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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akonomist Mar 04. 2018

더 이상 미국과의 비교를 거부한다

미국은 정말 선진국일까?

저는 대학 공부를 위해 2010년에 미국으로 넘어왔습니다. 군 복무와 휴학기간을 빼면 이 곳에서 지낸 지 4년이 다 돼 가네요. 처음 이곳에 올 땐 기대와 환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어떤 환상이냐고요?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어릴 적 보던 할리우드 영화 속 장면이나, 자유의 여신상, 실리콘 밸리, 월 스트리트 등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 마디로 '아메리칸드림'이죠. 


그런데 그 꿈을 깨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화려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많은 진실을 보게 됐죠. 저는 이 곳에서 살면서 경험한 미국의 부정적인 면을 얘기해 보려 합니다. 



1. 극심한 빈부격차

    미국엔 '집 없는 사람(homeless people)'이 많습니다. 특히 제가 사는 미국 서부는 상태가 더 심하죠. 마치 길거리마다 포장마차처럼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집단으로 캠프를 이루고 생활하죠.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 노숙자가 500,000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중 1/4는 어린아이들입니다. 


    실리콘밸리나 월스트리트로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나라에 이 정도로 빈곤한 사람이 많은 건 아이러니합니다. 더군다나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로 빈곤한 사람이 많은데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는 분위기가 더 놀랍습니다. 마치 저 사람들은 원래부터 길거리에 살았던 것 마냥 치부해버리죠. 한쪽으론 10억 넘는 집들이 수두룩한데, 그 앞에는 집 없는 노숙자들이 살고 있으니 그 격차가 더욱 심해 보입니다. 소득 불평등 수준을 알 수 있는 gini index를 보면 미국 소득 불평등이 한국보다 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숫자가 적을수록 소득 평등 수준이 높다.


    이렇게 된 이유는 미국이 가진 극심한 자본주의 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의 재분배를 책임져야 할 정부는 부자들과 기업들의 세금은 줄이고,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에 대한 세금은 높였습니다. 또 계급 상승을 할 수 있는 창구인 대학은 높은 등록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오기 힘들도록 진입장벽을 높였습니다. 

미국 정부 세금 수입 비교. 1960년과 2008년을 비교하면 기업의 세금비중은 줄고, 근로노동자 임금에 대한 세금 비중은 높아졌다.
저소득층 대학진학률이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정치에서도 2010년부터 로비 활동이 합법화되면서 부자들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돈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면 로비 합법화 전과 후 정치계로 흘러들어온 로비 자금 규모 차이를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한 표씩을 행사(one person, one vote)'하는 제도가 이젠 '1달러에 한 표씩 행사(one dollar, one vote)'할 수 있는 환경을 바뀐 것이죠. 


    정치, 경제, 교육 모두 돈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빈부격차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2008년과 2012년 대선을 비교하면 개인이 쓴 정치자금 규모가 4배 가량 차이난다.



2. 치안

    작년 겨울 가족들과 미국 서부 여행을 했습니다. 차를 렌트해서 샌프란시스코, LA, 샌디에이고를 순회했죠. 그런데 여행 시작 며칠 만에 절도를 당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렸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 길거리에 주차하고 몇 시간 관광을 하고 돌아왔는데, 차 유리창이 박살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 '아차'하며 자동차에 두고 내린 가방이 생각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노트북을 비롯해 많은 소지품을 도난당했습니다. 다행히 귀중품은 차에 두고 내리지 않았고 누군가 다친 사람도 없기에 서로 괜찮다며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미국의 치안 상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올 겨울 경험한 절도사건. 누군가 창문을 부수고 안에 있는 물건을 훔쳐갔다.


