한국은 기름에 튀긴 유탕면을 사용하는데 비해 일본 라멘은 종류에 따라 유탕면과 생면 모두 사용합니다.


2. 국물

    한국 라면은 맵고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에 맞게 진화했습니다. 삼양식품 사사에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6년 삼양라면을 맛 본 뒤 "한국 사람은 국물이 얼큰한 것을 좋아하니 고춧가루가 좀 더 들어가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 후 매콤한 맛을 첨가한 소고기 육수가 70년대 등장합니다. 한국 라면이 맵고 자극적인데 비해 일본 라멘은 좀 더 온순하고 재료 본연맛을 냅니다. 한국 라면은 조미료를 사용해 맛을 내고, 일본 라멘은 돼지나 닭뼈로 육수를 내 간장, 미소(일본된장), 소금 등을 넣어 맛을 내기 때문이죠.



    라면과 라멘 중 어느 게 더 나은가를 가리려고 쓴 글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라면'과 일본 '라멘' 모두 사랑합니다.  둘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많이 다른데요. 평소 그 차이를 막연하게 느끼면서도 뭐라 말로 정확하게 형용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라면을 라멘이라 부를 수 없고, 라멘을 라면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를 말이죠. 마치 이웃 나라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일본처럼, 라면과 라멘도 가까워 보이면서도 아주 먼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어떤 경로를 통해 두 음식이 지금의 형태와 위상을 갖게 됐는지 알게 돼 유익했습니다. 아는만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라면, 라멘이 더 맛있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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