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쓰려는 마음

- 나를 지키기 위한 기둥

by 은가비

매일 책을 읽는다.

필사도 매일 하는 편이다.

운동도 놓지 않고 계속 하고 있다.

그런데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단독 저서 원고를 모으느라 애쓴 몇 달,

퇴고를 하고 내 글을 마주하며

민낯을 들여다보고

1교를 본 후 소진이 되었을까.

공저 6권이 되도록 작가란 타이틀이

내 것이 아닌듯 낯설었는데

단독 저서를 출간하고나면 스스로도

당당하게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지

기대한 시간이 무색하게 멍~ 한 기분.

출간되어 내 이름만 적힌

종이 물성의 책을 받아야

뭉클해지지 않을까.


단편 동화도 일단 출판사에 넘겼으나

공저자 분들이 너무나 쟁쟁한 분들이라

편집자의 피드백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지금이 숨 막힌다.

마음이 쫄아들고 작아지는 중인데

소심해서 힘들어하는 내게 해주신

출판사 대표님의 조언,

"쓰고 싶은 사람이 작가죠."



쓰려는 마음을 지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독서와 운동, 자연과 글쓰기

네 개의 기둥으로 나를 받치며 지내다가

어느 기둥이 하나

스르르 휘어지거나 내려앉는 일이 생길 때가 있다.

너무 주저앉아 부러지기전에 잘 알아차려야 한다.


읽는 사람에서 벗어나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의지에서

읽기만 하고 싶은 마음으로 게을러진 채

몇 주를 보냈다.

아슬아슬한 상태의

글쓰기 기둥을 더이상 방치해선 안될 것 같아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 앱을 열었다.

(주식어플을 이렇게 묻어두고 봤으면 수익 났을텐데ㅡ.ㅡ 하찮고 어리석은 나란 개미)

책장에는 글쓰기, 책쓰기에 관한 책이 많다.

뭔가 알아보고 싶고 잘하고 싶을 때

그 분야의 책을 계속 사는데

유독 집착하는 그게 글쓰기여서

괴로워하면서 꾸역꾸역 해오고 있다.

언제쯤 즐기면서

쓰고 싶어 근질근질해서

쓰지 않으면 안될거 같아서

쓰는 사람이 되려나.

10년쯤 되면?

지금 6년쯤 되었으니

3~4년 안에 미친듯이 채우면 될까.


책으로 글쓰기를 배우려고 했던

어리석지만 의욕은 넘쳤던

과거의 나, 그 시절의 나를 다독여줘야지.


계속 책을 읽어온 시간이 있으니

보는 눈만 높아져서 '내 글 구려병'이 주기적으로 나를 흔들어댄다.

그럴 때마다 공저 한 권 없던 시절의 나를,

그때 가졌던 날것의 내 마음을 떠올려본다.


2021년에 샀던 한 권을 빼서 읽는다.

"매듭이 있는 삶은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다."

저자는 책쓰기를 매듭을 묶는 것으로 표현했지만

나는 매듭을 삶의 굴곡을 겪고 난 후 생긴 영광의 상처같은 것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나이에 비해 이런저런 삶의 부침을 많이 겪으면서

왜 나에게 이러시나 싶어 자주 주저앉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처가 많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공감할 줄 알기 때문이다.

너무 편하게 살아온 이들의 교만함과 오만함은 불편하다.


밟고 올라갈 매듭들이 많으니 더욱 단단하고 안정감있게

내가 가려는 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매듭들이 만들어져 온 시간동안 겪어낸 모든 순간들은

어떤 형태로든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살아보지 않은 삶을 거짓으로 꾸며낼 순 없으니까.


척하지 말고 포장하지 말자.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힘빼고 솔직하게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다보면

나만의 색이 드러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도 그런 글이고

지나보니 사람 사는 일, 생각하는 것은 크게 벗어나지 않으므로

분명 내 글과 경험도 누군가에게는 짧은 한 문장이라도 공감을 얻으리라.

이렇게 고민하며 나는 오늘도 좀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HBD to me.