    사실 차량 절도는 미국에서 굉장히 흔한 범죄입니다. 차를 가진 지인 중에는 이런 일을 경험한 이가 많습니다. 또 차량 절도로 창문이 박살나 유리 대신 테이프를 칭칭 감은 차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차에서 내릴 땐 귀중품은 꼭 트렁크에 넣어두거나 가지고 내리라고 충고합니다. 저는 이런 범죄는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제게 일어나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도시 한복판에 주차를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미국에 절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총기 사건입니다. 절도는 금전적 손실이 전부지만, 총기 사건은 인명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 플로리다에 한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어린 학생들 1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2017년 58명이 죽은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졌죠. 미국엔 총기를 소유한 사람도 많고, 총기 관련 사건 사고도 많습니다. 그러니 한국과 달리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드물고, 운전할 땐 차문과 창문을 꼭 잠그고, 어둡고 위험한 동네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누군가 이유도 없이 나를 향해 총을 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건 불편하고 두려운 일입니다

총기 소유자수와 총기 난사자 수 그래프. 두 부문에서 압도적 차이를 보이는 미국.


    한국에 안 좋은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형량에 관한 시민들의 불만을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었으면 종신형이나 사형이다" 같은 식의 불만이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강한 형량이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미국이 강한 형량을 가지게 된 이유는 총기 사건과 같은 강력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은 성범죄를 제외하면 비교적 범죄율이 낮은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처럼 강한 사법제도가 생길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죠. 저는 한국에 가끔 돌아올 때마다 밤거리를 활보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깜짝 놀라곤 합니다. 미국에서 배운 조심성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죠.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은 치안 상태가 좋고, 꽤 살기 괜찮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 범죄 지표. 한국은 비교적 치안이 안전하다.



3. 음식

    최근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란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너무 익숙해져 당연하게 생각했던 한국의 여러 모습을 외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새롭게 보입니다. 그중에도 외국인이 처음 한국 음식을 먹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 그제야 한국 음식의 높은 퀄리티를 자각합니다. 한국은 맛있는 음식이 많습니다. '한국음식'으로 대표되는 음식도 너무 많죠. 예를 들어, 김치, 비빔밥, 삼겹살 등등... 또 지인을 만나면 밥 먹었는지를 물어볼 만큼 한국 문화에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그런데 미국엔 '미국 음식'이라고 말할 만한 음식 자체가 적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건 햄버거 정도밖에 없네요;;


    저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음식은 제 삶에서 꽤 중요한 요소입니다. 친구들과 한강 둔치에서 치맥을 먹고, 시장에서 전과 막걸리를 먹고, 전국으로 식도락 여행을 떠나는 등 음식과 관련한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선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한국과 많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시리얼이나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점심도 샌드위치에 바나나 하나 정도입니다. 저희가 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저녁뿐입니다. 미국인에게 밥은 정말 살기 위해 먹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점심시간이라고 해서 따로 시간을 떼놓는 일도 드뭅니다. 그냥 일하면서, 수업 들으면서 밥을 먹습니다. 미국에 샌드위치나 햄버거 같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상점이 많은 이유입니다. 


    맛도 한국에 비해 단순하다고 느꼈습니다. 달다, 짜다, 쓰다, 시다, 이 4가지 단어로 대부분 음식이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음식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한 맛, 감칠맛, 깊은 맛을 느끼기 힘들죠. 특히 야채 음식은 정말 먹기 힘들 정도입니다. 미국에서 많이 먹는 샐러드는 여러 가지 야채를 생으로 섞은 다음 소스를 쳐서 먹는데, 재료를 조리하지 않아 야채와 소스가 따로 놉니다. 식감도 텁텁하죠. 그런데 미국인들은 평소 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에 이 맛없는 샐러드를 건강상 이유로 많이 먹습니다. 이것도 정말 살려고 먹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런 식문화를 보고 열심히 일해서 뭐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 많이 벌어봐야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을 모른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말이죠. 



    한국에게 미국은 선진국의 대명사처럼 존재합니다. 아직도 수많은 유학생과 이민자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오죠. 하지만 아메리칸드림이란 단어 뒤에는 얼룩이 존재합니다. 한국전쟁 직후처럼 한국이 빈곤하던 시절엔 미국을 부러워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한국은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선진국 반열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소감으론 아무리 사람들이 한국을 '헬조선'으로 불러도, 저는 한국이란 나라가 역시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미국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GDP 6만 달러'와 같은 말에 현혹돼 미국을 롤모델 삼아 따라가다간 한국도 자칫하면 '미국처럼'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미국처럼 일부 소수만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인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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