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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슈가 Aug 10. 2021

퀴어링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 서당 3주 차 숙제

요런 건가...? (출처: zazzle)

많은 디자이너들이 제목을 듣고 ‘퀴어를 주제로 한 무지개색 디자인’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런 디자인은 나의 일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는 퀴어라는 개념을 디자인에 접근하는 인식론이 아닌 디자인에서 재현되는 대상으로만 일축하는 것이다. 마치 친환경 디자인을 ‘울창한 숲과 맑은 샘물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퀴어링된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Ece Canli는 <디자인을 퀴어링하기>에서 이를 ‘젠더-이분법적 사유를 넘어선’ 접근으로 나아가며, 젠더화된 수행을 해체, 재구성하여 불평등으로부터 그 언어와 자신을 해방시키는 디자인이라고 칭한다. 다시 말해 디자일을 퀴어링하려면 우리는 디자인에서의 젠더가 무엇인지 구분해내야 한다. 디자인에서 재현되는 젠더란 무엇일까? 바지를 입은 남자아이와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를 그리는 것? 그것도 맞지만, 더 넓은 가능성을 찾아볼 수도 있다.


출처: 『페미니즘을 퀴어링!』, 미미 마리누치, 봄알람 (2018)

이 중 나머지와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정해지지 않은 답을 찾으려 고민하는 것처럼, 디자이너는 필연적으로 시각 디자인 활동을 통해 정보를 범주화하고 경계를 시각화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여기에서 디자이너의 시선이 개입될 수 있다. 이는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칸딘스키가 바우하우스에서 진행한 실험이 그랬다. 칸딘스키는 학생들에게 사각형, 삼각형, 원 그림을 주고 도형들을 빨강, 노랑, 파랑 중 어울리는 색으로 칠하도록 했다. 이때 많은 학생이 빨강은 사각형, 노랑은 삼각형, 파랑은 동그라미에 칠했고 칸딘스키는 대략 이러한 결론을 내놓는다.


“역동적인 삼각형은 노란색이며 안정적인 사각형은 빨간색, 고요한 원은 파란색이다. 빨간색은 남자다운 성숙함을 가진 색(사각형의 색상)이며, 노란색(삼각형의 색상)은 능동적이고 앞장서는 남성적 성향을 보여주고, 푸른색(원의 색상)은 수동적이고 후퇴하는 여성스러운 특성을 지녔다”


그의 확신의 찬 태도가 놀랍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색채의 젠더관이 변화한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러면 퀴어한 시각을 가진 디자이너들의 시선이 디자인에 개입할 때는 어떨까? 책방 동기화하기의 이모지 만들기 워크숍에서 그 힌트를 얻어볼 수도 있겠다. 김린 디자이너가 주최하고 이경민 디자이너와 내가 함께 기획하고 진행했다. 이모지는 일종의 ‘표준’을 시각화하지만, 디자이너의 생각과 시대적,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모지를 처음 만든 나라인 일본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 시대의 요구에 맞춰 매년 업데이트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참여: @sandwichpress.kr @likemustaard @pipicocucumong @kokukoku20 @studio_shntl

정형화된 표준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도전해보기로 하고, 각자 자신만의 이모지를 만들었다. 나는 바닐라, 초코, 딸기로 대표되는 ‘디저트의 주류’에 도전하는 의미로 민트 디저트 이모지를 만들었다. 한 분은 기존의 날씬한 인어 이모지를 통통한 몸매로 다시 그렸고, 어떤 분은 노란 옥수수 이모지를 본인에게 친숙한 알록달록한 점박이 옥수수로 재탄생시켰다. 인자한 할머니보단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며 한쪽 머리를 민 할머니 이모지를 그린 분도 있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이모지를 맞바꾸고 합치는 작업을 통해 이미지를 완성했다.


어쩌면 이런 이모지들이 실험을 목적으로 하는 워크숍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디자인의 결정권자들은 그런 실험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칸딘스키와 같은 생각을 가진 디자이너와 통통한 인어 이모지를 그린 디자이너가 해내는 디자인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디자인이 주는 낯섦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결정권자들도 점점 변화할 거라고 믿는다. 워크숍을 마치고, 퀴어한 디자이너들이 만든 퀴어링된 디자인들이 가득한 퀴어한 세계를 꿈꿔보았다. 가능성으로 가득한 세계를!


이 글은 FDSC의 디자인 서당 스터디 3주 차 숙제를 위해 작성했습니다. 디자인 서당에 대해 더 궁금하시거나 다른 디자이너들의 숙제도 궁금하다면 디자인 리더스 클럽 인스타그램에 놀러오세요.


참고 자료

<디자인을 퀴어링하기>, Ece Canli (2015)
김린 디자이너로부터 받은 워크숍 제안 이메일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안영주, 안그라픽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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